영적인것과 육적인것

영(영적인 것)과 육(육적인 것)에 대한 이해 

 

☞  영(靈)과 육(肉)에 대한 이해  ☜

 

                                                                                                                     

 

영과 육에 대한 낱말의 개념을 정리하기가 신학자들도 아직 덜 되어 있고 또 어렵습니다.그런데 신자들의 생활에 대해서 영적이다, 영이 강하다, 영에 속한 사람, 영감이 많아 신령하다, 영성의 개발 등등으로 그 표현이 다양하게 사용되면서도 이 영에 대하여 육에 대하여 어떻게 표현해야 되고 어떻게 설명해야 좋은지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영과 육의 개념이 어려운 이유는 ……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상적인, 물질적인 차원의 설명이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은 영역을 설명하기 때문에 낱말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쉽게 예를 들면, 내가 현재 지상에서 첫 창조된 나는 영과 몸을 가지고 있는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는 것인가... 

 

그럼 내가 예수님 안에서 중생되었다,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 하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가를 손에 딱 잡히게끔 설명한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이는 구원이라는 것이 존재적인 부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냥 물건을 만지듯이 하면 설명하기가 쉬운데 눈에 보이지 않은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전혀 경험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그런“하늘에 속 한”영역이기 때문에 이해에 어려움이 있고 설명도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말씀을 계시하려고 할 때 구속되지 못한 즉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있었던, 옛 시대에 모든 부분들 하고 그리스도가 오셔서 시작된 새로운 시대와 새 영역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려고 하면서 사용해야 할 적당한 낱말이 없어서 비유로 말씀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 일을 우리에게 계시하려고 할 때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우리의 언어로 계시하여야 하지요,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히브리어로 설명하시고 신약시대 때는 헬라어로 설명하셨는데 물론 예수님이 한국에서 일하셨으면 한국어로 설명하셨겠지요.

 

 어떻든 예수님이 사역하시면서 사도들이 일하면서 자기시대의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그 때의 말을 사용해야 되는데 그 때의 언어로는 땅에 속한 부분과 하늘에 속한 부분을 설명하려고 보니까 적당한 낱말이 없어서...

 

 그래서 어쩔 수 없이“영”이라는 낱말과“육”이라는 낱말을 사용 하니까 이 두 낱말이 다른 의미를 전혀 안 가지고 있는 새로 만든 낱말이라면 이야기가 간단한데 새로 만들어 낸 낱말이 아닙니다.

 

 이 낱말은 원래 사용할 때“영”은 정신 또는 마음이라는 의미로 사용했고“육”이라는 낱말을 쓸 때에는“살덩어리”라는 낱말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육이라는 낱말을 쓸 때 정신 또는 살덩어리라는 내용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영-육이라 는 낱말로 그런 의미가 아닌 전혀 딴 것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영과 육은 이런 의미다 라고 하나님은 여러 설명을 보충하시면서 길다 란 문맥 속에서 또는 하나의 단원을 통해서 하나의 책을 통해서 여러 번, 여러 모양으로 반복해서 설명하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감을 잡게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 하실 때 애로 사항중에 하나입니다.   

 

특히 신자들은 “영과 육”에 대하여 이 부분을 잘 이해해야만 성경을 읽을 때 혼돈되지 않습니다. 특별히 많은 신학자들은 낱말풀이를 주로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낱말 풀이는 그 당시의 땅에 속한 자들이 사용하듯이 낱말의 의미를 풀이하고 마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하나님 나라 이야기와 연결 지으려니까 잘 안 맞게 되고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 가 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럼 그렇다고 딴 낱말을 (하나님께서) 새로이 만들어서 사용하면 잘 통하겠는가 ? 

 

그려면 그 말 자체가 무슨 말인지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벧전 4:1-2의 말씀 중에 “정욕을  쫓는 삶에서 벗어 난다”는 의미에서는 육이라는 낱말이 옛 사람의 모습이 분명한데 그 아래“육체의 남을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에서“육체”라는 말은“몸”이라는 말처럼 들리지요! 

 

즉  육에 속했든 자가 영에 속한 자로 바뀌었는데  육에 남은 때를 살면 안 되고 영에 남을 때를 살아야지요--그렇게 말하면 좋을텐데 그렇게 말하지 아니하고 정욕을 벗어난 사람이 육체의 남은 때를 산다.

