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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눅 3:3-6)
여러분은 누구를 기다려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것도 ‘와도 그만 안와도 그만인 그런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오매불망 간절히 만나기를 소원하는 그런 사람! ― 그런 사람이 이제 온다고 할 때, 이제는 그냥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기다리게 되지요. 이 기다리는 동안 주로 어떻게 준비하며 기다리게 되십니까?
오늘은 대림절 첫째 주일입니다. 대림절이란 말은 문자 그대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기간이라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 예수님께서 오시는데, 여러분, 어떻게 기다리시겠습니까?
오늘 같이 읽으신 본문 말씀에는 세례요한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도 6개월 먼저 태어난 광야의 사람입니다. 그는 광야에서 메시야의 오심을 예언했고, 그것도 멀리서 한 것이 아니라 바로 눈앞에서 ‘이제 곧 내 뒤에 오신다!’하고 예언한 사람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그는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면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보라, 바로 여기에 메시야가 있다. 바로 이분이시다!”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세례요한을 가리켜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해 준비하는 데에는 참으로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습니다만, 가장 잘 준비하는 것에 대해서 오늘 본문말씀은 바로 이 세례 요한의 입을 통해서, 일찍이 메시야의 강림에 대하여 예언하였던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인용하여 바로 그 방법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길이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옛날에 길 없는 그런 곳을 갔다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보따리를 걸머지고, 산을 넘고 내를 건너서 이렇게 가고 있는 사람! ― 서울을 간다고 나섰지만 길이 없기에,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먼 길을 떠나야 했는데, 이제 ‘서울은 이리로 가시오!’ 하고 앞에 길이 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하겠습니까? 그러나 길이 없다면, 가면서도 내가 바로 가고 있는지, 엉뚱한 데로 가고 있지는 않은지…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길이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길이 있음’으로 우리는 목적지를 향하여 바로 갈 수 있습니다. 또 내가 가고자 하는 그 곳을 향하여 바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길을 따라서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며 바른 믿음의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길이 있어야 합니다. 이 길이 우리에게 있어야만 우리가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영광에도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길이라고 했을 때 우리는 여러 가지 길들을 연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넓은 길, 좁은 길, 곧은 길, 구부러진 길, 꼬불꼬불한 길, 산길……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길이란 말은 이와 같은 뒷길이나 골목길 같은 그런 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옛날 로마제국에서 닦아 놓았던 군사도로 같은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High Way란 말입니다. 오늘로 말하자면 고속도로라는 말인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가 신앙에 이르자면―다시 말해서 메시야를 영접하자면, 먼저 ‘길을 잘 닦아야 한다!’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넓고, 바르고, 평탄한 고속도로와 같은 길을 우리의 삶 속에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위에서 보는 바대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꼭 예수를 믿어야만 할 사람인데도 그 마음에 길이 없어요. 그저 꼬부라지고, 울퉁불퉁하고, 이리저리 뒤엉키고, 마치 미로와도 같아요. 이 세상의 근심과 걱정―명예와 자만심과 교만―이런 것들에 뒤엉켜서, 자기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주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보게 되지 않습니까? 주님을 영접하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은 다 밀어 버리고, High Way를, 고속도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을 곧게 하고, 험한 길을 평탄케 하라!!”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당시 베들레헴에는 시집가지 아니하는 노처녀들이 우굴 거렸다는 것입니다. 메시야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날 것이라고 했으니 자기가 한번 메시야를 낳아 보겠다고 말이지요. 정말로 간절히,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이 오셨을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까? 그렇게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었건만, 그러나 막상 메시야가 오셨을 때 그들이 보인 행동들은 참으로 어이없는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헤롯은 자기도 찾아가서 경배하겠노라고 말하면서도, 뒤편으로는 아기 예수를 죽일 궁리를 하였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헤롯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어째서 가야바가 예수를 죽여야 합니까? 메시야를 찾아뵈어도 누구보다도 먼저 찾아가 뵙고 경배했어야 했을 그 대제사장 가야바가 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까?
