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과 맛사다 맛사다는 사해바다에서 4 km 떨어진 곳에 위치하여 있습니다. 유대인은 결코 맛사다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거의 직사각형으로 된 천연 요새입니다. 지중해를 기준으로 40 m입니다. 해발로는 무려 434 m입니다. 둘레가 1300m입니다. 지금은 관광객이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헤롯 궁전이 있습니다. 물이 없는 곳이라 비오면 물을 받아 사용하였기에 물탱크가 가장 핵심입니다. 맛사다 사건 이야기는 유대인 역사가 요세프스(38-100)가 쓴 <유대인 전쟁 이야기> 제7권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70년 예루살렘 성은 로마 장군 베스페시안의 후계자인 그의 아들 타이터스 장군에 의하여 점령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해 8월 타이터스는 선포하였습니다. <로마에 굴복하지 않고 로마에 저항하는 유대인은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멸절시킨다는 것을 역사속에서 뚜렷하게 알려 줄 것이다> 그러나 960명을 끝까지 로마에 항거하였습니다. 960명을 지휘하던 장군 야르의 아들 엘르에셀은 맛사다로 이 무리들을 데리고 피하였습니다. 이 맛사다 저항군을 시카리(Sicarii)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로마군에게 대항하는 열심당원이라는 말입니다. 요세프스는 말하고 있습니다. <시카리는 자유를 위하여 투쟁하기보다는 로마의 노예가 되기를 원하는 유대인은 동족으로 볼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들은 민족 투사였지만 이들이 로마에 반항하였기에 수없이 많은 유대인들이 더 박해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민족을 사랑하기 보다는 민족에게 더 피해를 주었다고 요세프스는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타이터스는 맛사다 점령을 로마의 자존심을 여겼습니다. 부하 실바 장군을 시켜서 맛사다를 점령하게 하였습니다. 실바 장군은 10만 대군을 이끌고 맛사다 점령을 시도하였지만 특수한 지형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유대인을 포위하고 모든 보급로를 차단하였습니다. 그 때 포위하였던 담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 둘레와 같습니다. 식량이 떨어지면 항복하리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맛사다 정상에는 이미 많은 식량이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엘리에셀은 맛사다 정상에서 돌로 투석기를 만들어 지칠 줄 모르고 저항하였습니다. 1년 6개월을 기다려도 유대인은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3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항복은커녕 점점 더 거세게 항거하였습니다. 로마 장권 실바는 정상을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돌과 흙으로 토성을 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공격용 장비로 개발하였습니다. 엘리에셀은 위에서 투석기로 밑에서 공사하는 로마 군인들을 공격하였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유대인과 위에서 저항하는 유대인 친척들을 잡아다가 밑에서 공사를 시켰습니다. 공격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민족과 친척을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로마인들이 만들어 놓은 장비들을 계속 공격하는 것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토성은 꼭대기까지 올라 왔습니다. 더 이상 견딜 방법이 없었습니다. 최후가 다가 옴을 서서히 직감하였습니다. 엘리에셀은 중요한 측근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나의 고결한 동지들이여! 우리는 오래 전부터 결코 로마인들의 노예는 되지 않겠다고 맹세하였소. 우리는 참되시고 공의로우시고 만민의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더럽혀지기 전에 죽어야 하오. 그리고 우리 자녀들도 로마인의 노예가 되기 전에 죽여야 하오. ..... 로마인들은 우리 몸이나 우리 재산에 손을 대지 못 하면 슬퍼할 것이요. 그러나 식량에는 손을 대지 말고 그대로 두어야 하오. 그러면 우리가 자살한 것은 식량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초지일관 살아서 노예가 되느니 죽어서 자유인이 되는 편을 택하겠다고 한 우리의 열망을 과실할 수 있을 것이요> (Josephus, War of Jews. 1993. VII 647 p) 그러나 의외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이들은 죽기를 무서워 하였습니다. 동지들과 가족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죽기를 두려워 하였습니다. 다음 날 엘리에셀은 또 말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임을 알았소. 덕도 없고 용기도 없고, 죽음을 두려워 하기는 마찬가지요.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에게 주신 율법이 무엇이요?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준 진리가 무엇인가요? 인간에게 재난은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지 않았던가요? 우리가 비겁하게t 행동하면 온 인류가 우리의 율법을 우습게 볼 것이요. 우리의 자랑스러운 율법을 욕되게 하는 것은 모욕이요. 수치요. 우리를 수중에 넣고 기뻐할 로마인들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로마 군인들에게 털끝만한 기쁨도 남겨 놓지 말아야 하오. 오히려 로마 군이 우리의 굳은 결의에 경탄을 금치 못 하도록 하여야 하오. 로마 군이 들어와서 경탄을 금치 못 하게 만들어 놓아 하오. 로마 군이 입을 다물지 입을 다물지 못 하게 만들어야 하오> 마침내 열심당원들은 엘리에셀이 말한 대로 로마의 살아서 노예가 되기보다는 죽어서 자유인이 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역사가 요세프스는 최후의 순간을 이렇게 기록하여 놓고 있습니다. 우선 사형 집행자 10명을 제비뽑기로 골라 냈습니다. 이들이 모든 사람을 죽였습니다. 가족들 하나 하나 키스를 하고 죽였습니다. 아내와 자녀를 눕혀 놓고 죽였습니다. 10명만 남았습니다. 10명중에 한 명을 제비로 뽑아 사형집행자를 정하였습니다. 그가 모두를 죽이고 자신은 자살하였습니다. 73년 8월이었습니다. 맛사다로 피신하지 3년만이었습니다. 로마군은 이런 사실도 모르고 성벽을 공격하였습니다. 저항이 없었습니다. 실바 장군이 정상에 도착하였습니다. 960명 시체만 나란히 누워 있었습니다. 승리의 기쁨을 맛볼 수가 없었습니다. 전쟁은 실전에서 이길 때만이 그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실바 장군은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용기에 그저 경탄할 뿐이다> 실바 장군은 죽은 엘리에셀 지도자 앞에서 말했습니다. <엘리에셀. 내가 졌네. 자네가 이겼네> 그가 남긴 유명한 말입니다. 이런 사실은 어떻게 세상에 알려 진 것일가요? 실바 장군이 올라 가 보니 두 여자와 어린 아이 5명이 숨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맛사다 이야기입니다. 지금 로마 군이 캠프로 사용하던 막사는 호스텔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변은 이스라엘 군인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조상의 저항정신을 배우고 있습니다. 패배같지만 승리의 현장을 지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