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자 느혜미야

충성자 느헤미야 / 느헤미야 2장 1-10절|…
 

충성자 느헤미야  / 느헤미야 2장 1-10절 (p.728)

1) 아닥사스다왕 이십년 니산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내가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의 앞에서 수색이 없었더니
2)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3)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
4)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5) 왕에게 고하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6) 그 때에 왕후도 왕의 곁에 앉았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날에 행할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즐겨하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7)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거든 강 서편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저희로 나를 용납하여 유다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8)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저로 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나의 거할 집을 위하여 들보 재목을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고
9) 군대 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나와 함께 하시기로 내가 강 서편에 있는 총독들에게 이르러 왕의 조서를 전하였더니
10)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케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느헤미야는 평신도입니다.  평신도였지만 하나님의 일을 멋있게 감당하는 일꾼 중의 일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1%에 속하는 목회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99%의 평신도가 훨씬 더 많은 일들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가 될 때, 제가 여러분을 돕고, 여러분들이 저를 도울 때 가정이 부흥하고, 교회가 부흥하고, 악이 물러가고, 사단이 물러가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느헤미야는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 끌려왔습니다.  하지만 명석한 머리와 재능과 겸손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해 술맡은 관원장이라는 높은 지위에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고향 땅 예루살렘 성벽이 불에 타서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아닥사스다 왕에게 나아가 진언합니다.  자신을 보내서 예루살렘 성벽건축을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사실 느헤미야의 이 요청은 자신이 그동안 이방 땅에서 쌓아온 업적과 지위를 한 순간에 잃어버릴 수 있는 위험한 요청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면 유대국민들이 메대 파사와 힘을 합쳐 바벨론을 공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아주 민감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는 믿음으로 왕에게 진언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이렇게 목숨을 걸고 충성할 수 있었던 것은 세 가지의 뜻을 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첫 번째로, 거룩한 근심을 했기 때문에 충성을 할 수 있었습니다.
  2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느헤미야는 자신을 위해서는, 환경을 위해서는 아무 근심거리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니 근심을 하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밝게 웃으며 낙천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방인이 포로로 끌려와서 바사 왕국에서 다니엘 다음으로 높은 자가 되었을 정도니 얼마나 강한 사람이었겠습니까?  그런 낙천적인 자가 얼굴에 수색이 가득했습니다.  그를 근심케 한 것은 예루살렘성문들이 불에 타서 무너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주성령교회가 불에 탔습니다.  남의 일입니까?  자신이 일입니까?  주성령교회가 2층으로 올라가려고 합니다.  남의 일입니까?  자신이 일입니까? 
  느헤미야는 성전이 무너지는 것을 바로 자신이 무너지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성전 따로, 나 따로 2중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울기 시작합니다.  수일을 슬퍼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 1장 4절입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느헤미야는 슬퍼하고, 울고, 금식하고, 기도했습니다.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기도할 때 앞이 보이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줄 믿습니다.  기도하니 용기가 생겼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에게 진언을 하고 죽인다면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두 번째는, 헌신을 결단했기 때문에 충성할 수 있습니다.
  5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왕에게 고하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가 얼굴에 슬픔이 가득한 것을 보고 측은히 여겼습니다.  불쌍히 여겼습니다.  원래 신하는 왕에게 수심이 있는 얼굴을 보이면 안 되었습니다.  그것은 불충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왕은 느헤미야를 불쌍히 보았습니다.  그만큼 평상시에 느헤미야가 잘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평상시에 잘해 두면 언젠가는 득이 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왕이 자신을 불쌍히 여기자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지금 기회를 놓치면 실패할 것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유다 총독으로 보내 줄 것을 직언했습니다.  5절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왕에게 고하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여러분! 느헤미야처럼 의로운 것을 위해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살아생전에 교회당을 지어보겠다고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적어도 10 이상은 전도하겠다고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문지기가 되겠다고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결단의 자리에 나가면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열매로 안겨주실 것입니다. 


  “나는 다윗 왕보다 행복합니다”의 저자 천안중앙장로교회 심복순 권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일곱 교회를 건축하였습니다.  일찍이 일본에서 제과기술을 배워 1934년 고향 광덕면의 특산물인 호도를 넣은 신제품을 만들어 일본과 만주 등지에 판로를 개척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새벽기도를 끝낼 때부터 밤 열시까지 문을 열고 장사를 하여 거기서 번 돈으로 1979년 이후 예배당을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녀는 찾아온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벌어놓은 돈이 어디 제 것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물질 가지고 생색내고 으시대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이리 빠지고 저리 빠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좋을게 없더라구요. 하나님이 일을 맡기실 때는 결단을 해야합니다. 헌신의 기회를 놓치면 모두 허사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헌신하면 손해 보지 않습니다.  놀라운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희생했기 때문에 충성할 수 있습니다.
  7-8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거든 강 서편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저희로 나를 용납하여 유다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저로 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나의 거할 집을 위하여 들보 재목을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고”


  느헤미야는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자신의 지위, 명예, 생명을 바쳤습니다.  그는 오로지 성전이 재건되기를 원했습니다.  성전이 재건되면 자신이 정치적으로 인지도가 높아진다는 그런 싸구려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순수하게 하나님의 전이 세워지기를 원했습니다. 


  여러분! 진실은 통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진실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과 유다 땅에는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크게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포도원을 전당잡혔으며, 과중한 세금에 신음하고 있었고, 심지어 딸들을 종으로 팔아 연명하는 지경이었습니다.  게다가 암시장의 고리채에 묶여 경제적인 곤경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의 희생적인 모습에 백성들은 감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감동하니까 어떻게 됩니까?  자원하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여들었습니다.  가난한 농부들은 추수를 제쳐놓고 성벽공사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들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열심히 일했습니다.  물을 길으러 갈 때도 기계를 잡았습니다.  그랬더니 성벽건축을 할 수 있었습니다.  느헤미야 6장 15-16절입니다.  “성 역사가 오십 이 일만에 엘룰월 이십 오일에 끝나매,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막중한 희생으로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성전재건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보통 노력으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닙니다.  희생을 다할 때, 충성할 다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느헤미야처럼 충성된 성도가 되어, 무너진 가정을 일으켜 세우고, 직장과 사업장을 일으켜 세우고, 교회를 일으켜 세우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