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바타\'의 성격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아바타’가 현존하는 모든 그래픽 기술을 총망라해 미세한 인물 표정까지 생생하게 잡아낸 이모션 캡쳐 방식으로 관객들의 각광을 받으며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아바타\'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3D영화로 극찬했으며, 비평가들에 의해 스토리와 영상 혁명으로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을 것이라고 예견이 됬던 영화이다.
이 영화에는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란 뜻을 지닌 \'판도라 행성\'의 부족이 나오는데, 이 \'나비 족\'은 물질 문명을 멀리하고 \'대지의 여신\' \'생명의 어머니\'를 비롯 여러 부족신을 섬기는등 범신론적 종교의 색채를 강하게 띄고 있다.
이 영화는 자연 기독교인들의 우려와 반감을 사면서 자연 숭배니 정령주의니 우상숭배니 물신숭배니 생태학 신봉이니 하는 비난들을 사고 있다.
영화에는 \"신이 창조한 모든 창조물에도 신의 숨결이 흐르는가?\", “신은 아니 계신 곳 없이 계시다. 세상의 모든 창조물이 신의 현존이자, 신의 표출이다”, \"대지의 어머니는 선악의 판단없이 균형을 지킬뿐이다\"라는 물음과 대답과 대목들이 눈에 띈다.
\'아바타(Avatar)’란 용어는 인도어 명사로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신들의 현현을 뜻하는 것으로 인류를 더 높은 의식으로 고양시키는 길을 열어주러 온 \'수석 신\'(presiding Deity)을 주로 일컫는다.
힌두교인들은 때때로 시대적 필요에 따라 인류의 발전과 진화상의 다음 단계의 도래를 알리러 온 자가 있다고 믿는데 이 자를 \'아바타\'라 부른다. 부처나 크리쉬나, 예수가 이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아바타\'는 범신론적 자연 숭배를 배경으로 지구의 심각한 생태계 파괴에 대한 경각심과 강한 경고의 메시지를 주러 온 가상적 존재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아바타 예수
그러면 \'아바타\'의 사상과 아울러 기독교에 대한 범신론자들의 관점은 어떠한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범신론자인 힌두교인들은 예수를 새롭고 세상에 필요한 사랑의 영적 가치의 도래를 알린 \'아바타\'로 보며, 예수는 영혼의 특별한 국면인 힘(power)의 결핍으로 죽음을 피하지 못하여 실제로 죽을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십자가의 처형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으로, 교회는 십자가의 고난을 예수의 신성(神性)의 진정한 근거로 보아 사람들이 신성에 도달하려면 인생에서 크게 고난을 당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는 영적 진실의 왜곡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말한다. 인간이 지향하는 빛나는 모본(shining example)은 십자가를 진 육체가 아니라 변화되고 신성화된 존재의 육체이다 라고. 인간은 거짓되고 병적인 여러가지 고난의 방식을 통해 진화되길 원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성장과 진보와 변형을 통해 진화되길 원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말인가? 우리의 낮은 본성(lower nature)을 변화시키고, 신성(Divine presence)을 느끼고, 영적 행복(spiritual bliss)을 느끼고, 궁극적 지혜(Ultimate Wisdom)를 습득하고, 우주적이고 신성한 사랑(universal and Divine Love)을 체험하고 구현함으로써 진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고난을 추구하는 자들은 예수의 생애에 큰 폐해를 끼치는 자들이며 이로 인해 종교는 예수의 사랑을 암울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의하면, 오늘날 기독교인들과 다른 사람들이 예수의 생애를 명상할때는 그의 도덕적이고 신성한 사랑의 메시지를 기억하는 것이 최선이며, 이 사랑은 우리의 비이기성과 자기를 내어줌과 열림과 인내와 관심과 존중심같은 높은 영적 가치들을 통해 표현된다고도 주장한다.
영적 진실의 차이
우리는 이들의 주장에서 어떻게 이 \'세상의 영\'이 기독교 진리의 핵심 부위를 공략하고 있는지 간파할수 있다. 기독교의 생명은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인데 이들은 이 두가지 핵심 진리를 다 부인하고 있다.
예수의 신성의 진실된 이유는 바로 예수가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건만, 이들은 마치 기독교가 \'십자가의 고난\'으로만 예수 신성의 근거를 삼고 이를 또한 신자들에게 강요하는 것처럼 복음을 왜곡하고 축소시키고 있다.
이들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인류 구원을 위한 자발적인 신적 희생의 사랑임을 간과한채 영적 힘이 없어 실패한 죽음으로 해석함으로써 예수의 고난에 참여하는 크리스찬의 깊은 영성을 \'영적 진실의 왜곡\'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왜 기독교인들은 고난에 참여해야 하나? \'예수의 십자가의 처형\'을 가져온 근본이유는 다름아닌 인간들의 죄성(罪性)이기 때문이다. 이 죄성을 깨닫는 자만이 은혜로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늘 부활신앙을 누리며 빛의 자녀로서의 삶을 지속적으로 유지할수 있는 신실한 신자가 된다.
