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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를 떨어 버려 증거를 삼으라” (눅 9:1-6)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들을 전도여행에 파송하시는 장면입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분부를 하셨습니다. “어느 마을로 들어가든지 합당한 집을 찾거든, 그 집에 머물면서 그 마을에 복음을 전파하도록 하여라.” 이 말씀은 우리가 쉽게 이해하고 또 수긍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하신 말씀에서 우리는 아연 긴장을 하게 됩니다. “만약에 그 마을 사람들이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그 마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도대체 이 말씀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 여러분은 이 말씀이 어떻게 들리십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발의 먼지를 탁탁 털면서 화풀이할 것을 가르치고 계시는 것이겠습니까?
우리가 아는 대로 우리 예수님은 ‘사랑의 주님, 인자하신 주님, 인내가 많으신 주님’이시지 않습니까?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말씀을 화풀이 할 것을 가르치신 것이라고 보기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모습입니다. 또 ‘먼지를 떨어 버림’으로써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증거를 삼으라는 말씀이겠습니까?
이 말씀을 우리가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먼지’라는 용어에 대하여 우리가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는데, 특히 거기 7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여기 보면, 우리 인간은 크게 두 가지 요소로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하여 줍니다. 하나는 땅의 ‘흙’이요, 다른 하나는 창조주 하나님의 ‘생기’입니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고 하는 이 ‘흙’이란 단어가, 성경 원어로 보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리라”고 말씀하실 때의 ‘먼지’란 단어와 같은 말이 쓰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에서는 두 곳에 다같이 ‘dust’란 말을 사용하여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한국말로 번역된 이 ‘흙’이란 말과 ‘먼지’란 말은 같은 말인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원래 농사를 짓던 사람이기 때문에, ‘흙!’ 하면 무언가 상당한 애착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이광수란 작가는 일찍이 우리 민족의 정서를 그린 “흙”이란 소설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흙!’ 하면, 무엇인가 비옥하고 무엇인가 의미가 있는 것 같은 그런 인상을 우리에게 주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람을 ‘흙’으로 만들었다고 하면, 그래도 무엇인가가 거기에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을 가지게도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먼지-dust’라고 하면, 어떤 느낌을 가지게 되십니까? ― ‘우리 사람이 ‘먼지’로써 만들어졌다!’
옛날, 포장이 되지 않은 시골 신작로에 어쩌다 트럭이라도 한 대 지나가면, 뽀얗게 먼지가 일어서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고는 저 멀리 뛰어서 달아나곤 하였습니다. 방바닥을 쓸고 나면 저 멀리 나가서 털어 내어버리는 그러한 먼지! ― 정말로 무가치한 것의 대명사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인간이 이와 같은 티끌로서, 먼지로서 만들어졌다고 한다면, 거기에서 무슨 가치를 발견할 수가 있겠습니까?!!
성경은 우리 인간이 바로 이런 ‘먼지, 티끌’로서 만들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무가치한 먼지 같은 우리에게 고귀하신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심으로 ‘생령’이 되게 하셨으니, 티끌에게 있어서야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 것입니까?
다윗은 그의 감사 찬송인 시편 30편에서 이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무덤에 내려 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진토가 어떻게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이 말씀은, 우리 인간이 무덤에 묻히는 것은 그가 원래 만들어졌던 ‘진토’―바로 ‘먼지’이지만, 비록 먼지로 만들어졌어도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할 수 있는 하나님의 생기를 받았음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바로 이점을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을 구성하는 두 요소―‘진토/먼지’와 ‘생기’! 그런데 만약 우리 인생에 있어서 바로 이 ‘하나님의 생기’가 그에게 없다고 한다면, 그는 곧 무엇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먼지’뿐인 것이지요!! 우리가 때때로 장례식을 위해서 영안실에 가보면, 주위에서부터 절망으로 인해 울부짖는 소리를 들을 때가 많습니다. 그 절망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되십니까?
