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전진

위대한 전진 / 여호수아 3장 1-6절|…
 

위대한 전진 / 여호수아 3장 1-6절 (p.322)
  
1)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서 이스라엘 사람들로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서는 건너지 아니하고 거기서 유숙 하니라.
2) 삼일 후에 유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
3)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
4)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상거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 하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
6)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일러 가로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나아가니라.

 

  처음 가는 곳은 낯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은 처음 가는 곳이었기 때문에 매우 낯설었습니다.  낯선 곳을 걸으면 모든 사물들이 생소해서 어디가 어딘지 모릅니다.  그래서 힘이 더 들고, 낙오하기 쉽고, 좌절하기 쉬운 것입니다.     제가 군대에서 100키로 행군을 해보아서 아는데요.  처음 가는 곳은 낙오자가 많이 생깁니다.  이등병이 낙오자가 많고 병장은 거의 낙오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아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백성들로 하여금 언약궤를 멘 제사장의 뒤를 좇아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를 생각해 본다면, 200만 명이 동시에 볼 수 있는 거리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 거리는 약 이천 규빗 1km정도 되는 거리입니다.  이 거리를 계속 유지 해야만 요단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적으로 생각한다면, 성도는 항상 하나님과 관계를 일정 수준에서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1) 새벽예배를 드린다든지, 2) 주일성수를 철저히 한다든지 3) 전도를 한다든지, 4) 금식을 한다든지 5) 산기도를 다닌다든지 6) 기도원을 간다든지 7) 구제와 봉사를 한다든지 기타 등등... 이런 영적인 것들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낙오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2009년도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중도에 낙오하고나, 후퇴하거나, 포기하는 일이 없이 스스로 성결하여 믿음의 선한 싸움과 달려갈 길을 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전진을 하기 원하십니다.  그것이 홍해가 되었던, 요단강이 되었던, 여리고 성이 되었던 간에 앞으로 전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전진해야 할까요? 

 

  첫 번째는 언약궤를 앞세워야 합니다.
  3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만나가 들어 있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언약궤와 함께하셨습니다.  언약궤를 좇으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좇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좇는 행동이 무엇입니까?  구약에는 제사였고 신약에서는 예배입니다.  1)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2)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3) 예배를 통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배는 목숨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제사가 삶의 중심이 되지 못하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듯이 예배가 삶에 중심이 되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가정이 안전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가 교회다울 수가 없습니다. 


  이 사실을 잘 안 아브라함은 그래서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습니다.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최전방에 두어야 합니다.  예배를 뒤로하고나, 미루거나, 포기하면 앞으로 전진 할 수가 없습니다.  요단강을 건널 수 없습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높은 산을 넘을 수 없습니다.  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예배를 가장 소중하게 여길 때 앞으로 전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스스로 성결해야 합니다.
  5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여호수아로 하여금 백성들에게 성결하라고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성결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칼과 방패와 활을 요구하시지 않았습니다.  성결이었습니다.  거룩한 삶을 요구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기적을 체험하고, 앞으로 계속 전진하려면 지식을 쌓고, 명예를 쌓은 것이 아니라, 정직을 쌓아야 합니다.  성결을 쌓아야 합니다.  구별된 삶을 쌓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똑같이 말하고 행동한다면 결코 앞으로 전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건너려고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결한 생활을 요구했을까요? 
  출애굽기 15장 13절에 답이 있습니다.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것이 이루어 진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요단강을 건너거나,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것은 이 세상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인간적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1) 성이 있으면 전쟁을 해서 함락을 하려고 합니다. 
  2) 석유나 물이 부족하면 전쟁을 해서 빼앗으려고 합니다. 
  3)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칼과 창이 아닌 성결로 이기려고 하십니다. 
  성결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소극적인 성결과 적극적인 성결입니다. 
  1) 소극적인 성결이라는 것은 회개입니다.  참회의 기도입니다.  자신의 죄를 눈물로 호소하며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2) 적극적인 성결은 깨끗한 삶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 통제를 받고 지시를 받고 그 분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아무리 귀한 금 그릇이라도 깨끗하지 못하면 쓰임을 받을 수 없습니다.  천한 나무 그릇도 깨끗하면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결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성결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요단강이 갈라지게 하여 마른 땅이 되게 하시고, 고속도로를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 길보다 빠른 길은 이 세상엔 없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성결하기 위해 힘써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날마다 함께 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6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일러 가로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나아가니라.”
  요단강을 건널 때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제일 앞에 섰지만 사실 제사장 앞에 서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입니다.  임마누엘 되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분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만이 앞으로 전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1) 지금 태산같은 문제 덩어리가 있을 것입니다.  2) 병들어 곪아 터진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3) 감당할 수 없는 여러 문제 때문에 살 소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우리 위해 기도하시는 주님을 인식해야 합니다. 
  여러분! 홍해를 가르고, 요단강을 가르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분이 어떻게 역사하시나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 보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날마다 앞으로 전진하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