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없이 삽시다

두려움 없이 삽시다 (마 14:22-27)


이 시간에 “두려움이 없이 삽시다.”라는 제목입니다. 제목대로 두려움이 없이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앞을 봐도 두려움이 없고 뒤를 봐도 옆을 봐도 위를 봐도 어디를 봐도 두렵지 않다면 참으로 복된 것입니다. 마르코스 윗이 쓴 ‘두려움을 이기는 영혼’이라는 책의 서두에 보면 “현대인에게 가장 큰 적은 두려움이다.” 했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부정적인 감정은 두려움에서 온다고 했습니다. 두려움만 없다면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래서 이 세상 무대는 모두 담대한 자의 것입니다. 작은 것에도 두려워한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도 담대한 자의 것입니다. 핍박을 두려워한다면 어떻게 천국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일도 담대한 자의 것입니다. 희생을 두려워한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최용덕씨가 작사 작곡한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라는 찬양을 좋아합니다. “1절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 2절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얼마나 은혜로운 찬양입니까? 주님처럼 살고 싶은 것 중에 하나는 두려움이 없이 사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 얼마나 담대하셨습니까?


본문을 보면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다가 큰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두려워했는데 두려운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풍랑이고 다른 하나는 바다 위를 걸어오는 유령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령은 아니고 제자들을 도우러 오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시며 믿음 없는 것을 꾸짖으시고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여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두려워했는데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1. 그들이 가진 지식과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갈릴리 바다 어부 출신입니다. 어부생활로 잔뼈가 굵었고 갈릴리 바다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갈릴리 바다에 돌풍이 불면 엄청난 파도가 일어나고 그 파도로 인하여 배는 파선되고 자신들을 죽을 것이라는 지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두려워했던 것은 알고 있는 지식을 넘어선 주님의 역사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건너편으로 건너가라고 하셨다면 책임까지도 져주신다는 뜻일 텐데 그 말씀보다 자신들의 지식과 경험이 더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세상 살아가는데 지식과 경험이 도움이 되지만 반대로 이것이 주님을 믿지 못하게 하기도 합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아이큐가 90 이하 되는 사람은 절대로 자살하는 법이 없답니다. 걱정 하는 법도 없고요. 죽음의 순간까지도 조용하게 맞이한답니다. 그러나 똑똑한 사람, 머리가 좋은 사람은 생각을 많이 하고 쓸데없이 걱정합니다. 생각이 많은 사람이 걱정이 많아요. 똑똑한 사람이 먼저 절망한다는 말입니다. 피난 가는 어머니의 마음은 불안해 죽겠는데 등에 업힌 아이는 쿨쿨 잠만 잡니다. 이렇게 인간의 지식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을 걱정하게 만들고 두렵게 만들고 절망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식자우환이라 했어요.


약 30년 전에 달을 탐사하고 돌아온 어윙 대령이 전하는 달나라 이야기가 있습니다. 달나라에서 지구를 보는 그 광경은 우리가 여기서 달을 보는 거와는 다르답니다. 우리가 달을 보면 달은 작기도 하고 흑백입니다. 그러나 달에서 지구를 보면 엄청나게 크고 총 천연색 칼라라고 합니다.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이 어윙 대령이 귀환할 때 일어난 일입니다. 캡슐을 타고 지구를 향해 떨어질 때 낙하산 두 개가 펴져야 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낙하산 하나가 펴지지 않았습니다. 휴스턴 사령탑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이대로 떨어지면 박살이 나고 맙니다. 과학적 지식으로는 분명 그렇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과학자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길밖에 없다고 휴스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부르짖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땅에서부터 회오리바람이 올라 부는 겁니다. 바람이 치솟아 올라오는데 그 바람 때문에 낙하산 두개가 펴진 것과 같은 속도로 조용히 떨어질 수가 있었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건 기적이었습니다. 인간의 지식대로라면 결과는 죽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역사하시니 모든 두려움을 불식시킬 수 있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전문가가 되면 더 불안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경제를 안다는 사람들은 항상 벌벌 떨어요. 경제가 큰일이라는 겁니다. 국제금융시장이 어떻고 유가가 어떻고 무역이 어떻고 시장 경제가 어떻고 정치가 어떻고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큰일 났다는 소리를 1, 2년 들은 게 아닙니다. 항상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왔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군사에 대해서 아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핵을 우주 고공 400km 상에 폭발시켜도 전자기기가 파괴되어 신무기가 고철덩이로 변한다고 합니다. 이걸 emp 무기라 하는데 군사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평안하지만 아는 사람은 불안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온갖 대비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가 아는 지식과 경험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하나님을 더 믿으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건망증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 사건 바로 몇 시간 전에 디베랴 광야에서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리떡 다섯과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는 굉장한 사건이 있었어요. 제자들은 바로 몇 시간 전에 있었던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까맣게 잊어버렸어요. 이 건망증이 문제입니다.


