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움과 거두움의 진리

본문 내용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Content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달란트 비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비유에 의하면 어떤 주인이 타국에 가면서 그 종들에게 얼마간의 책임을 맡겨주고 갔는데,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고,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그리고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돌아와서 그동안 수고한 것을 가지고 결산하게 되었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았던 사람은 또 다시 다섯 달란트를 남겨 모두 열 달란트를 가지고 왔고, 두 달란트를 받았던 사람은 또 다시 두 달란트를 더 남겨 왔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은 그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놓았다가 그것을 가지고 와서 주인에게 변명을 하게 됩니다.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음으로 내가 두려워하여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다가 가지고 왔습니다.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것입니다.”
   그리고는 본전 한 달란트를 내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이 종을 향하여 “악하고 게으른 종아” 하고 책망을 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주인이 한 말 중 ‘게으르다’고 하는 말에 대해서는 쉽게 납득이 갑니다만, 그러나 ‘악하다’고 하는 말에 대해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본전을 잘라먹는 사람도 많은데, 이 사람은 그래도 본전을 고스란히 가지고 왔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만하면 괜찮은 사람인데 ‘어째서 악하다는 말까지 들어야 하는가?’ 하는 바로 이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악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사람이 악하다고 한다면 무엇이 악하다는 말씀이겠습니까?  바로 이점을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비유를 다시 읽어보면, 그 종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우는 줄 알았나이다!” ―― 바로 이 생각이 악하다는 것이지요!
   ‘심지 않고 거둔다’는 말은 곧 요행과 기적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해야 할 수고를 하지 아니하고서도 얻기를 바라고, 헤치지 아니하고서도 모으겠다는 요행을 바라는 마음! ―― 이러한 ‘미신적인 기대, 이런 그릇된 믿음’을 악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또 한편 이 종은 “주여, 당신은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어떠한 마음입니까?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나님은 부하신데 뭐 그까진 한 달란트! 그것을 원하시겠는가?!’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신데, 주시려면 얼마든지 더 주실 수 있는 분이신데 뭐 이까짓 한 달란트가 그리 소중하겠는가……?!’
   그래서 마침내 자기가 맡는 한 달란트를 소홀히 여깁니다.  그리고는 그 결과의 책임을 오히려 하나님께 돌립니다. ― “주여, 당신은 능력이 많습니다. 다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자기의 책임! ― 적으나 많으나 자기의 책임! ― 맡은 바를 소중히 여길 줄 모르고 오히려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려고 하는 이러한 자세를 예수님께서는 ‘악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같이 읽으신 갈라디아서 본문말씀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없인 여김을 받지 아니 하신다’고요.  여기 ‘없인 여긴다’는 말은, 이전 개역성경에서는 ‘만홀히 여긴다’고 번역하였었는데, 성경 원어의 문자적 의미는 ‘코를 쳐들고 비웃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심에도 불구하고, 마치 하나님은 안 계신 것처럼―하나님이 안 보시는 것처럼―하나님의 역사가 없는 것처럼―영원히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심지 아니하고서도 거두려고 하고, 또 심고서도 그 결과를 책임지려하지 아니합니다.  사실 이것처럼 잘못된 것이 또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날 세상이 어수선하고 살기 힘든 것은 바로 이러한 일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그 사람처럼 ‘심은 대로 거둔다’고 하는 이 단순한 진리를 솔직하게 받아들여 주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그간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소위 청문회란 것이 열리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청문회에, 분명 잘못이 있어 불려 나왔음에 분명한 그 사람들이, 한결같이 어떤 말들을 하고 있었습니까?
   또 아주 오랜, 그래서 이미 역사가 되어버린 그 일들을, 그 때의 상황은 전혀 생각지 아니하고 일방적인 면들만 들추어내면서 “역사바로잡기”라고 생색을 내던 바로 지난 정권에서도, 벌써 그들 자신의 부정과 비리들이 속속 들어나면서 구속당하는 사람들이 계속 생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또한 무엇이라고 변명하고 있습니까?

