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찬송하며 갑시다
( 성경 / 막11:1-11 찬송 / 1, 34, 131, 59 )
부활주일 전 주일을 종려주일 (Palm Sunday) 이라고 합니다. 이날 예수님께서 나귀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이 때 군중들이 자기 겉옷을 벗어 길에 펴고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래서 이 주일을 종려주일 또는 호산나주일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새 예루살렘인 천국을 향해가는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호산나를 찬송하며 가야합니다. 호산나란‘지금 우리를 구원 하소서’란 뜻입니다.(시118:25) 후대에 승리의 함성이 되었습니다. 개선장군을 환영하는 함성이 되었습니다. 우리 말로하면 만세와 같은 승리의 환호성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호산나 찬송을 부르며 가는 삶입니다. 그 깊은 비밀이 오늘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1. 매여 있는 인생을 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서 매여 있는 나귀와 아직 아무 사람도 타보지 않은 나귀새끼를 풀어 오라고 하셨습니다.
1) 매인 나귀는 유대 백성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율법에 매여 있었습니다. 율법의 정죄에 매여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의 속국이 되어 있었습니다.
2) 나귀새끼는 이방인을 상징합니다.
모든 이방인은 나귀새끼같이 서툴고 미숙한 존재들입니다. 불신자는 하나님의 법인 10계명에 서툴고 성경과 교회생활에 익숙하지 못한 아주 연약한 자들입니다.
3) 예수님은 사도들을 통해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불러서 주님께로 오게 하셨습니다.
우상숭배와 사신숭배와 이 세상풍속과 이교사상에서 주님께로 오계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모든 얽매인 죄악에서 풀려났습니다. 하나님의 법에 길들이지 못한 미숙한 자들이지만 주님께 오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호산나 찬송하며 가게 되었습니다.
2. 주님이 써주시기 때문입니다.
“주가 쓰시겠다하라”(11:3, 마21:3) 고 하셨습니다. 매여 있던 나귀와 나귀새끼가 주님께 쓰임이 된 것입니다. 그때 나귀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1) 그 등에는 사람들의 겉옷이 얹어젔습니다.
겉옷은 대부분의 경우 출입복입니다. 예복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품위와 권위와 명예를 상징합니다. 주님께 쓰임이 되면 이 모든 것을 얻게 됩니다.
2) 그 등에는 주님이 타셨습니다.
주님은 창조주이십니다. 만유주이십니다. 전지전능하신 주님이십니다. 주님께 쓰임이 되면 주님을 모신 특별한 존재가 됩니다. 이 나귀가 주님께 쓰이지 않았다면 평생 무거운 짐을 지고 채찍을 맞으면서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며 일했을 것입니다.
3) 주님을 태운 나귀가 가는 길에는 겉옷과 종려나무 가지가 펴졌습니다.
나귀는 그것을 밟고 거룩한 성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는 승리와 번영의 상징입니다.(시92:12) 아름다움의 상징입니다.(아7:7-8)
나귀는 겉옷이나 종려나무가지를 감히 밟고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을 태운 나귀의 길에 소중한 겉옷과 무성하고 아름다운 종려나무가지를 펴놓았습니다.
주님이 써주시는 사람, 주님을 모신 사람의 길에는 모든 사람의 겉옷이 발아래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모든 승리와 번영과 아름다운 영광이 발밑에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애굽에 종으로 팔려간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 되어간 다니엘이 파사제국의 총리가 대선지자가 되었습니다. 노예의 딸로 태어나고 그나마 조실부모하고 4촌 오빠 모르드게의 양육을 받아 성장한 에스더가 파사왕 아하수에로의 왕후기 되어 수산궁을 차지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쓰임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특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호산나를 부르면서 가야합니다.
3. 성성(聖城)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귀를 타시고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이르셨습니다.
1) 성성에 이르신 길은 겸손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나귀새끼를 타신 것은 겸손하셨기 때문입니다. 주전 518년경에 선지자 스가랴 가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슥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 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 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2) 성성에 이르신 길은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호산나를 부른 것은 ‘지금 우리를 구원 하소서‘ 라고 구원의 노래를 부른 것입니다.
3) 성성에 이르신 길은 기쁨의 길이었습니다.
종려나무를 흔들며 구원의 노래를 부르는 길은 한없이 기쁘고 즐거운 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면 우리는 겸손한 삶을 살게 됩니다. 구원의 기쁨과 즐거움을 가지고 거룩한 성을 향하여 노래하며 춤추며 갑니다.
우리는 오래지 않아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이르게 됩니다. 그곳은 이 세상의 염려와 근심과 눈물과 아품과 죽음이 없는 곳입니다.
①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요 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② 사도 요한이 천사의 인도를 받아 성성을 보았습니다.
계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③ 이 아름답고 찬란한 성성에서 우리는 영원히 삽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구주 예수님과 구원받은 성도들이 영원히 함께 살게 됩니다. 그 삶은 눈물이 없고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 없습니다. 아픈 것이 다시는 없고 이별도 없습니다. 만물이 새롭고 생명수가 흐르고 열두 달 생명과가 맺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호산나를 부르며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이 나귀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군중들이 호산나를 부르며 앞에서 가고 뒤를 따랐습니다.
세 가지 비밀 때문이었습니다. 첫째는 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써주시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성성에 이르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를 우리에게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모시고 마음껏 호산나를 부르면서 천국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