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내용 |
| 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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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성공의 의미” (마 14:22-33) 대학 입시를 위한 수능시험이 이번 주간 목요일로 다가왔습니다. 이번 우리 교회에 소속된 자녀로서는 모두 열아홉 명이 수능시험을 치르게 되는데, 오늘 예배에는 특별히 이번에 시험을 치르게 될 자녀들이 여기 함께 참여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또한 고등부에 속한 다른 자녀들도 선배들을 위하여서 모두들 함께 이 예배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여러 주간 전부터 이들을 위한 특별기도회를 가져 왔습니다. 시험을 치게될 자녀를 둔 부모님들뿐만이 아니라 다른 교우들도 함께 참여하여 기도회를 매일같이 가지고 있는데, 다같이 좋은 성적을 얻고 그래서 ‘성공’하기를 열심히 기도하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성공을 위해서 우리는 열심히 기도하기도 합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의지 가운데 가장 강한 의지는 아마도 성공의 의지일 것입니다. 사람은 거의 본능적으로 성공하고자 하는 성취욕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성공의 성취를 위해서 우리는 자나깨나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먼저 우리가 꼭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 과연 성공이고, 또한 무엇이 과연 실패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성공이라고 생각하시며 또 무엇을 실패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번에 치르게 될 수능시험!―이것이 과연 인생 전체를 가늠하는 ‘성공과 실패의 평가기준’이 되는 것입니까? 모두 ‘성공! 성공!’ 합니다만, 이 성공의 의미를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공에도 여러 단계와 또한 여러 종류의 성공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목적’으로서의 성공이 있습니다. 시작부터 목적이 선하고 분명하면, 결과야 어떻든 간에 목적은 성공인 것입니다. 또한 ‘과정’으로서의 성공이 있습니다. 최선을 다한 사람은 “결과는 하늘에 달린 것이고, 나는 여한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 과정에 있어서 분명한 성공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 ‘결과’에 있어서 성공이 있습니다. 그 일의 결과가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은 성공인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성공에 대해서 이러한 내용은 잘 보지를 못합니다. 그저 실적만을 보면서 ‘성공이다 실패다’ 하고 평가를 합니다. 그래서 불행하게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우리 인생을 그저 ‘성공과 실패’로서 말하고 있지만,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 크리스찬에게는 엄밀히 말해서 ‘실패도 성공도 없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은 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섭리하심과 그 경륜 속에서 살아가는 것임으로,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실패도 하나님의 뜻이요, 성공도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크리스찬은 ‘평가기준’부터가 달라야 하고,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고서 성공과 실패를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생각을 쉽게 하기 위해서, ‘연극’의 경우를 여러분 생각하여 보세요. 흔히 우리 인생을 ‘무대와 같다’고―연극에다가 비유를 하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가 ‘우리 인생무대’에서 움직이는 ‘배우’와 같은 것인데, 그런데 이 인생 배우역에 있어서, 우리 인간의 생각으로는 ‘왕의 역’을 맡거나 또는 ‘높은 지위의 역’을 맡은 사람을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아랫사람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실패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돈을 잘 벌고 사업이 번성하면 성공했다고 여기고, 그 반대면 실패했다고 흔히들 여기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러분께서 실재로 연극이나 영화를 보실 때면 느끼실 것입니다만, 연극에 있어서 왕이나 돈을 잘 버는 사람이 주인공으로 항상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작가의 관점에 따라서, 같은 사건 속에서도 주인공이 바뀌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원탁의 기사’란 작품에선 ‘아더 왕’이 아니라 그의 부하 한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의사 지바고’에선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중에서 ‘레닌’이 주인공으로서가 아니고, 한 의사가 주인공이 됩니다. ‘25시’란 작품에서는 2차 세계대전 중에서 어느 멍청한 시골 농부가 그 주인공이 됩니다. 성경을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 ‘역사’란 이름의 무대에 등장하여 각기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이라는 절대적 각본에 따라서 움직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세계 역사의 무대에서 하나님의 각본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각본을 쓰실 때에는 나를 왕으로 등장시키시든지, 하인으로 등장시키시든지, 농부로 등장시키시든지 ― 그 배역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것입니다. 