   보세요.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내가 뿌리지 않은 씨가 싹텄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뿌렸다는 말입니까?  그런데도 내가 뿌리지 아니한 씨앗이 돋았다고 원망입니다.
   또는 많이 뿌렸는데 왜 적게 거두게 되느냐고 해서 또 불평입니다. ― 나는 좋은 것을 뿌렸는데 왜 나쁜 열매가 맺혔느냐?  내 수고는 선한 것이었는데 왜 결과는 이 모양이냐? ― 바로 이러한 불평들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최소한 우리 각자가 생각하고 있는 모든 것――이 환경, 내가 처한 처지, 내가 받은 대우――‘이 모든 것이 바로 내가 뿌린 바에 대한 추수다!’  ‘내가 심은 바대로 거두고 있는 것이다!’―이렇게만 서로들 생각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이렇듯 어려운 세상은 결단코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어느 날 노예선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벤허’라고 하는 영화를 보신 분들은 그 노예선의 형편을 잘 아실 것입니다만, 죄수들이 쇠사슬에 묶여 죽을 때까지 노를 저어야만 하는 비참한 곳이지요.
   여기에 왕이 방문하게 되었는데, 죄수들은 이거야 말로 일생에 한번 뿐인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모두들 자기는 무죄한데 억울하게 이곳에 끌려와서 고생을 하게 된다고, 죄수들 모두가 왕에게 목이 터지라고 억울함을 하소연합니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만이 아무런 말이 없이 조용히 물러나 있었습니다.  의아하게 생각한 왕이 물었습니다.  “자네는 왜 아무런 말이 없는가?”
   그 사람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나는 내 잘못을 잘 압니다.  그러니 이 고생을 해서 마땅하지 않습니까?”
   이 말을 들은 왕이 이렇게 호령을 하였습니다.  “여봐라.  여기는 모두 죄가 없는 사람들만 모여 있는데, 너희는 어째서 이 같은 죄인을 여기 섞어 두었느냐?  이 자를 당장 여기서 끌어내어 자기 집으로 쫓아버려라!”

   우리는 저마다 옳다고 우깁니다.  이것이 바로 문제인 것이지요.
   오늘 본문에 보면 “스스로 속는 일이 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일이 정말 허다합니다.  나는 내가 옳다고 주장하지만, 그 순간 그러나 내 양심은 증거합니다.  내 깊은 곳에 있는 진실은 분명히 무엇인가 말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변명을 합니다.  결국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지요!
   자기 변명, 자기 관용, 자기 옹호에 급급한 것이  바로 우리의 죄악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좀 더 진실해 보십시다.  하나님은 결코 없인 여김을 받지 아니하신다고 성경을 분명히 증거하십니다!!


   다음으로, 오늘 분문말씀은 또한 우리 인생에 있어서의 ‘심는 것’과 ‘거두는 것’ 사이에 있는 ‘추수의 원리’를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먼저, 본문이 말하는 진리는 이것입니다.  추수하는 것과 심는 것!――이것은 절대적인 관계에 있다고 하는 말입니다.  심었으면 꼭 거두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거둔다’고 하는 말은 바로 ‘심판’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심판!―이것은 사람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심는 것은 내 자유요 내 마음대로 심을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두는 것은 내 마음대로 못하는 것입니다.  일단 심었으면 거두어 들여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거두고 싶지가 않아도 불가피하게―필연적으로 거두어 들여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첫 번째 추수의 원리인 것입니다.

   다음 두 번째는, 심는 것과 거두는 것 사이에는 또 하나의 절대적 연관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뿌릴 때에는 내 마음대로 뿌리는 씨앗이지만, 그러나 거두어 드릴 때 가서는 내 마음대로 다른 것으로 바꾸어서 거둘 수가 없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콩을 심었는데 가을에 가서 팥을 거두겠다고 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원하든 원치 않던, 심어 놓은 것이면 이제는 거두어야 합니다.  반드시 그대로 거두어 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심판인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싫고 괴로워도 거두어 들여야 하고, 부끄러워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심음과 거둠의 진리’인 것입니다.
   봄에 심어서 가을에 거둡니다.  젊을 때 심어서 나이 많아서 거두게 됩니다.  어제 심은 것을 오늘 거두고, 다시 오늘 심어서 내일 거두게 됩니다.  언제나 심는 것은 자유입니다만, 그러나 거둘 때에는 선택이 없습니다!