그러면 이들이 주장하는 범신론의 \'영적 진실\'은 무엇인가 살펴보자.
범신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독교의 창조론(ex Nihilo)과는 달리 신의 속성의 일부가 발산되어(ex Deo) 만물이 생산된 것으로 믿는다. 그러므로 \"모든 창조물에 신의 숨결이 흐른다\"든가 \"세상의 모든 창조물이 신의 표출이다\"라는 영화 대사가 생겨나는 것이다.
요(要)는, 범신론에서의 신은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연이나 우주 만물과 동일시 되는 존재 - 이성이 아닌 감각에 의해 느낄수 있는 \'비인격적인 힘\'이다. 인간은 이 \'힘\'에 집중하고 신비적으로 몰입함으로써 스스로 \'신\'이되는 불멸성을 취득할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이들에게 있어 신은 경배의 대상이 아니다. 이들의 영적 진실은 자기 힘으로 신성에 도달하고 쟁취하려는 끝없는 열망이다.
불멸성의 정체
\'스스로 신(神)이 되는 불멸성\', 이것의 정체는 무엇인가? 우리는 다음의 성경구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사14:14)’
하나님과 인간, 조물주와 피조물의 존재의 차이와 경계가 희미해지거나 허물어지면 아무리 아름다운 수식이 동반되더라도 그 정체는 악한 세상영의 역사일수 밖에 없는 것이다.
범신론자들이 주장하는 \'신성\'이니 \'영적 행복\'이니 \'궁극적 지혜\'니 \'우주적인 신성한 사랑\'이니 \'진화\'니 하는 어휘가 아무리 멋있고 이상적으로 들릴지라도 우리는 그것이 껍데기뿐인 속임수라는 사실에 신중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을 통하지 않은 구원은 생명력 없는 세상적인 고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이 지향하는 빛나는 모본(shining example)은 부활신앙을 통해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종국엔 영화된 육체(glorified body)로 영생을 누리게 되는 생명의 부활로 나가는 산 소망에 있다.
그러나 예수의 신성을 인정치 않는 이들에게 예수는 믿음의 대상이 아닌 도덕군자나 사랑의 사도로만 이해되고 있을 뿐, 결국 피조물인 자연을 숭배하는 우상 숭배로 자기 모순적인 신성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범신론의 모호한 도덕관
영화 아바타에서 남자 주인공 \'제이크 설리\'가 “지구인의 침략을 막을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나무의 신에게 기도할 때 여 주인공 \'네이티리\'가 다가서며 말한다. “대지의 어머니께선 편들지 않아. 오로지 생명의 균형을 지킬 뿐이야.” - \"대지의 어머니는 선악의 판단없이 균형을 지킬뿐이다\"
그러면 \"대지의 어머니\"는 무엇이며 \"편들지 않는다\"는 뜻은 무엇인가?
범신론에서의 어머니(The Mother)는 우주의 모든 창조의 원천인 어머니신(the Divine Mother)과 힘(Force)의 방사물이다. 어머니여신들은 모성과 비옥함과 지구의 창조나 풍부함의 구현을 언급하는데 두루 사용되는 용어이다. 대지의 어머니(Mother Earth)도 이들중 하나를 말한다.
그런데 전쟁을 위한 기도에서 \"어머니께서 편들지 않는다\"는 대사와 \"생명의 균형\"이라는 표현은 범신론적인 신성의 개념을 잘 나타내고 있다.
범신론에서의 신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존재로서 선과 악의 구분도 초월한다고 믿는다. 선도 악도 단지 환영(illusion)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편들지 않는다\"는 말은 그들의 신이 선악에 있어 중립이란 뜻이다.
반면, 기독교의 유일신인 하나님은 사랑과 거룩성과 진리의 속성을 지닌 도덕적 완전자며(morally perfect), 세상과 사람에 대한 도덕적 통치자(the moral ruler)가 되신다. (기독교에서의 악은 하나님으로부터 온것이 아닌 피조물인 천사와 인간의 의지적인 반항으로 온것이다.)
비록 범신론에 종교적인 색채가 있다고 하여도 이들은 근본 사고에 있어 자연주의(naturalism)나 인본주의(humanism) 즉 무신론(atheism)과 유사하다고 할수 있는 것은 이 사상들은 다 선악에 대한 우주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사상은 상대주의적 가치관을 가져와 도덕적 혼란-모랄 아나키즘을 조장할 위험이 있다.