어느 역을 맡건 간에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지금 바로 ‘여러분―당신’이라는 현재의 그 역을 맡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분명히 말해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바로 나를―여러분 자신이란 역을 맡고 있는 바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여서 각본을 쓰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인생무대에서 바로 여러분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인생무대에서는 여러분이 등장하게 되는 그 신분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인공으로서 맡겨진―여러분이 매일같이 성실히 수행하고 계시는―바로 그 실재인 입니다. 따라서 내게 맡겨진 그 역할은, 작가이시며 또한 감독이 되시는 하나님 편에서 볼 때 비로소 성공과 실패가 가려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점을 알고 살면, 자기 위치가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에 대해서 자기 역할을 분명히 잘하고 있다면 그것이 성공입니다! 우리가 연극을 볼 때도, 무조건 왕으로 등장했다고 해서 그 왕의 역을 맡은 배우를 위대하다고 말하지 않지 않습니까? 어떤 역이든 자기 역할을 잘 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그 사람은 참으로 위대한 연기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볼 때, 하나님께서 쓰셨고 또한 지금도 쓰고 계시는 각본에 따라서,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오늘 우리가 잘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성공인 것입니다!! 오늘 같이 읽으신 본문에는 ‘베드로’라고 하는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베드로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그는 성공한 사람이었습니까? 아니면 실패한 사람이라고 보십니까? 베드로의 생애를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때, 그의 생애는 성공과 실패의 연속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라는 개인적인 독특한 성격상, 그의 생애는 참으로 다양하게 전개됩니다. 한 예로, 베드로는 위대한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듣고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 못하리라.” ― 보시는 대로, 그는 신앙고백을 하고서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었습니다. 성공으로 보이지요! 그러나 불과 며칠 후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게 될 것을 말씀하실 때, 베드로가 항변하여 말합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이 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이렇게 엄히 책망을 하였습니다. 이 때의 장면은 그의 실패로 보이지 않습니까? 베드로는 칭찬도 받고 책망도 받았지만, 그러나 사실은 그의 실패도 성공도 모두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다 예수님을 나타나게 한 것임으로 위대한 것입니다! 또 베드로의 직업은 어부였습니다. 고기를 잡는 어부에게 있어서는 ‘고기를 잡았느냐 못 잡았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부로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았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새벽에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다가오셔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 그래서 깊은 데 그물을 던지고 많은 고기를 잡았지요. 그 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부터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바로 여기 이 장면을 한번 깊이 생각해 보세요. 베드로는 고기를 못 잡아서 실패한 것이었습니까? 또 그 반대로, 깊은 데 그물을 던지고는 고기를 많이 잡았기에 그 잡은 것이 성공한 것이었습니까? 아니지요!! 결국 그의 성공과 실패!―이 모두가 다 시몬을 베드로가 되게 하는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같이 읽은 본문의 말씀은 베드로의 실패의 경험이면서, 또한 그의 생애를 찬란하게 성공시키는 위대한 사건입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신 후, 예수님께서는 산으로 기도하러 가시면서 제자들에게는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날이 저물고, 마침 바람이 몹시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고생하고 있을 때, 이 때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로 오셨습니다. 이를 본 베드로가 “주님,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예수님께서 오라고 하시니 베드로는 물 위로 걸어서 주님께서 갑니다. 그러나 바람과 물결을 보면서 무서워하는 순간, 물 속으로 빠지게 됩니다. 베드로가 소리를 지릅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님께서는 즉시 손을 내밀어 붙잡아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말씀하시지요.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그리고 함께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그칩니다. 