결국 우리의 인생! ― 먼지로써 끝나버리느냐? 생령으로 시작하느냐? ― 바로 이 차이인 것입니다!! 내가 받은 하나님의 생기! ―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할 수밖에 없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 됨’을 받아들이며 인정하지 않을 때, 그 인간이란 결국은 무엇입니까? 결국은 한 줌의 먼지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제 제자들이 복음을 들고 각 마을로 찾아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기’에 대해서―이 귀중한 진리에 대해서 선포하며 가르쳐 주어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여전히 먹고 마시는 물질에만 집착하는 인간들은 결국 무엇인 것입니까? 결국은 인간의 2대 요소 중에서, 오직 먼지만을 소유하는 무가치한 자들일 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마을을 떠날 때에 ‘발의 먼지를 떨어 버려 증거를 삼으라’는 말씀은 ―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복음을 거부하는 인간은 결국은 발에서 떨어 버리는 먼지와도 같이 무가치한 자임을 눈으로 보여 가르치며; 그런 인간은 오로지 먼지뿐이란 사실을, 그리고 먼지는 떨어내어 버려야 한다는 사실의 증거로 삼으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렇게 보았을 때, ‘먼지를 떨어 버리라’는 이 말씀은 비단 제자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 개개인을 향하여서도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분부하시는 말씀인 것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먼지를 떨어 버려 증거를 삼으라!” ― 이 말씀이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첫 번째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나는 떨어버려야 할 먼지를 너무나도 많이 지니고 있는 ‘먼지투성이의 존재임’을 시인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옛날,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사람들처럼, ‘내가 무슨 먼지인가? 내게 무슨 떨어버릴 먼지가 있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자들에겐, 아예 먼지를 떨어버려야 한다는 그 말조차도 귀에 들리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점에 대해서 로마서 7장 18절에서 24절 말씀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p.24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여러분, 중요한 것은, 여기 사도바울이 고백하는 것과 같이,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결국 ‘나는 내가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할지라도 어쩔 수 없이 악을 행하고야 마는 죄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 ‘먼지’의 요소가 너무나도 많은 나 자신!! 그러나 이렇게 나의 죄인 됨을 고백할 때, 나는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며, 이 땅에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임마누엘로 오신 그리스도를 영접하며, 그래서 내게 있는 불결한 먼지들을 떨어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뉴스에 보도되는 끔찍한 사건들을 볼 때나, 또는 우리 주위에서 가끔씩 만나게 되는 철면피한 사람들을 볼 때에는, ‘어쩌자고 하나님께서는 저런 사람도 이 세상에 그대로 두고 계시는 것일까?’ ― 누구 말마따나 ‘좀 저런 사람은 제발 좀 이 지구촌에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그런 때마다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할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럼 나는 어떠냐?’ 하는 것입니다. ― ‘나는 어떠하냐?’
서양 동화 가운데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Midas란 임금님이 있었는데, 이 임금님은 어찌나 황금을 좋아했던지 그가 긁어모으는 황금의 양이 물론 엄청났지만,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양이 차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손을 대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황금으로 변했으면 좋겠다’고 항상 소원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천사가 나타나서 그의 소원을 이루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부터는 그의 손이 닿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다 그대로 황금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 얘기는 그 다음에 교훈적인 이야기가 계속되긴 합니다만, 여기서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만약 이 Midas 임금님처럼, 내 마음 속에 생각하는 것이 그대로 내 앞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게 된다고 한다면, 어떤 일들이 내 앞에 전개 될 것 같습니까? 솔직하게 한번 생각해보세요. 나는 때로 속상하고, 미워할 때도 있고, 분을 낼 때도 있습니다. 그러할 때마다 어떤 일들이 내 앞에 나타나겠습니까? ―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앞에서 죽어 넘어지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이 부러지고, 눈이 빠져버리고, 팔이 부러져 나가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컨츄롤하지 못해서, 뉴스에 보도되는 것과 같은 실제 행동으로써 그런 사건들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물론 여러분은 결코 그와 같은 나쁜 행동을 행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어떠하십니까? 마음속으로는 혹 똑 같은 생각들을 품어본 적은 없으십니까?