바로 그들의 마음에 이 주의 길이 전혀 준비되어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라고 하는 이 높은 산들이 전혀 낮추어지지 못했고, 자기 유익과 명예, 탐욕의 골짜기들이 너무나도 깊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혀 메워지지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중심의 생각, 자기라고 하는 이 이기심의 골짜기가 메워지지 않는 한, 그리스도를 모셔드릴 길이 그에게는 없습니다. 너무나도 높고 높은 ‘나’라고 하는 이 산들이 겸손하게 깎여서 평탄케 되지 않는 한,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산과 골짜기를 밀어내고, 내 마음과 나의 삶 속에 ‘주의 길’을 우리는 준비하여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을 진정 영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마태복음 2장에 보면, 메시야 탄생의 소식을 듣고 온 성내의 사람들이 소동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도 기다리던 메시야가 오셨다니 얼마나 기뻐 날뛰었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가운데서 단 한 사람도 태어나신 메시야에게 찾아가 경배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그들은 기다린다고는 하였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주의 길’을 준비하고 있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모두 기다리던 그 메시야이기에 자기도 덩달아 기다렸을 뿐이고, 오셨다고 날뛰니 자기도 그저 덩달아 날뛰었을 뿐, 메시야가 오시는 참 의미!―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 이 임마누엘의 사건이 나와는 어떻게 관련이 되는지―그 의미가 무엇인지―바로 그들 마음속에 ‘주의 길’을 만들고 있지를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어떠한지 우리는 돌이켜 보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아니 나아가 세계 모든 곳에서 크리스마스가 제일 먼저 오는 곳이 어디인 것 같습니까? 우리 교회에서는 대림절이 시작하는 오늘부터 성탄장식과 함께 색전등에 불이 켜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백화점과 상가들에는 벌써 성탄장식과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리고 있습니다. 덩달아 사람들도 바빠지지요. 크리스마스라고 남들이 선물하니 나도 선물할 뿐이고, 남들이 모두 ‘Merry Christmas!\'하고 인사하니 나도 그렇게 하는 것이고… 그러다보니 말은 Merry Christmas라고 하면서도 ‘그리스도’와는 상관없는 ‘산타클로스’가 온 날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내 마음과 내 삶 속에 주의 길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진정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마태복음에 보면, 동방에서 박사들이 찾아와서 “어디서 태어났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을 것입니다!” 이렇게 그 출생한 곳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동방에서 온 박사들과 함께 같이 따라 나서서, 그들이 말한 바로 그곳에서 태어나신 메시야를 찾아가 경배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들은 만약에 헤롯왕이 경배하겠다고, 단순히 말만이 아니라 실제로 나섰더라면, 아마도 서로 다투어가며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을 것입니다. 그것도 남보다 할 걸음이라도 더 먼저 달려가서, 내가 제일 먼저 경배했노라고 서로 다투기까지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가지를 않았어요! 왜입니까? 헤롯의 눈치를 본 것이지요. 이 길이 바른 길인지 틀린 길인지 아랑곳없이, 남의 눈치를 보며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바로 그들 마음에는 주의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떠합니까? 내 인생여정을 통하여 꿋꿋이, 그리고 겸손히 주님 가신 그 길을 걷지 못하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동분서주하노라면, 주의 길은 그의 마음에 마련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과 내 삶 속에 주의 길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진정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준비해야 할 그 길! ― ‘그리스도의 길, 그의 오실 길’이란 무엇인 것입니까?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주의해서 들으세요. 예수의 가르침, 그의 명령, 그의 교훈이 ‘그 길’이란 말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바로 그 분이 곧 ‘그 길’이라는 말입니다!!
나더러 가라고 명령하시거나 지시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직접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이 ‘그 길’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 세상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고, 이 세상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고, 그 자신 희생과 죽음을 대가로 치루시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나를 위한 참된 길이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 마음에 이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한결같이 외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도 외치고 있습니다.
“네 마음에 길을 만들라! 네 삶 속에 주를 영접할 길을 만들라! 평탄하게, 곧게, 넓게, 안전하게 길을 준비하라! 메시야가 오실 그 길을 네 마음에, 네 삶 속에 준비하라!!”
우리가 보는 대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 꼭 예수를 믿어야 할 사람인데도 그 마음에 이 길이 없습니다. 잡초가 우거지고, 산이 높고 골이 너무 깊어요! 그리스도가 그 마음속에 오실 수 없는 그런 심령들을 봅니다.
여러분, 길을 만드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최근 여러 해 동안 우리나라에는 참으로 많은 토목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고속도로가 우리 몸의 동맥들처럼 전국을 하루 생활권으로 묶으며 연결되고 있고, 옛날의 구불구불하고 좁기만 하던 국도들은 이제 거의 대부분 4차선의 곧은 도로로 새롭게 정비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운전하실 때마다 느끼실 것입니다만, 얼마나 편리하고 좋은 길들입니까? 이렇게 좋은 길을 만들기 위해서는 ― 산은 낮추고, 골짜기는 높이고, 뚫어가면서 이렇게 길을 만듭니다. 좋은 길을 만드는 대는 이렇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의 길을 만드는 대에도 이 같은 작업이 필요한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은 겸손히 낮추어야 하고, 허영 된 마음은 다 불살라버리고, 지금까지 가졌던 모든 잡다한 생각들―복잡한 것들은 다 밀어버리고, 대신 믿음으로 채워서 반듯하고 곧은 ‘그리스도의 대로’를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길을 내가 예비하고 내가 그를 영접하면 이것은 믿음이요, 겸손이요, 순종이 되겠습니다만, 그러나 내가 만들지 않으면 이제는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높고 완악함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그 길을 예비하시게 되면, 파괴와 전쟁과 기근과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내가 스스로 낮추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낮추십니다. 하나님께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십니다. 그래서 길을 만드십니다!!