 이렇게 말하니까 뒤에 나오는“육체”라는 낱말은 다시“살덩어리”를 갖고 있는 내 몸이라는 말처럼 나타나기 때문에 같은 낱말이 이렇게 저렇게 꾀어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니 그 본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혼란이 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또 벧전 3:19에서 보면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에서 앞에 나오는 영으로는 예수님을 말하지요. 다음에 옥에 있는 영들에게....에서 이영들은 누구나 많은 의견이 있으나 가장 보편적으로 다루어지는 해석은 

 

당시의 종교적 문화배경이나 성경의 여러 곳에서 영이라는 낱말이 악 영 타락한 천사들 또는 귀신들을 말하기 때문에 여기 에서는 하나님을 거역했든 어떤 악의 무리들인 영적 존재를 말한다고 해서 인간이 아니고 천사의 세계, 타락한 천사의 세계에 사용된 낱말이다. 라고 해석 합니다.

 

그러므로 영과 육의 개념을 잘 정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을 영혼과 몸으로 구성했습니다. 

 

특히 이것을 영, 혼, 육(몸)으로 설명하는 삼분설로는 말할 수 없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 영혼과 몸으로 있는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대로 회복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 있는 구속되지 않은 상태에 있는 인간을 육에 속한 존재라고 합니다. 그것을 육적인 인간이라고 하지요.

 

 C. C. C.같은 곳에서는 자연인, 육적인 그리스도인, 영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나누는데 이런 개념과는 전혀 다르니 오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첫 창조된 구속되지 않은 또는 타락한 인간 또는 인간성의 인간을 육에 속한자라고 말하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재창조한 구속된 새로운 사람을 영에 속한자라고 말합니다.(고전15:42-49에서도 참조)

 

여기서 영이라는 말은 성령님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표현으로 거의 다루어지고 있어서 영이라는 말을 영어로 쓸 때 대문자로 써야 한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래서 성령님과 연결지어야한다 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는데 어떻든“육”이라는 개념하고“영”이라는 개념은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좀 더 깊이 살펴보기로 합니다. 육과 영의 개념은 존재론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곧 인간의 존재 자체가 무엇,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다 라는 말이아니다 그 말입니다. 

 

즉 하나님이 육으로 오셨다 라는 말은 하나님의 신이셨는데 인간의“육”이라는 것을 가졌다 라는 존재론적인 말이 아닙니다. 그럼 무어냐 무슨 뜻이냐 하면“구속사적인 의미다”라는 말입니다. 

 

그럼“구속적인 의미는 무슨 뜻인가? ”

                                   

구속사적이다는 의미는 첫 창조시대 곧 옛 시대가 쭉 지내오다가 주의 구속 사건에 의해서 새 시대로 넘어가는데 옛 시대가 새 시대로 넘어가면서 시대가 발전해서 지나가는 그 과정을 두고 구속사적 이다라고 말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육으로 오셨다고 하는 말은 예수님의 새 시대가 아닌 옛 시대에 속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고 즉 육에 속한 예수님이 곧 옛 시대에 속한 하나님이 죽으셨고 부활하실 때에는 영에 속한 존재로 부활하셔서 새 시대를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해해서는 안 될 부분이 몸으로 부활하지 않 했다라는 말이 아니고 몸도  영혼도 다 부활했는데 그 부활하신 몸과 영혼이 다 영에 속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육적인 시대인데 이제는 새로운 영적인 시대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즉 옛 시대가 지나가고 새 시대가 시작되는 뜻이다라고 하는 것을 구속사적인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그럼 벧전 3:18절의 말씀에서 한번 살펴봅시다.“육체로는 죽임을 당하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라는 말은 

 

예수님이 육에 속한 시대에 오셔서 육에 속한 인간과 동등한 상태가 되시고 버림을 받고 미움을 받고 십자가에 처형을 받아 죽으셨고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시면서 이제는 새 시대에 속한 존재로 부활하고 부활의 첫 열매, 구원의 완성의 첫 열매, 그리고는 육에 속한 자들이 옛 시대에 속한 자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하늘에 속한 존재로 부활하셨다 라는 의미 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완전히 현재로는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 있는 이 존재가 고난을 받지 않는 상태로, 그런 시대로, 그런 영역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는 인간들의 모든 박해와 수모로 고난을 받으시고 못 박힘을 당하시고 창으로 찌름을 당해야 하시지만 이제는 부활하신 이후에는 전혀 아무도 손댈 수 없는 영역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래서 그런 딴 세계이면서 동시에 시대적으로도 새로운 시작이 되고 있고 그런 어떤 구속의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부분이면서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과정에서 설명하시는 상당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영과 육의 개념에서 그 의미를 잘 정리함이 중요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이번에는 육에 속한 사람, 영에 속한 사람을“중생”이라고 하는 의미에서 살펴봅시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초청(부르심)하시는데 초청 하시는 일을 중생의 사역을 통하여 하십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형상과 모양을 따라 사람을 처음 지어서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같이 (함께)살게 하시였습니다. 

 

그때 그 사람 아담과 하와는 그때를 살아 있었다..라고 말 할 수 있을까요? 

