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량이 차야 합니다 (렘 25:11-14)
11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1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칠십 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되 13 내가 그 땅에 대하여 선고한 바 곧 예레미야가 열방에 대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니 14 여러 나라와 큰 왕들이 그들로 자기 역꾼을 삼으리라 내가 그들의 행위와 그들의 손의 행한 대로 보응하리라 하시니라
이 시간에 “분량이 차야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찬송가 315장에 ‘돌아 와 돌아 와’ 찬송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의 아버지가 방탕하여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탕자의 비유를 내용으로 한 찬송입니다. 누가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요? 다름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방탕한 우리 인간들을 기다리는 기다리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배당 안 만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 아버지의 품 안에 안겨 사시기 바랍니다.
어떤 작은 도시에 상가 삼 층에 세를 얻어서 교회를 개척한 어느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개척臼?성도들이 없어 예배당 월세를 제대로 내지 못하여서 힘들어 했습니다. 건물 주인은 1층에서 포목장사를 하는 사람인데 하루는 주인이 찾아와서 \"하나님은 가난뱅이다. 월세도 못 주는 거만!\" 라고 하면서 교회에 와서 행패를 부리고 나갔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 목사님은 늘 강단에 엎드려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 봉고차가 그 상가 앞에 있는데 그 봉고차를 발로 차면서 차를 비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놈의 똥차 좀 안 보이면 안 되나? 차를 빼요.” 라고 하는데 목사님은 월세도 못내는 입장이라 차를 저 쪽으로 빼자 주인은 그 자리에 자기 그랜저 승용차를 대고 나가려고 합니다. 그 때였습니다. 갑자기 고급 그렌저 승용차 3대가 그 앞에 서면서 아주 몸이 건장한 사람들이 봉고차를 빼고 오는 목사님에게 두 줄로 서서 90도로 절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니 형님 이게 무슨 꼴입니까?\" \"갑자기 형님이 사라져 버리니까 우리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빨리 얼른 가시지요!\"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그 목사님 하시는 말씀이 \"나는 이제 건달이 아니다. 나는 이제 목사가 되었으니까 너희들 앞으로 나를 찾아오지 마라.\" 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들이 \"예 알았습니다.\" 하고 그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하는 말이 “어려운 일이 있으시면 연락을 주세요.” 하였습니다. 이 광경을 본 포목 가게 주인이 사시나무 떨 듯 떨면서 그 후부터는 목사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목사님도 세상적으로 본다면 얼마든지 나름대로 누리고 살만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말하기 곤란하나 그 세계에서 두목이었던 사람이 어찌 개척교회하면서 모진 수모 다 당해 가면서 그 고생할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그 목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크게 받았던지 예수 믿고 성령 받아 옛 생활 다 청산하고 이제는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를 갈망하여 신앙생활은 물론 신학교까지 들어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일생을 주를 위해 불태우기로 작정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가져다 준 엄청난 변화였습니다.
구약 에스라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간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해방령을 내린 유명한 왕이 바로 바벨론을 멸망시킨 바사의 고레스 왕이지요.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라고까지 부른 하나님이 쓰신 귀한 왕입니다.
제 1차로 귀환하는 수효는 약 오만 명 가량이었습니다. 그들은 돌아와 맨 먼저 그토록 숙원이던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데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예언하신 70년이 찬 후에 돌아오리라는 그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이 포로에서의 귀환이 주는 의미가 귀합니다. 이 사건이 주는 의미는 우리 인생이 죄악의 포로생활을 하다가 회개하여 돌아와 하나님께 몸과 마음 드려 예배의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뜻과 그 영광을 위해 자기를 불태우는 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진리를 우리에게 교훈해 줍니다.
지금 몸은 교회에 있지만 영적으로는 방황하십니까? 몸은 교회에 있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부족하고 하나님을 위해 자신이 불태워지지 않습니까? 아니면 그런 방탕한 자녀가 있습니까? 그러나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누구보다 회개하여 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그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해방을 갈망하는 예레미야에게 알려주신 예언이 있습니다. 렘25:11 보면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70년이 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70년이 차지 않으면 성전을 허물고 하나님 백성을 잡아간 바벨론을 결코 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본문 12-14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칠십 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고 “그들의 행위와 그들의 손의 행한 대로 보응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기 70이라는 숫자가 주는 의미가 중요합니다.
7은 완전수로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수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했습니다. 성령께서 온전케 하시는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거기다 구비된 만수 10을 곱한 수이니 성령 충만을 나타내는 수입니다. 성령이 충만히 임하셔야 온전해진다는 말씀입니다. 이 때 온전한 믿음을 갖게 되고 온전히 세속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분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게 됩니다.