다 잊어도 하나님은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다 잊어도 하나님의 말씀과 하신 일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난날에 내게 베푸신 은혜, 내게 주셨던 그 많은 기적, 그 순간을 절대로 잊으면 안 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원망한 것은 하나님의 하신 일을 너무도 빨리 잊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 닥치면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대체 그 큰 권능을 체험하고서 그렇게 빨리 하나님을 의심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항상 하시는 말씀이 애굽의 종 되었던 때에 너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지난날의 도우심을 기억한다면 오늘의 사건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전에 나를 인도하신 주님께서 오늘도 장래에도 인도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난 날 지켜주신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 곁에 계십니다. 우리가 결코 잊지 않아야 할 것은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위해 다시 사시고 나를 위해 승천하시고 다시 오시는 예수님입니다.


롬8:32-37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 말씀 그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을 잊지 않을 때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3. 주님이 멀리 계신 줄만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산으로 기도하러 가시고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가다 풍랑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배에 같이 계시다면 문제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해결해 주시겠지 하는 기대를 갖지만 지금 예수님은 제자들로부터 너무나 멀리 계신단 말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너무나 멀리 계셔서 자기들을 도와주실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주님이 나와 멀리 계시다는 생각 이것이 문제입니다. 주님이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안 계시는 겁니까? 지금 내가 주님의 임재를 느끼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서 멀리 계시는 겁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떠나도 주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영원토록 우리를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믿음 약한 제자들을 위해서 주님께서는 바다 위를 걸어서 찾아와 주셨습니다.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이 세상을 떠나고 그의 생신 10주년이 되는 때였습니다. 큰 축하 행사가 있었고 행사 중에 그가 생전에 사용하던 테이블 서랍을 열어보기로 했습니다. 잠긴 서랍을 열었더니 아무 것도 없고 종이 한 장이 있는데 거기에 이렇게 쓰여 있었더랍니다. “캄캄하고 어려울 때는 요나를 생각하라.” 요나는 캄캄한 큰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 앞에서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요나를 니느웨 바닷가에 토해내게 하셨습니다. 에디슨은 캄캄하고 어려울 때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혼자인 것 같아도 혼자가 아닙니다.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집에서도 주님이 같이 살아요. 우리가 어디 가도 혼자 가는 것 아닙니다. 주님과 같이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일상기도를 해야 하며 늘 묻는 기도를 해보세요. 하나님께서 마음과 삶 속에서 말씀해 주심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두려워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두려운 마음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4. 불필요한 생각 때문입니다.


밤 사경에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오실 때 그것을 본 제자들은 유령이라 무서워하며 소리 질렀습니다. 당시 갈릴리에는 죽음이 임박하면 유령이 온다는 전설이 있었습니다.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본 제자들은 순간 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소한 현실을 현실로 보아야 하는데 그들은 근거 없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대부분의 걱정은 불필요한 것들입니다.


어느 날 트럭이 관을 실고 이동 중이었습니다. 뒤에 두 명이 관과 함께 타고 있었습니다. 비가 억수로 쏟아졌습니다. 두 명은 관을 열고 그 안에 누웠습니다. 길 가던 4명이 손을 들자 트럭 운전기사가 태워주었습니다. 가다보니 비가 멈추었습니다. 관속에 있던 두 명이 관 뚜껑을 열고 나오면서 말했습니다. “비가 그쳤구먼!” 이것을 본 두 명은 두려워서 발발 떨다가 뒤로 쓰러지면서 달리는 트럭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관 속에 시체가 살아난 줄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시 144편에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자에게 평안의 복을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식양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 돌과 같으며 우리의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 우리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또 우리를 침로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 우리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진대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세상을 다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 안에서 다 이긴 자입니다. 인생의 풍랑 가운데 두렵습니까? 생각을 잘 다스리시기 바랍니다. 지식과 경험보다 도우셨고 도우시고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신다는 것을 믿으세요. 그래서 우리 모두 조금도 두려움이 없이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