   따라서 무엇을 심었느냐, 그리고 무엇을 기다리느냐? ―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만일 썩어질 것을 거두게 되었다면, 그것은 썩어질 것을 심었기 때문입니다.  썩어질 것을 심고도 영생을 거두겠다는 것은 바로 미신이요, 그런 것을 기다리는 것은 잘못된 신앙인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야곱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받고자 하는 축복을 위하여서 아버지 이삭을 속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속였던 이 야곱이 나중에는 어떻게 됩니까?
   후에 가서는 자기의 아들들에게서 이제는 속임을 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이를 시기한 형들이 애굽에 노예로 팔아넘기고서는 짐승에게 물려 죽었다고 말이지요.
   아버지를 속인 아들이 이제는 자신의 아들들에게 속임을 당합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당연한 얘기입니다.  그런데 주의해서 보세요.  야곱은 아버지를 한번 잠깐 속였지만, 그러나 아들들로부터는 13년간을 속았습니다!
   반드시 그대로 거둡니다!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우리 인생에서의 추수의 원리로서 첫째로, ‘심었으면 꼭 거두게 된다는 것!’   둘째로, ‘꼭 심은 대로 거둔다. 결코 다른 것으로 거둘 수가 없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자연의 추수의 원리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세 번째로, 오늘 본문 말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꼭 깨달아야 할 아주 중요한 문제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이란 이 씨 뿌림과 거두어드림’에 있어서는, 자연과는 다르게 ‘시간과 공간의 격차라는 것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시간과 공간의 격차’ 때문에 추수의 엄연한 진리를 외면하고 만홀히 여기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무슨 말씀인고 하니, 오늘 심고 내일 난다면야 누가 이 진리를 부정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야곱의 경우에서 본 바와 같이, 또 실상인즉 우리 모두가 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사실입니다만, 인생의 씨 뿌림은  오늘 심고 10년 후에 싹이 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몇 십 년 후에야 싹이 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뿌린 씨앗이 기억에서 다 사라진 후 몇 십 년 후에야 깜짝 놀라게 싹이 나기도 하고,  어떤 땐  추수는 아예 먼 훗날에 가서야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간의 격차 때문에 추수의 원리를 져버리고 적당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게 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바로 우리의 믿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여야 합니다.
   남들은 이 시간의 격차로 인하여 그 결국을 보지 못하고 지금은 제 멋대로 설쳐댑니다만, 그러나 그 때가 오지 아니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시간은 하나님께 속해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알지 못합니다만, 그러나 반드시 옵니다.  또 반드시 오고야 맙니다!
   따라서 믿음이란 바로 시간을 넘어서 ‘이 결국을 미리 바라볼 줄 아는 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우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하고 말이지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곳, 그리고 선지자를 죽이는 이 예루살렘이 이제 멀지 않은 장래인 40년 후에는 초토가 될 것을 내다보시면서 ― 우리 주님은 우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의 격차로 인해 이것을 보지 못하는 제자들은 “이 예루살렘 성전이 얼마나 굉장합니까?”하고 오히려 부러워만 하고 있었습니다.
   또 이것을 보지 못하는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은 자행하였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시간의 격차가 있었습니다만, 그 날이 오지 아니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시간의 격차가 있음을 깨달아, 심판의 그 날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시간의 격차가 있음을 깨닫지 못할 때, 우리 인간은 만홀히 여기는 행동을 하기가 쉽습니다.
   따라서 시간의 격차를 넘어서 다가오는 이 결국을 미리 바라볼 줄 아는 믿음의 눈을 우리는 꼭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시간의 격차!’―이것과 함께, 우리 인생이란 씨 뿌림과 거두어 드림에 있어서의 또 다른 하나의 문제는 바로 ‘공간의 문제’입니다.
   동에서 심었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나는 게 아니고 서에 가서 나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또한 우리는 깊이 명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배신한 그 사람으로부터 뒤에 꼭 배신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물론 그런 때도 있습니다만, 다 그런 게 아닙니다.  내가 배신한 사람은 여기 있는데, 내가 배반당하는 사람은 또 다른 사람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완강히 ‘아니라’고 해 봅니다만,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겸허히 물어보세요.  ‘아니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배반한 사람은 여기 있으나, 우리는 또 다른 사람으로부터 같은 배반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시간’과 ‘공간’의 격차가 우리 인생의 추수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 언제인가 다른 어떤 때가 아니라 ‘오늘―바로 지금’에!!  그리고 다른 어느 곳에서가 아니라 네가 처해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의와 진리와 믿음을 심으라고 강조하십니다.
   “오늘”―“이 자리에서” 내가 의와 진리와 믿음을 심어나갈 때에, 장차 맺힐 열매가 있음을 알고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  내가 긍휼히 여긴 사람은 여기 있지만, 그 언젠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내가 또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내가 오늘 용서했으니 오늘 또 다른 사람으로부터 용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심는 대로 거둔다’는 진리입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사람은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나 신령한 것!――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와 의와 화평을 심고, 그리고 사랑을 심어나가는 사람은 아름다운 열매를 반드시 거두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그 동안 무엇을 심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열매가 내 앞에 맺혀질 것이라고 기대하십니까?
   내 앞에 닥친 이 현실이 어떤 것으로 말미암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세상 사람들은 보면 죄악을 심어놓고 이것이 싹이 날까봐 마치 형사에게 쫓기는 죄수처럼 불안에 떨며, 그래서 조그만 일만 터져도 “아, 바로 여기에 싹이 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며, 공포와 두려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정말 이렇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의와 진리를 심어놓고 그 언젠가 맺혀질 아름다운 화평과 의의 열매를 생각하면서, 설혹 나에게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오늘을 묵묵히 참아나가는 농부의 그 인내와 확신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것입니까?!!
   우리 크리스찬은, 여러분과 저는, 마땅히 후자에 속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크리스찬의 모습이요, 이것이 또한 우리의 자랑인 것입니다!!


