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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시96;9 찬송-204장 새벽 예배 롬2;25-29 마음에 할례를 행하라-모양만 내는 신앙 생활 25. 네가 율법을 행한즉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한즉 네 할례가 무할례가 되었느니라 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의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판단치 아니하겠느냐 ? 28.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쉬운 성경 25. 여러분이 율법을 지키면 여러분이 받은 할례는 가치 있는 것이 되지만,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여러분은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처럼 되고 맙니다. 26. 반대로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이 율법이 명하는 내용들을 지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할례를 받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겠습니까? 27. 할례는 받지 않았어도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할례는 받았으나 율법을 어기는 여러분을 오히려 율법의 파괴자라고 판단할 것입니다. 28. 그러므로 겉모습만 유대인인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유대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몸에만 행해진 할례는 진정한 의미에서 할례가 아닙니다. 29. 마음으로 유대인인 사람이 진정한 의미에서 유대인입니다. 그리고 율법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마음에 받는 할례가 진정한 의미의 할례입니다. 그런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습니다.
본문은
바울은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 삼으셨다는 언약의 증표인데도 유대인들은 율법의 근본 정신인 사랑과 믿음과 순종을 저버린 채 할례와 같은 형식적인 율법 준수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오류에 빠진 것을 지적하며 율법의 영적인 의미를 깨닫고 마음에 새기고 온전히 따르는 자만이 참된 할례자임을 말하며 내면적 유대인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① 주일 예배로 자신의 종교적인 의무를 다했다고 자위하지 말고 날마다 계명을 실천해야 한다 ② 성도라고 자처하면서도 증거가 열매로 나타나지 않으면 오히려 불신자보다도 책망받는다 ③ 하나님의 자녀답게 마음을 정결케하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영적 의미 25.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살고 순종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인정받고 받아드려지는 것이다 =문명인은 대형 마차를 만들지만 자기 자신의 두 다리는 쓰지 못하도록 만들었다(에머슨) 26. 주일 하루 예배드리고는 의무를 다했다고 자위하지 말고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 =인간의 행동은 옷과 같아야 한다. 화려하기 보다 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한다(베이컨) 27. 성도라는 외적인 이름이 중요하지 않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데 우리의 행위는 아무 역할도 못한다(토마스 아담스) 28. 하나님의 자녀답게 늘 하나님을 의식하며 진실로 하나님의 것이 되어 살아야 한다 =율법으로 의인이 된 사람은 아무도 없으나 믿음의 옷을 입음으로 의롭게 된다(한경직) 29. 인간들의 순간적인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칭찬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모든 일은 십자가 위에 있다. 매일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면 생명과 평화가 없다(겜비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플로라는 게를라 감옥(루마니아)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가 주일날 강제 노역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의 두 팔과 다리를 매질하여 결국 마비시켰다. 그는 목밖에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런 몸을 하고서는 가족이 돌봐주거나 하다못해 양로원에 있는 것도 괴로울텐데,
그는 가까운 친구들이 그를 도와줄 물이나 담요 한 장도 없는 감방에 갇혀 있는 형편이었다.
그는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숟가락으로 그에게 음식물을 떠먹여줘야 했으나,
우리에게 숟가락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 가운데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의 얼굴에선 광채가 났다. 동료 죄수들이 가끔 그의 침대 곁에 둘러앉아 각자의 슬픔에 깊이 잠겨 아무리 앞을 내다봐도 비관적이라고 한탄할 때면 그는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만일 앞을 봐도 별로 신통치가 않으면 위를 한 번 보는게 어떻습니까? 재판을 당하던 순간에 교회의 성도들로부터 배반을 당한 채 자기를 향하여
돌을 던져대는 성난 무리에 둘러싸였던 스데반 형제는 그때에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모습을 발견하지 않았습니까?
그 광경이 스데반 형제의 마음을 위로하였듯이 당신들 마음도 평안케 할 것입니다.
위를 한번 쳐다보십시오.”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리신 예수님의 상처입은 가슴을 우리는 경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