우리 크리스찬들 중에는 순조롭게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만, 그러나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다이너마이트를 얻어맞고야 길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쉽게 쉽게 하나님 앞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 것 같았고, 하나님을 믿기보다는 나를 믿는 것이 더 낫다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높은 마음을 낮추시고, 그 굳은 마음을 폭발물을 통해서 터뜨리십니다. 그 허영을 다 불사르고, 낮추고 낮추어서 발이 땅에 땋을 때까지 낮추어가지고, 비로소 길을 닦으십니다. 마음이 굳고 완악하면, 여기엔 하나님의 비상조치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라도 하나님을 영접하면 결과적으로는 다행입니다만, 그러나 얼마나 인간적으로 그 아픔이 큽니까?! 그러고 나서야 만들겠다고 한다면, 사실 얼마나 답답한 사람들인 것입니까?!!
메시야의 길―주를 영접하는 길―주가 임하고 다스릴 길을 예비하라고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메시야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수용적 자세를 취하라! 지금까지 가졌던 모든 생각, 복잡한 것! 다 버려라!!
마태복음 8장에 보면 한 백부장이 나오는데, 참으로 훌륭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자기의 종이 병들었다고 예수님께 고쳐주십사고 청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가 청하지도 않은 말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 집으로 가리라.” 바로 이 장면을 한번 그 당시의 현실 속에서 생각해 보세요. 백부장은 로마사람입니다. 로마군대의 장교입니다. 이 백부장의 입장에서는 이 초라한 갈릴리의 청년이 자기 잡까지 와 주겠다니까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그럴 수도 있는 장면이지 않습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백부장은 그러지를 않았어요. “저희 집에 오심을 저는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말씀으로만 하십시오. 내 위에도 사람이 있고, 내 밑에도 사람이 있습니다.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옵니다. 그러니 그저 말씀만 하십시오. 즉각 순종할 것입니다!” 이런 자세로 나올 때, 예수님은 참으로 기뻐하셨습니다.
참으로 그의 마음에 대로가 있었어요! 그 마음에 참으로 고속도로가 있었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를 칭찬하셨습니다. “온 이스라엘 중에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본 일이 없다.” 그리고는 계속 말씀하십니다. “네 믿은 대로 되리라!!”
여러분, 이것이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마음에 바로 이 같은 큰 길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큰 길을 우리 마음에 준비할 때, 우리 주님은 즉각적으로 그 길을 통하여 우리에게 임하시며, 우리를 권고하시며, 크신 은총을 항상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대림절 첫째 주일을 우리는 지키고 있습니다. 왜 이 대림절을 우리는 지키는 것입니까? 생각해 보세요. 우리 주님은 이미 2천여 년 전에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미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영생을 향한 구원의 길을 우리 모두를 위해 이미 마련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 대림절―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를 지키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이겠습니까? 교회력에 따라서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니, 이제 과거에 오셨던 주님을 단순히 기념하자고 이 대림절을 지키는 것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대로 보혜사 성령을 보내셔서 언제나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따라서 과거에 오셨던 주님을 기념하는 것은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우리에게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대림절을 지키는 것은 무엇 때문인 것입니까? 대림절―곧 기다리는 것이라면, 이제 무엇을 기다리는 것입니까? 바로 여기에 우리의 믿음의 핵심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분명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의 그 모습 그대로, 이제 다시금 이 세상에 오시겠다고 말씀이지요. 성경의 제일 끝인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 마지막 절에 이 약속의 말씀이 다시 한번 강하게 선포되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이 신앙! ―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 믿음의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이 사실―이 소망으로, 초대교회 때부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핍박과 순교당하는 가운데서도 굳센 믿음을 지켜나왔습니다. 어떠한 환란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승리하는 믿음의 생활을 하여온 것입니다. 진실된 성도의 입에서 늘 고백되는 말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마라나타!! 초대교회 성도들은 만날 때도, 흩어질 때도, 이렇게 서로 인사하였습니다. “마라나타! ― 주님 다시 오십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이 신앙으로 그들을 승리하는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대림절을 지키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처음 이 땅에 강림하실 때, 그의 탄생은 이미 예언되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강림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들에게는 또 다시 주님께서 재림하신 다는 사실이 이미 약속되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사실상 다 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오실 주님을 우리가 어떻게 맞이할 준비를 할 것입니까? 바로 여기에 처음 오실 때의 준비하던 그 모습이 오늘 우리에게 그렇게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기다린다고는 하였지만, 사실상 준비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주의 길을 준비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이들을 볼 때,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참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참으로 진실하고, 그리고 순종과 충성을 가지고, 다시 오실 주님을 위해 주의 길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상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준비를 이미 하고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따라서 해마다 대림절을 지킬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준비상태를 다시금 꼼꼼하게 점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이 대림절을 지키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준비 ― 우리가 이미 공사하고 있는 주의 길을 새롭게 계속 앞으로 닦아 나가고, 이미 닦아 놓은 길들에 대해서는 새롭게 보수해 나가며, 더욱 주의 길을 아름답게 준비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른 회개―바른 진실을 가지고 주의 길을―그리스도의 대로를 곧고 평탄하게 만들며, 이제 4주 후로 다가올 금년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도록 하십시다. 그러할 때, 내 일생에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뜻 깊은 크리스마스를 우리 모두 기뻐하며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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