   “때가 이르면 거두리라!” ― 성경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권고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것이 언제인가는 알 수 없습니다.  또 어떤 모양으로 어디서 열매가 거두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30배, 60배, 100배의 열매가 꼭 맺히고야 말 것인데, 어느 장소―어느 시간―누구를 통하여 맺혀질지는 모르나  반드시 맺혀질 것입니다!
   그 날을 바라보며 인내하는 이 같은 믿음의 생활!! ― 이것이 바로 우리 크리스챤의 생활인 것입니다!

   시편 126편 5절 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남이야 알든 모르든, 선과 의와 진실과 기도를 뿌려나가면 반드시 열매는 맺히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순교의 터전 위에서 주의 몸 된 교회는 세워졌고, 또 앞으로도 계속 세워져 갈 것입니다.  그런데, 이 순교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이 순교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순교란 다른 게 아닙니다.  그냥 ‘죽었다’고 해서 순교인 것도, 또한 ‘죽어야만’ 순교인 것도 아닙니다.  순교란 바로 이 세상에서 심고, 그리고 당장을 빛을 못보고 죽어갈 지는 모르나,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가두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설사 이 세상에서 이렇다 할 빛을 못 보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 가서 거둘 그 영광스러운 열매를 생각하며 오늘도 묵묵히 뿌려 나가는 것!! ― 이것이 바로 믿음이요, 이것이 바로 순교인 것입니다!!

   이제 2008년 이 한 해도 한 달 여를 남기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심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무엇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또 무엇을 이제부터 또 심으실 것입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우리 마음속에 깊이 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나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생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