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내가 산것이 아니요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 갈 2:20∼21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기독교 역사에서 핵심적인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인간으로 오셔서 죽으시고, 영광 가운데 다시 살아난 사건은 기독교에만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부활이 그렇게 중요할까요? 부활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세 가지를 살펴봅니다. 첫째,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죽음에 동참했고 예수를 믿는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났습니다. 둘째,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더 이상 내 자아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참된 나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 바울은 자신은 연약하고 유약한 육체가운데 살지만 자기의 대속 주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산다고 자신 있게 고백합니다. 하나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그분의 뜻대로, 그분이 원하는 대로 순종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기도:부활을 경험한 자의 삶을 살게 하소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 마 5:13∼16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창조주,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특권과 영예를 누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축복을 받은 만큼 그리스도인은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소금의 맛을 내고 빛을 발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적입니다. 교회는 먼저 소금이 되어 세상의 부패를 막고 상처를 치유하며 세상을 기쁨과 희망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소금과 빛의 구호를 외칠 때 소금이 되고자 함은 무시하고 빛만 되겠다고 외치며 선교를 합니다. 그러기에 교회가 세상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상처를 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소금의 맛을 내지 못하고 빛 노릇을 한다고 하면서 선교하고 전도하니 냉소적이고 비난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에서 소금노릇을 제대로 하면 많은 사람들이 성도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 빛의 역할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산다고 고백합니다.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빛과 소금의 성도님들이 되길 바랍니다.
▶기도:소금처럼 살고 주의 빛 비추게 하소서.


열두 제자를 부르사      
▶ 마 10:1

오늘도 세상적인 기준으로는 쓸데없지만 의미 있는 일들이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구원받은 주의 자녀들이 목숨을 걸고 미지의 세계로 복음을 전하는 그것입니다. 신앙인에게 이 일은 의미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복음전파에 선행조건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첫째, 기사와 치유가 일어납니다. 앉은뱅이 사건, 죽은 과부가 살아나는 다비다 사건, 감옥 문이 열려 온 교회가 기도를 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행 2:14∼37에 베드로의 설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삶의 태도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십자가에 못박고 핍박했던 그 예수가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라는 설교였습니다. 그들에게 회개가 일어나 그날에 삼천명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둘째,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삶이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어집니다. 성령은 우리의 삶에 최고의 변화를 가져다주고 가치관을 새롭게 합니다. 셋째, 이웃에게 소금이 됩니다. 성령이 내게 임하시면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일으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명심할 것은 성령을 근심하게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는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성령으로 거듭나 복음전파의 일꾼으로 살게 하소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 요 14:16∼21

오늘 말씀에는 예수님이 떠나신 후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혜사\'는 돕기 위해서 부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늘 우리 곁에서 도우시는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사람은 인생과 사역에서 실패하는 법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을 강조하는 이유는 예수께서 이 세상을 떠나고 난 이후에는 성령이 이 세상을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곧 임하게 될 성령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과 교제하며 동행하고 임재를 체험해야 합니다. 그때 성령은 첫째, 우리를 홀로 두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이러한 사실을 굳게 믿는 자만이 외롭고 고독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둘째, 우리를 주님과 한 뜻이 되게 하십니다.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므로 제자들은 자신의 목숨조차 아까워하지 않고 진리의 복음을 용기 있게 전하게 되는 성령강림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셋째, 우리에게 주님과의 사랑을 이어주십니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행동입니다. 소중히 여기고 간직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못하고 그것들을 지켜야 합니다. 성도는 누구든지 자기 몸을 세상의 속된 것으로부터 거룩히 구별해야 합니다.
▶기도:성령의 임재로 능력이 주어지고 놀라운 축복과 특권을 받게 하소서.


부자와 나사로      
▶ 눅 16:19∼31

예수님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서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 경고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그가 악하고 추한 죄를 범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에게 문제가 되었을까요? 그는 많은 시간과 많은 재물을 개인적인 향락과 쾌락을 위해서만 허비했을 뿐 생산적인 일과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일에는 무관심했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부자의 대문 앞에 누워 잔칫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가련한 인생입니다. 나사로는 외적으로는 몹시 궁핍한 삶을 살고 내적으로는 위축되고, 매사에 두려움 가운데서 지내는 자입니다. 지병이 있는 나사로에게 부자는 밥 한 그릇 주지 않았습니다. 부자는 남을 돕거나 구제하는 일에 극단적으로 인색하였습니다. 그런데 부자와 나사로의 상황이 이생과는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보내어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 하지만 아브라함은 부자를 외면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큰 차이는 부자는 이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알려지고 귀히 여김을 받는 것의 차이입니다. 하나님께 귀히 여김을 받아 천국 가는 축복받길 기도합니다.
▶기도:나눌 수 있는 넉넉함과 세상의 것만을 쫓지 않게 하소서.


기브온의 지혜     
▶ 수 9:3∼11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산에 단을 쌓았습니다. 이때 일곱 족속 중 여섯 족속 왕이 모여 한마음으로 동맹을 맺고 이스라엘과 더불어 싸우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브온 족속만은 지혜를 써서 이스라엘에 멸망을 당하지 않고 구원을 받습니다. 기브온은 어떻게 하여 구원을 받았을까요. 첫째, 자신들의 처한 상황을 올바로 인식하였습니다. 사람이란 구원받기 위해 자신의 운명을 올바로 인식함이 중요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파멸을 초래할 뿐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기브온 족속은 하나님과 맞서서 싸운다는 것은 어리석고 자멸뿐임을 자각하였습니다. 셋째, 이스라엘 백성과 화친 조약을 체결하는 것이 살길이라는 것을 아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기브온 족속은 쳐들어 오는 이스라엘과 화친 조약을 하기로 합니다. 이스라엘은 주인이 되고 기브온은 종이 되는 조건이라면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넷째, 지혜로 행동함이 구원을 가져왔습니다. 기브온 족속이 지혜롭게 행동한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있게 되었으며, 성전에서 제사장들의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화친을 맺은 자들은 도움과 보호를 받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과 보호하심을 소망으로 가지시는 성도님들이 되길 바랍니다.
▶기도:세상이 아닌 하나님과 언약맺는 자로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