배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께 절하면서 말합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여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실패와 성공’ 그 자체가 아니라, ‘실패도 성공도 위대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누구나 다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성공했다 실패했다는 그 사실이 아니라, ‘성공이건 실패이건 다 위대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우리의 실패와 성공이 모두가 다 위대한 것이 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그 원칙 세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는, 그리스도인의 실패와 성공은, 그것이 모두 위대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항상 ‘말씀’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의해서 하는 일은 성공이요, 말씀 없이 하는 일은 실패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 베드로는 자기의 재주나 능력으로 물 위를 가려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걷게 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실패를 하든 성공을 하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0장 17절은 분명히 말씀하시지요.―“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는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이 ‘믿음’을 ‘신념’과 혼돈하고 있는 것을 흔히 보게됩니다. 그러나 이 ‘믿음’은 ‘신념’―이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말씀이 곧 우리의 생명입니다! 바로 이 말씀에 근거하고 의지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 없이, 정신력이나 자기 자신의 의지에 근거하는 것을 ‘신념’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둘은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자기 신념에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신념을 포기하여야 합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살펴보면,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은 오로지 말씀을 좇아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결코 그의 자의적인 판단이나 결단으로 행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출애굽의 위대한 과업을 수행했던 모세도, 철저히 말씀을 좇아서 행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무엇에 근거하여 일을 하고 있는 지 분명한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씀이 목적이 되고, 동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다는 한 청년이 어느 기도원에서 집회를 마치고 산에서 내려오는데, 여름철 폭우에 강물이 넘쳐서 건널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청년, 자기 마음 속에 믿음이 충만하여 ‘베드로처럼 나도 물 위로 걸으리라’ 생각하고는 “주여, 믿습니다!”―그리고는 강물 위에 발을 디뎠습니다.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물에 빠졌지요! 강물 속에 빠져서 거의 죽게 된 것을 마을 사람들이 겨우 건져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 청년은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가던 그 믿음이 왜 나에게는 없을까?’ 하고 탄식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청년을 어떻게 보세요? 우리는 이런 믿음 없는 것을 탄식할 이유!―조금도 없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청년은 오해를 하였습니다. 여러분, 본문을 자세히 보세요. 예수님께서 ‘오라’ 하셨기에 베드로가 간 것이지, 자기 생각으로 간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강물을 자기 생각으로 건너려고 했던 것이지요. 주님이 오라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오라하지 않은 일을 하면 결국은 이렇게 망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씀에 근거하고 살아야 합니다. 말씀이 없는 성공이나 실패는 다 불행합니다. 그러나 말씀에 근거한 일은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모두 위대한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이 ‘과연 말씀에 근거하고 있는가’를 바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일제 하에서 많은 애국지사들이 독립운동을 하였습니다. 그때 일본의 순사들이 저들을 사정없이 고문하며 묻습니다. “누가 시켜서 독립운동을 하였나?” ― 말하자면 배후세력이 누구냐는 것이지요. “아무개 동지가 하자고 해서 했습니다.”―이것이 일반적인 대답이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어떤 이는 이렇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시키긴 누가 시켰겠소? 하나님이 시켜서 한 것이요.” 보세요. 독립운동도 하나님이 시켰다고 하는 이 사실은 위대한 것입니다. 바로 이승훈 선생의 대답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하고 계시는 사업을 누가 시켰나 할 때, 바로 하나님이 시켰다는 근거와 확신과 고백이 있으면, 그 사업은 세상적으로는 혹 실패를 한다고 해도 사실은 위대한 것입니다. 공부를 누가 시켰나 할 때 “하나님이 시켰다”고 한다면, 공부를 잘해도 못해도 그는 위대한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주께서 말씀하신 일이라면 축복 받은 일입니다. 오늘 주께서 오라 하셨기에 여기 와서 예배드리는 사람은, 비록 피곤하여 예배시간에 존다고 하더라도 위대한 것입니다. 여러분, 천국도 주께서 오라 하시기에 가는 것입니다. 내가 가고 싶다고 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성공과 실패의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오직 말씀이 목적이요 동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그리스도인은 실패와 성공 모두에 ‘주님의 손’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러할 때 위대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물 위로 걷다가 풍랑을 보고 넘어졌습니다. 