내 자신이 바로 이러한 죄인입니다! 이것을 깨달으셔야 합니다. 이것을 인정하셔야 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하고 탄식하던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탄식하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내게서 바로 이 먼지들을 털어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본문에서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그러면 ‘먼지를 털어버린다’고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9절에서 그 구체적인 방법을 이렇게 제시하십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하십니다.
여기 “미워하라”는 말은 ‘멀리하라’, 다시 말해서 ‘떨어버리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말씀이 중요합니다. “선에 속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죄를 회개한다고, 먼지를 떨어버린다고, 그래서 악을 미워하고 뉘우치기만 하면 되는 것이겠습니까? 회개한다는 것은 단순히 죄를 뉘우치고 고백하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바로 선에 속하는 것!―그것이 바로 먼지를 떨어버린다고 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언젠가 한번 이분에 관해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있었던 일입니다. 다음 축구 월드컵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열리게 되는데, 지금 우리나라는 그 예선전을 열심히 뛰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남아프리카 공화국! ― 한 때는 올림픽에도 참전하지 못했고, 세계 많은 나라들이 단교를 하고 그곳으로 여행하는 것마저도 금지가 되고 있었던 나라였습니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인종차별을 극심하게 하고 있던 나라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이 인종차별을 무너뜨린 인권운동가로서 우리는 대부분 만델라라는 사람을 생각하게 됩니다만, 그러나 그보다도 훨씬 더 위대한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당시 인종차별이 한창이었을 당시, 흑인들이 모이는 성 시온 교회 (Holy Church of Zion)에서 예수님의 수난일인 성 금요일에 다른 대부분의 교회들처럼 성찬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해 이 교회에서는 바로 이 예배 때에 특별한 행사를 계획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 정신을 본받아서, 누구든지 자기가 정말로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의 발을 씻어주는 예식을 베푸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바로 이 예배에, 이 흑인들만 모이는 교회에, 백인 판사님이 참석한 것입니다. 그분은 흑인과 백인 모두에게 아주 존경을 받는 판사로서, 다음의 대법원장으로 내정되어 있던 올리버 판사였습니다. 바로 이 판사님이 이 교회에서 계획하고 있는 세족 예식의 소식을 듣고는, 바로 그 교회에 다니고 있는 자기 집의 흑인 여종 Martha Fortuin의 발을 씻겠다고 신청하고 여기 나타난 것입니다. 그 날, 이 판사님은 자기 집 흑인 여종 앞에 무릎을 꿇고 발을 씻겼을 뿐만 아니라, 그 검은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예배당 안은 숙연하여졌습니다. 올리버 판사는 그 자리에서 이렇게 간증하였습니다. “마르다는 내 집 종으로서, 정말 오랜 세월동안 나의 아들딸들을 돌보아 왔으며, 내 자식들이 발을 씻어주는 모습을 나는 수백 번도 더 보아 왔습니다. 정말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참으로 감동을 하였지요! 그러나 이 소식이 퍼지자 백인 사회에서 물의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내정되었던 대법원장 자리가 취소되어 버렸고, 그의 판사직마저도 곧 이어 박탈되고 말았습니다. 시온 교회의 흑인 목사가 이 올리버씨를 위로하기 위하여 방문하였을 때, 올리버 판사는 이렇게 말하더라고 합니다. “판사직도, 우리 인간이 가지는 이 사회에서의 다른 모든 지위들도, 우리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는 결국은 먼지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먼지보다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과 감사가 더 중요한 것이지요!!”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올리버 판사는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2대 요소 중에서 ‘하나님의 영’이 더 중요한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먼지를 떨어버리는 일을 과감하게 실천한 사람이었습니다. 단순히 악을 미워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에 속하는 일을 과감하게 행한 사람이었던 것이지요! 결국 이와 같이 적극적으로 선에 속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오늘과 같은 차별이 없어진 나라가 되었던 것입니다. 올리버 판사가 마르타의 발을 씻긴 것은, 사실은 한 여종의 발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마음을, 나아가서는 그 나라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씻은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먼지를 떨어버리고 계십니까? 