중세의 유명한 교부 아우구스티누스(396~430년) 흔히 어거스틴이라 부르는 그 교부가 있습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인 모니카는 아들을 걱정하면서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어거스틴은 방탕하여 사생자를 낳고 마니교라는 이단에 9년이나 몸담고 있어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고통은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눈물로 기도하는 것이 어머니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어머니가 그 당시 감독인 암브로시우스에게 가서 부탁을 합니다. “제 아들이 이러 이러한 이단에 빠졌으니 제발 한 번 만나서 잘못된 점을 일깨워주십시오.” 그러자 암브로시우스는 “아니요, 그를 그냥 거기에 내버려두시오. 오직 그를 위해 주님께 기도하십시오. 저는 책을 읽다가 스스로 그 오류가 어떠한 것이며 그 불경건함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될 것이오.” 거절했습니다. 그래도 모니카가 또 다시 부탁했지만 감독의 대답은 동일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마디 해준 말이 유명합니다. “이제 그만 가시오! 그대의 삶을 두고 이르노니, 눈물의 아들은 결코 망하지 않소.”(Vade a me; ita vivas, fieri non potest, ut filius istarum lacrimarum pereat) 이 부분만 다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 아들을 위해서 그 정도의 눈물을 흘렸다면, 그가 멸망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눈물의 아들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말은 명언 중의 명언입니다. 어거스틴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의 분량이 하나님 앞에 가득 찰 때 그 응답은 내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성령 충만이 그 답입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없다는 교훈입니다.
바벨론에서 유대인들이 한 일이 있습니다.
1. 성경을 읽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생활하고 있을 때 율법에 대한 깊은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결과 새로운 계급 즉 서기관제도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사방에 흩어져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각 회중들마다 자신의 성경 사본을 갖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베끼는 전문가들이 생기게 되었는데 그들이 서기관입니다.
이처럼 성령 충만하게 살려면 늘 영의 양식 말씀을 보고 듣고 연구해야 합니다. 시1:2-3에 복 있는 자는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했습니다. 여기 시냇가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경에서 은혜를 받으면 그 인생이 변화됩니다.
2. 예배를 드렸습니다.
바벨론에서 경건한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이면 강가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곳곳마다 회당을 만들어 거기서 신앙을 이어갔습니다. 우리 인간의 최고의 불행은 예배드리지 못할 때입니다. 주일 날 예배해야 하는데 교회가 없고 예배드릴 곳이 없으면 얼마나 괴롭고 답답합니까?
늘 예배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공예배로는 부족합니다. 초대교회처럼 매일 예배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365일 예배하는 교회가 되고 싶습니다. 구약 성막에서는 조석으로 소제를 드렸듯 지금도 그 분량만큼은 하나님을 섬겨야 충만한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습니다.
3. 화목을 이루었습니다.
렘50:4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오며 그와 함께 유다 자손이 돌아오”리라고 하셨습니다. 호1:11에서도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두목을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라고 하셨습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쪽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하기 전에는 두 나라로 갈라졌지만 바벨론에서 하나가 되어 돌아와 통일 이스라엘을 이루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체가 약하여 바쳐지지 않는다면 안 됩니다. 몸이 게을러 하나님께 드려지지 않으면 결코 충만한 삶을 영위할 수 없습니다. 마음도 드려야 합니다. 몸도 드려야 합니다. 목소리도 드려야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주님처럼, 마가의 다락방의 예루살렘 제자들처럼 몸과 마음과 함을 드려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달리 말하면 이웃과도 화목해야 합니다. 히12:14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용서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충만의 분량은 곧 사랑의 분량입니다.
4. 특별한 도움도 있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징계 받아 바벨론에 잡혀갔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와 같은 바벨론의 두 번째 통치자의 도움입니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 때문에 왕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하나님의 이름에 함부로 말라고 엄한 조서를 내렸습니다. 신앙의 자유가 주어진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사로 도우시고 또 여러 일군들을 일으키셔서 도우십니다. 은사 충만 구하시기 바랍니다. 은사로 만족하면 안 됩니다. 은사의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깨닫고 회개하고 바로 하나님 앞에 돌아와 바로 예수 믿어 구원 받고 바로 섬겨 영광 돌리라고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사역자를 세우신 목적도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시간에도 하나님 아버지는 돌아 와 돌아 와 하시며 우리가 더 온전히 자기 품 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더 이상 세상길에 방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형식적인 믿음에 살지 마세요. 더 믿고 더 사랑하고 더 예배하고 더 헌신해서 우리 믿음의 분량이 차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 믿고 하나님을 더 잘 경외하여 성령의 은혜로 온전히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