 

즉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살고 있었던 것을 지금 우리가 중생했습니다...라고 하는 개념으로 살아 있었다...라고 해야 할지 혹은 아닐지 하는 말입니다. 

 

물론 아담과 하와는 범죄 한 때부터는 죽었다라고 엡2:1에서 나오지요 인간은 죄를 범함으로 죽었다라고 말합니다. 그럼 죄를 범하기 전에는 살았다라고 말해야 되지요 

 

즉 하나님과 교재의 삶이였던 것은  사실이지요!  이런 의미에서는 살아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아담의 범죄 하기 이전에 그는 살아있는  상태라고 말하는 것과 지금 우리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났다고 하는 영생의 상태하고는 다를 것이다라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만약에 이것은 “같다”라고 말하면 문제가 일어나지요.

 

 다시 말하면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기 전에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았기 때문에 이것은 생명이 있었다고 말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새 생명을 누린다라는 새 생명은 아니지 않느냐 라는 말을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의 삶, 생명은 어디까지나 육적인 생명, 육적인 사람 이였을 뿐이다 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곧 이 육적인 생명은 고기 덩어리만 말하는 것이 아니고(몸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영”이라는 말의 반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고전 15:45에서 보면 부활에 대한 설명인데요.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예수그리스도)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여기에서 두 낱말의 차이를 볼 수 있는데 아담은“산 영”이 되었고 예수님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다 해서 앞에는“산 영”뒤에는 “살려주는 영”이라고 그 낱말이 다르지만“영”이라는 말의 번역이 잘 못 되었습니다. 

 

앞에 있는“영”이라는 말은“혼”이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즉 아담은“산 혼”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영”이 되었나니...인 것입니다. 

“혼”(사람이라는 뜻),“영”(영적이라는 의미)46절-“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여기서 신령하다고 하니까 신비적인 낱말로 바뀌는데 그냥 영적이라고 번역해도 좋습니다) 아니요.“육”있는 자요 그 다음에는 신령한 자니라” 즉 아담은“영”이 있는 자가 아니요 또는 영적인 존재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곧 혼 있는 자요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45절의“산영”이라는 낱말과 똑같은 낱말입니다. 곧“산 영”-산혼-육 있는 자입니다.

 

45절 다시 봅시다.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영(산혼)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46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즉 영 있는 자가 아니요)육 있는 자요(혼 있는 자요)

= 이 말은 아담은 영이 아니고-즉 영적인 존재가 아니고 혼적인 존재라고 말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즉 영적인 자니라-즉 예수님이 오셔서 비로소 영적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47-52절까지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52절에 보면 우리가 다시 살아서, 부활해서 ,변화되어서 영적인 자가 되어야만 하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아담과 화와는 첫 창조된 상태로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아담과하와는 예수그리스도에서 재창조(중생)되어야 하는 것으로서. 곧 영적인 존재를 다시 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범하지 안 했더라도 재창조(중생)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생명은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에서 받은 생명과 다른 생명인 것입니다.

 

 그 아담의 생명을“육”이라고 또는 “육”에 속한 사람이라고 하고 예수그리스도에서 받은 생명을“영”이라고 또는 영에 속한 사람이라고 하고 예수그리스도에서 받은 생명을 “영”이라고 또는 영에 속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계속해서 이번에는 요한복음1:12-13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나니 이는(혈통으로나 육적으로나)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여기서도 인간스스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께로서 난 자 -영에 속한 자가 될 수 없다고 자세히 말씀하고 있으며 혈통으로나 육적으로나 에서“육”이라는 말은 육에 속한 뜻으로나- 라고 볼 때 하나님의 첫 창조와 재창조는 같은 창조가 아닙니다. 

 

전혀 다른 두 개의 창조 사역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첫 창조 영역에 들어 오셨다가 부활하실 때는 재창조 영역에 들어 가셨습니다. 

 

여기서 잘 생각해야 할 것은 예수님도 첫 창조영역에 들어오셨다 라고 하니까 예수님도 피조물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또 예수님도 재창조 영역에 들어가셨으니 예수님도 피조물이다 라고 생각하면 자칫하면 몰몬드교와 비슷해지는 것을 조심해야 하며 이는 이단인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첫 창조영역에 들어왔다 라는 말은 피조물이 아니고 예수님 자신도 창조주이신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신이 우리와 똑같은 피조물인 인간의 차원에 들어오셨다 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몸으로 오셨을 때를 육에 속한자로 오셨다해서 육신이 되셨다. 따라서 (성육신)이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13-14절 말씀을 다시 봅시다.