악을 미워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에 속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 세 번째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그러면 먼지를 떨어내면 결과가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우리 성경말씀을 한 곳 찾아보기를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 말씀입니다.(p.290)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성경은 우리 인간의 두 요소로서, 하나는 낡아져버리는 ‘먼지의 요소’, 또 하나는 하나님의 ‘생기의 요소’로 되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먼지를 떨어내면 낼수록 하나님의 생기의 요소―바로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찬은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이 먼지의 요소와 생기의 요소가 섞여 있는 상태인 ‘나 자신’을 볼 때나 ‘다른 사람’들을 볼 때나, 다른 세상 사람들은 결코 보지를 못하는 ‘그 속에 있는 생기의 요소’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 ― 여러분, 이것이 바로 믿음이요, 이것이 바로 우리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유명한 조각가였던 미켈란젤로에게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하루는 미켈란젤로가 집체만한 바위를 끌고 집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 때 사람들은 모두가 이 사람이 예술을 한다더니 드디어 미친 모양이라고 생각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켈란젤로는 이 바위를 깨끗이 닦고는 끌로 쪼아대기를 시작합니다. 바위에서 떨어지는 먼지와 부스러기들이 주위에 쌓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미켈란젤로가 제발 좀 그만두던지, 아니면 다른 데로 좀 이사를 가주었으면 하고 바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위 부스러기와 먼지가 떨어져 나가면 나갈수록 사람들의 이맛살은 더욱 찌푸려져 갔지만, 그러나 사실 바위는 위대한 예술품으로 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모세’라는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보세요! 마을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투박한 바위와 먼지만이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의 눈에는 그 바위 속에서 ‘모세’를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바위덩이를 깎아내고 먼지 부스러기를 떨어내는 것은, 바로 그 바위 속에서 ‘모세’라는 작품을 끌어내기 위한 필수적인 작업이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여러 번 거듭하여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우리에게 먼지를 떨어내는 작업을 함으로써 속사람을―새사람을 더욱 고귀하게 들어내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먼지를 떨어 버리는 것이 바로 ‘회개’라고 하는 것이며, 그것은 바로 새로운 인생으로 들어가는 ‘신생’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하나의 쓸모없는 티끌로만 보시고 계신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 속에는 하나님께서 고귀하게 불어 넣어주신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보고 계십니까? 바로 그 고귀한 ‘여러분 자신―그 생령’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친히 우리와 똑 같은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시었고, 그리고 친히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기까지 하시면서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라고 하는 것을 확증하여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속의 그 고귀한 속사람을 얼마만큼 가꾸어 놓으셨습니까?
지금 우리는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다음 주간은 바로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신 고난주간이 됩니다. 이 고난주간을 어떻게 보내시며, 우리 주님의 부활주일을 어떻게 맞이하시겠습니까?
내게 있는 모든 먼지의 요소들―죄 된 요소들을 떨어 버리십시오!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은 분명히 고귀한 새사람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이 사실을 여러분 마음속에 깊이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우리 인생에 대해서 무어라고 말하던지 간에, 바로 여러분 자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당신의 목숨과 바꾸시려 했을 만큼, 여러분은 값비싼 고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령을 주셨습니다. 바로 내게 주셨습니다. 그것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므로 이 사순절 기간을 보내면서 더욱 먼지를 떨어버리기를 과감히 실천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가장 사랑받는 사람으로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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