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없으면 영광도 없다
권다니엘 총장
마틴 루터는 고난을 두고 \"축복을 가져다 주는 지름길\"이라고 했지만 모든 평범한 사람은 고난과 고통을 싫어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구원을 위해 그 어느 길 보다 고난의 길, 죽음의 길을 통하여 구속사역을 완성하신 것이다. 여타 종교에도 고행을 통한 성도(成道)를 목표로 삼지만 기독교가 말하는 고난과는 방법과 목적이 다르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고난을 통하여 백성을 순화하여 신앙을 깊게 하였으며, 이스라엘이 망국의 고난을 겪으면서부터 죄 있는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고난을 받는, 대상고난(代償苦難)의 사상이 생겨난 것이다(사53:4-6).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 친히 고난을 받으신 것이다(히2:10).
이 고난이 인간의 고난을 이해하고 높이며 뜻있게 하는 열쇠가 된다. 많은 사람이 고난을 피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고난을 짊어져야 한다(벧전4:16). 이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므로 그리스도의 부활과 영광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 고난 주간을 통하여 신앙자세를 어떻게 가져야 할 것인지 분명하고 확실한 태도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고난에의 참여가 교회성장이나 교인들을 훈련하기 위한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체험하기 위해 진정으로 참회하는 순간들이 되어야 한다. 죄에 대한 회개가 없이는 고난주간의 알찬 행사도 무의미한 것이다. 1907년 평양에서 일어난 대각성(대부흥)운동도 회개 운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교회 지도자들의 철저한 회개가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게 했으며 통회하는 한국교회를 성령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것이다.
둘째로 민족과 이웃의 고난을 짊어져야 한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철저히 대속의 고난이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다고 하면서 이웃의 아픔과 고난을 외면한다면 주의 고난과는 무관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칠 때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게 되는 것이다.
셋째로 고난은 소망을 견고케 하는 축복의 통로임을 알고 고난을 통하여 소망을 주어야 한다. 절망의 늪에서 가정이 파괴되고 소망의 빛이 없으므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희망을 잃고 갈등과 좌절로 어둠속을 헤매는 이웃에게 신자들이 희망의 빛이 되어야 하며 교회가 용기를 주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으로 그들을 위해 고난을 받을 때 함께 위로와 은총을 입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