범신론의 기여
끝으로, \"\'대지의 어머니\'가 오로지 생명의 균형을 지킨다\"는 대사는 범신론에서의 신성이 만물의 일치(unity)와 조화(harmony)를 궁극적 목표로 삼음을 전달하고 있는 동시에, 대지의 힘을 믿고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나비족의 모습을 통해 생태계 보호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범신론이 기독교에 기여한 것으로는 과거 보수신학이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위임명령(창1:28)으로 지구의 생태계를 파괴해온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들은 지구를 신성한 것으로 보기때문에 지구를 보존하고 극진히 돌보는 사회생태학(ecology)에 큰 관심을 가지게 하는데 영향을 준 것을 들 수 있다.
소감
아바타 영화에서의 \'아바타\'는\' 인간\'과 가상의 행성인 판도라 행성의 토착민 \'나비(Na\'vi)\'의 DNA를 결합해 만든 새로운 하이브리드 생명체로 설정되어 있다. \'아바타\'는 나비족의 외형에 인간의 의식을 주입해서 링크머신을 통해 몸체를 원격조종 할 수 있다. 그러므로이 \'아바타\'는 인간의 과학과 의지가 고안, 도달할 수 있는 초인적 신적자아의 확대와 구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또 영화 속에서 대상과 머리털을 통해 연결되는 친밀감과 일치감은 모든 만물에 깃들어 있다고 믿는 내재(immanent)적신성(神性)의 코드 안에서 영적 교감과 몰입을 통해 나와 대상, 우주만물이 하나가 되어 신성에까지 도달할수 있다는 범신론의 사상을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스토리 배경은 가까운 미래에 지구인이 에너지 고갈문제 해결을 위해 판도라 행성에서 대체자원을 채굴하기위한 프로젝트를 가동함으로 인해 판도라 원주민과의 불가피한 대 충돌을 그린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의 \'아바타\'는 이기적인 물질문명의 추구로 인하여 서로 반목하며 투쟁하고 지구의 환경을 파괴해온 인간의 기존의 삶의 방식으로부터, 나비족의 삶처럼 동족 및 모든 생명체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으며 일치와 화합을 추구하는 상생(相生)의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의 전환을 웅변하는 전도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결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세계에는 인간을 비롯 동식물과 대자연이 펼쳐져 있다. 인간은 창조의 한 부분으로서 다른 피조물과 관계가 없는 것으로 명백히 구분이 되었다기 보다는 다른 피조물과 다르다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천지 창조시 인간의 기원은 다른 피조물들과 얼마나 많이 친밀한 연결감(kinship)을 느끼게 하는가! 인간은 피조물로서 다른 피조물들과도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생태학을 뜻하는 \'ecology\'란 말은 집(house)을 뜻하는 그리스어인 \'oikos\'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므로 생태학(ecology)은 \'대 가족\'의 개념을 지칭하고 있다. 지구라는 한 울타리(집)에서 다른 피조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 그려지는 단어다. 그러므로 환경오염의 피해가 웅변해오고 있듯이 인간이 피조세계에서 다른 한 부분에 미치는 영향은 나머지 부분들에도 영향을 준다.
그러나 한편, 인간은 창조에서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천지 창조시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습대로 지으시고 숨결울 불러넣으셔서 생령(living soul)이 되게 한 피조물은 오직 인간뿐이다. 반면 다른 동물들은 그들의 종류에 따라 창조되었다. 인간이 피조물로서 다른 피조물들을 다스리도록 하는 위치에 놓여졌다는 사실은 보호의 책임도 함께 주어진 것이다.
범신론의 영향을 받은 많은 기독교 예술인들이 자연을 신성하게 생각하다 못해 심지어 예수를 피조물인 자연과 가까이 놓는 경우조차 있어 왔는데 이것은 가장 중요한 한가지 근본 진리를 놓치고 있는 셈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과 근본 본체가 되신다는 사실로서(빌2:6)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시며 피조 만물이 그 안에서 함께 서 있다는 사실이다(골1:17, 19). 하나님이 만물을 다스리시고 컨트롤 하시는 분인 것처럼 예수님도 자연을 다스리시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다(마6:25-30).
기독교인을 포함한 역사상 많은 위대한 예술가들이 자연 속에서 신성한 영감을 얻으려 치열한 노력을 경주하며 혼신을 기울여 작품에 몰두하다 불행한 생을 마감한 예를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창조적인 영감과 에너지는 어디서 얻어지는가?
창조적 영감과 열정과 지혜는 대자연 속의 정령(精靈)이나 정기(精氣)로 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 주신다. 그 분께서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엡3:20-21)\"주시는 것이다,
이 영화의 압권은 아름다운 최고의 영상 기술인데 웅대하고 울창한 우림과 끊임없이 부유하는 공중위에 떠있는 산들, 지상위에 포진한 진귀한 생명체들이 뿜어내는 야광과 광채등 생명력이 넘치는 자연 공간의 묘사속에서 태고적 창조의 신비로운 영감에 찬 에너지를 느끼게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속에서 지혜롭게 영적 분별의 코드를 읽어내는 것은 순전히 우리들, 크리스챤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