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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2008년 이 한 해를 모두 묶어서 하나님께 특별한 감사의 제단을 쌓는 ‘감사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아서 담는 그릇”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이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계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드리시는 그 ‘감사의 그릇’에 우리 하나님의 크신 은총과 축복이 넘치게 되기를 간구드립니다.
오늘 이 감사의 예배를 드리면서 감사와 관련해서 생각해 본다면, 우리 사람들을 다음의 세 부류로 나눌 수가 있을 것입니다.
먼저, ‘있음’으로 감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 세상에는 여기에 속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을 것입니다. 병을 낫게 해 주시니 감사하고, 물질을 주시니 감사하고, 시험을 잘 보게 해 주시니 감사하고, 직장을 허락해 주시니 감사하고, 사랑하는 부모 형제들이 우애하며 잘 지낼 수 있으니 감사하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니 감사하고…….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인가가 자신에게 주어졌기에 감사를 합니다. 은혜와 축복을 받을 때에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행위! ―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감사의 표현이요, 감사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감사에는 한 가지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만약 그 감사의 조건이 사라지면, 감사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감사가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보다 성숙한 의미에서의 감사―완전한 감사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비해, 있어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또한 있습니다. 사실 무엇인가 있음으로 감사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낫습니다. 감사할 무엇인가가 있을 때에 그것에 대해서 감사를 느끼고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은, 그래도 그 양심과 영혼이 살아있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세상이 점점 혼탁해지고 살벌해져 가고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나, 세상에는 ‘있어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크리스챠니티 투데이란 잡지에 이런 글이 실렸습니다. 오래전일입니다만, 미국 미시간 호수에서 배가 뒤집혔습니다. 그 때 한 대학생이 물속에 뛰어들어서 많은 사람들을 구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이제 그 대학생은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난 후 우연히 그 때 그의 행적이 알려지게 되었고, 그래서 기자들이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였습니다. “그 때 그 사건에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하고 기자가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그 대학생은 이렇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 때의 일로 제일 마음에 남는 것은, 목숨을 걸고 수십 명을 물속에서 구조해 주었는데, 모두가 병원에 실려 가고 가족들에게 둘려 쌓이며 법석을 떨었지만, 단 한 사람도 감사하다는 말을 남긴 이가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누가복음 17장에 나오는 ‘고침을 받은 열 명의 나병환자 이야기’를 연상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위해 갈릴리와 사마리아 사이를 지나가실 때, 열 명의 나병 환자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그들이 그 말을 듣고 가다가 모두가 다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오직 한 사람―사마리아 사람만이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리어 감사를 하였다는 얘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는데, 여기서 우리는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그 나머지 아홉 사람은 왜 돌아와 감사하지 못했을까?’ 하고 말이지요. 당시에는 문둥병자들이 마을로 들어가면 당장 돌을 맞게 되어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들이 가고 있을 당시에는 아직도 나병이 깨끗해지지 않은 상태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가라고 하시니까 가기는 가는데, 혹 이제 돌에 맞아서 죽을지도 모른다고 떨고 있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겠습니까? 또는 나병이 나았다는 사실에 흥분하고, 그래서 찾아온 사람들과 얘기하기에 바빠서 그랬겠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이 ‘가서 제사장들에게 보이라’고 하셨으니 그저 당연히 가든 길을 계속 갔었던 것이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을 보면 사실상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가진 것이 훨씬 더 많은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늘 부족하다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입니다.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무성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풍성하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많고, 우리에 소가 있고, 목장에 양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감사하지 않습니다. 늘 자기보다도 좀 더 많은 사람만을 바라보며, 그래서 항상 무엇인가가 부족하다고 불평을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21절에서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서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라고 지적하십니다. 그러므로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요,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하박국서를 통해서 들려주시는,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진정 감사하는 자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없을지라도 감사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없을지라도 기뻐하는 자입니다. ― 이것은 ‘무조건적인 감사’요, ‘절대적인 감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아무 것도 없는 속에서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선지자가 말하고 있는 이 여러 가지 것들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있어야 할 것들이었습니다! 무화과는 먹을 양식의 일종입니다. 포도는 음료수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 양식입니다. 감람나무 열매는 기름을 짜는 원료입니다. 밭의 먹을 것이란 하루 세끼 먹어야 할 식량을 말합니다. 양의 털로는 입을 옷을 만듭니다. 소는 밭을 갈고 일하는 수단입니다. 다시 말하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여섯 가지는 사치품이 아니라 생필품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감사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진정한 감사는 내게 주어지는 세상적인 복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며―내게 주신 구원의 은총 하나 만으로라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만족이 되시며, 그분이 ‘나와 함께 계심’으로 기뻐하며 감사하는 사람이 바로 성숙한 감사, 온전한 감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감사를 드리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없기 때문에 감사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또한 ‘있기 때문에 감사한다’는 말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이 말씀은 ‘있든 없든’, 바로 지금의 나의 현실―현재의 이 상태에서 넘치는 감사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세상 역사를 당신의 선하신 뜻대로 주관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에 대한 찬양과 감사’가 고백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박국은 비록 장차 유다가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16절에 보면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 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장차 유다가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8절에서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박국은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만으로 인하여’ 감사하고 기뻐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 밭의 먹을 것, 양과 소… 이 모든 것들이 없을지라도 그는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박국은 이 사실을 믿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박국 2장 4절에서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있는 것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사실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을 확신하게 됩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나를 위해 마련되어 있음을 확신합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나를 위하여 예비되어 있다는 사실!! ― 이 엄청난 희망! 이 어마어마한 상급이 이제 내 앞에 기다리고 있는데,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이 희망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에게 이 믿음이 분명하십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감사하십시오!―감사하십시오!! 그러면 이 확신, 이 소망으로 인하여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고 늘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다 이렇게 고백하며 살아가시리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며, 그래서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축복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19절에서 주시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여러분,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이 은혜의 축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항상 기뻐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힘으로 인하여 ― “나는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리로다!” ― 이 세상 속에서 비록 살고 있지만, 이 세상 사람들 속에서 비록 함께 살아가고는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는 구별되게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읽을 때면 늘 생각하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잘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송명희라고 하는 분이신데, 아시는 데로 어려서 뇌성마비를 앓아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분입니다. 그가 한 찬송의 시를 들어보십시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을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오늘 감사주일 예배를 드리며, 우리 모두가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고백하며, 완전한 감사의 제사를 모두 드리십시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그래서 오늘 본문 9절의 축복 속에서 살아가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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