물 속으로 빠져 갈 때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하고 소리쳤습니다. 주님께서는 즉시 베드로의 손을 붙잡아 주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시간 ‘주님의 손을 잡고 있느냐? 인간의 손을 잡고 있느냐? 아니면 마귀의 손을 잡고 있느냐?’ ― 무슨 일을 할 때 ‘누구의 손’을 잡고 있느냐를 살펴야 합니다. 어떤 궁지에 있을지라도 예수님의 손을 붙잡는 사람은, 실패든 성공이든 위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성공을 하면 교만해서 주님의 손을 놓아버리고, 어려울 때는 남을 원망하고 미워하면서 주님의 손을 놓아버립니다. 인간의 모든 비극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 모두는 주님의 손을 다같이 붙잡고 있으십니까? 그 전능하신 손을 여러분은 분명히 의지하고 있으십니까? 베드로의 생애를 통하여 가장 큰 복된 체험은 ‘그가 물위로 걸었다’는 그 사실이 아니라, 물 속에 빠졌을 때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실패의 어떠한 쓰라린 순간에라도, 주님의 손이 나를 붙잡아주는 체험을 가질 수 있다면 이것은 최대의 복된 시간이 될 것입니다. 베드로의 경우에서처럼,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하는 이 순간은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는 신비한 비밀인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 행로에서 풍랑에 시달리며, 때로는 그 풍랑에 빠져서 허덕일 때, 누가 우리의 손을 잡아주겠습니까? 물 속에 빠져 들어가는 베드로의 손을 잡으시던 우리 주님의 손길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절실한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계십니다! 주님의 손을 붙잡는 것이 곧 능력이요 축복인 것입니다!! 오늘 아침, 이사야 41장 10절을 통하여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모두 깊이 마음으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강하고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드십니다!! 이 약속을 믿는 것이 바로 신앙이요, 이 신앙은 우리를 성공적으로 인도합니다. 강하고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드시는 그 순간만이 최대의 성공이며, 그 손을 놓아버릴 때 가장 큰 실패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손을 붙잡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미 붙든 십자가를 더욱 든든히 붙잡고, 날마다 더욱 힘차게 전진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십시다!! 그리고 세 번째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실패와 성공이 모두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배에 올랐을 때, 예수께 절하면서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위대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가 ‘물위를 걸었다, 물에 빠졌다’ 하는 그 자체는 다 이차적인 것일 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하시는 일이 잘 되었을 때,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 ‘오, 주님이시여!’ 하는 감사의 마음이 우러나십니까? 내가 건강하든지 약하든지, 가난하든지 부하든지, 모든 결과를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하고 고백하며 감사할 수 있다면, 여러분, 바로 이것이 위대한 것입니다!! 여러분, 청교도들의 경우를 보세요. 청교도들이 한 해 겨울을 보낸 다음, 그 다음해에 많은 사람들이 토후병으로 죽고 또 농사하여 거둔 것이라곤 비록 적은 수확이었을 뿐이지만, 그러나 그 한해의 모든 것을 다 바쳐 하나님께 감사함으로써 그렇게 위대한 백성들이 되지 않았습니까? 바로 이점을 우리 모두 깊이 마음 속에 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의 생애는 목적이 주님의 말씀을 좇아갔고, 과정이 주님의 손을 붙들었고, 결과에 있어서도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모든 사람이 고백하게 만들었습니다. 베드로는 물 위를 걸어도 예수님을 나타냈고, 물 속에 빠져도 예수님을 나타냈습니다. 그래서 실패도 위대한 실패였고, 또한 위대한 성공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성공이나 실패, 모두가 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성공이요 위대한 것입니다. 내가 성공할 때 많은 사람이 내 앞에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어야 합니다. 내가 실패해도 내 실패 때문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더욱 나타나고 있다면, 그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실로 위대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요, 우리의 간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성공의 길이며, 우리로 위대한 생을 살아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의 생애는 책망과 칭찬, 실패와 성공이 연속적으로 반복되지만, 그 사건이 결국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하심과 전능하심을 들어냄으로 위대한 생애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베드로의 생애를 본받아, 주님 앞에서의 우리의 실패와 성공 모두가 다 위대한 것임을 믿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할 때 우리의 모든 생애는 하나님께 다 영광이 되는 위대한 생애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14장 7절과 8절에서 하신 말씀을 우리 모두 마음 속에 깊이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