 

13절 14절에서 예수님 한 분 안에서 두 가지가 보이는 것이지요!  모든 사람은 육에 속한 자이니까 하나밖에 안 보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 영에 속한 면과 육에 속한 사람의 면(신성과 인성)인 양면을 가지고 계신 분으로 등장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원래 영에 속한 분이신데 육으로 오셨지요. 그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지요. 그런데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님을 잘 보니까 그 영광이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다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요한복음1:18절에서도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 하신 하나님이 나타 나셨느니라”즉 외아들이신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곧, 예수님이 오셔서 아버지와 우리 양쪽에서 두 가지 속성을 가지시고 아버지 하나님을 보여 주셨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히 1:6, 히 2:14-15, 롬 1:3-4절 말씀에서도 예수님이 이 세상에 들어오실 때 즉 세상에 태어나실 때에는 육신으로 태어나셨고 부활하실 때에는 영으로 부활하셨다 라고 “육”이라는 말의 의미와“ 영”이라는 말을 구별해서 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롬 8:3-4절에서 예수님을 아예 “육신”으로 보내시었는데 그 육신이 어떤 육신이냐 하면 우리는 죄를 범했으니까 타락한 사람이며 그 타락한 인성을 가진 상태를 “육”이라고 종전의 신학에서는 설명했는데 이 타락한 상태의 인성을 가진 사람을 “육”,육신이라고 설명한 것과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셨다라고 하는 말에서 그들은“ 육”,육신이니까 혼동하기 쉽지요. 때로는 이 말을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하며“육신”이라는 말과 “몸”이라는 말을 혼동해서 쓰기 때문에 예수님이 육신으로 보내심을 받고 오셨다라는 말로 몸으로 왔다라는 뜻으로 적당히 생각하고 넘어왔습니다. 

 

그러나 롬 8:3-4에서 분명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곧, 인간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해서(왜 연약 합니까-타락해서요) 율법을 못 지킨다고 하는데 그럼 구원을 못 받는 인간을 하나님은 어떻게 해결하시느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가진 자로 보내셨고 그것도 죄 있는 모양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죄 성을 가진 인간성인 그 인간성과 똑같은 모양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렀지만 예수님이 죄가 있다라는 말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지만 우리와 똑같은 육신의 입장으로 오셔서 우리와 똑같이 타락한 인간성인 그 상태에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도 시험을 계속 받으셨으며 예수님도 범죄 할 가능성이 항상 있었으나 예수님은 죄를 범하지 않으셨으며 그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에는“영적인 상태”로 부활하셨습니다.

 

사람은 영혼+몸이 있어야 사람입니다.

 

이 영혼과 몸이 있는 인간으로 처음 지음 받을 때 곧 첫 창조 될 때부터 인간은 이렇게 되었는데 그 첫 창조된 상태를 “육적인 존재”또는 “육적 인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영혼과 몸을 가지신 육적인 인간들 사이에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오셨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랬다가 부활하실 때는“영적인 영혼과 몸”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과 몸은 그대로 있는데 첫 창조된 상태에 있는 영혼과 몸이 부활할 때에는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로 영혼과 몸이 부활하신 것입니다.  즉 영혼과 몸은 그대로 있는데 “육적인 상태”에서 “영적인 상태”로 부활 하셨기 때문에“다르다”란 것입니다. 

 

 즉 예수님 몸은 그대로 있지만 우리의 몸과는 완전히 다르다란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아직까지는 첫 창조의 몸이고 예수님은 재창조된 부활의 몸이니까 우리와 다르다 이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구원의 완성 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아담도그 영역에 들어와 진정한 의미의 영생이라는 개념과 연결이되는 것입니다.

 

 갈 4:4-5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에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경에서 예수님의 위치에 대해서 아주 정확하게 우리와 다르게 오셨다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오셨다 라고 설명 되어져 있습니다. 

 

이 구속에 대한설명은 나중에 좀 더 깊이 다루기로하고 우선 “중생” “영에 속한 사람”의 의미를 좀 더 살펴봅시다.

 

디도서 3:5, 벧전1:3, 23; 요3:3, 5,6,7절에서 첫 창조에 속한 육으로 태어난 상태를 “아래서부터 난다 ”라고 말하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재창조되는 영에 속한 자로 태어난 것을 “영에 속한 자로 태어 나는 것”으로 말하고 있으며 육으로 난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 라고 말한 것과 곧 “다시 부활해야 한다”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또 요1:13“이는 혈통이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 께로서

난 자들이니라”라는 말이 중생이라는 말이며 아예 여기서는 하나님께로서  났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위에서는 “다시 났다”“위로부터 났다”여기서는 아예 “하나님께로 난다”라고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또 고후 5:17절에서는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이 나옵니다.“그런즉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다 새것이 되었도다”

 

또 갈라디아서 6:15절에서는 같은 뜻에서 “새로 지음을 받은 ”하나님께로 태어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영에 속한 자가 되어야만 결국은 “하나님 나라의 계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에 속한 자는 영에 속한 이야기, 하늘나라의 계시를 이해 할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