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생명을 걸때

말씀에 생명 걸 때 (계 3:7-13)


이 시간에 “말씀에 생명 걸 때”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생명 걸만큼 귀중한 일은 없습니까? 생명 걸만한 일이 있다면 거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에 우리가 생명 걸어야 할 것을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생명을 거시기 바랍니다.


가장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시편 1편에 주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 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눅11:28)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생명과 보화가 가득하며 그 약속을 믿는 자가 받아 누리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빌라델비아 교회를 통해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8절에서 보듯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졌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 때 생명 걸 때 크게 복주셨습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당시 빌라델비아 교회는 불과 70-80명의 교세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수효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요 자본이요 조건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능력이 크든 작든 말씀에 생명 걸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함께 하십니다.


말씀에 생명 걸 때 주시는 결실은 무엇일까요?


1. 말씀에 생명 걸면 큰 기회를 열어 주십니다.


8절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여기 열린 문은 선교의 축복입니다. 그런데 열린 문을 주셨다면 모두 열린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빌라델비아 교회가 교세를 탓하지 않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말씀에 생명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말씀 속에 대로가 있어요.


능력이 있어야 선교할 수 있다는 생각은 불신앙입니다. 이 생각이 선교의 최고의 적입니다. 이 생각 가지게 퓔?선교는 막힙니다. 선교하다가도 이 생각 가지면 중단될 수밖에 없습니다. 선교는 영적 전쟁이기에 어려운 일이 다가와도 믿음으로 이겨야 합니다. 사람은 주셔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고 행하라고 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조건이지 환경의 조건이 아닙니다. 성경의 약속을 믿는 자에게 길이 열립니다. 믿고 나아갈 때 일군을 보내 주시고 힘과 지혜도 물질도 주십니다. 주안장로교회 나겸일목사님이 이런 말씀하시더군요.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하는 교회가 부흥되지 못한 것을 본 적이 없다고요.


선교에는 큰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을 복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미국에 이어 세계 제 2위의 선교대국입니다. 미국이 우리보다 인구가 6배나 많으니까 인구비례로 보면 한국이 세계 선교 1위입니다. 특히 우리 한국선교사들은 선교하기 가장 힘든 구공산권에 선교사의 97%가 한국인 선교사이고 기독교 박해가 가장 심한 회교권 대부분의 선교사가 바로 한국선교사들입니다. 다른 나라 선교사들은 어려우면 철수하지만 한국 선교사들은 그곳에 목숨을 겁니다.


세계사를 보면 선교 1위인 국가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세계의 중심국가로서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선교하는 나라를 복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더욱 깨어 바른 신앙으로 선교해 나간다면 곧 한국의 시대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는 최근 “미래의 물결”에서 한국이 아시아 최대의 경제국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2025년에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2위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영국 국방부 산하 발전구상정책센터가 전망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50년에는 전 세계 2위의 부자나라가 된다고 전망했습니다. 2007년 3월 30일 자 머니 투데이에서 골드만삭스는 곧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9만 달러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미래학자 마르크스 싱어도 통일 한국은 세계 2대 부국이 될 것이고 4대 경제대국이 된다고 했습니다.


참고지만 이 시대에 쓰임 받는다는 예언사역자들도 한결같이 장차 하나님께서 한국을 위대하게 사용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와 우리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의 정로에서 벗어나지 않고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에 주력한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렇게 해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인본주의 사고가 침투하면 끝납니다. 우리 벅찬데 무슨 일이냐 하는 생각이 지배하면 안 됩니다. 개인마다 교회마다 사명은 각각 다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약속의 말씀에 생명 걸고 ‘우리도 쓰임을 받을 수 있다.’ 는 믿음 가지고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2. 말씀에 생명 걸면 꿈같은 일이 이루어집니다.


9절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초대교회를 가장 핍박했던 집단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이름을 부르지만 사실은 사단의 회였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들 중에 몇 사람을 교회 앞에 무릎을 꿇게 하여 주셔서 주님이 빌라델비아 교회를 사랑하시는 줄 증명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꿈에나 생각할 수 있는 일을 해주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끝까지 말씀의 약속 믿고 나가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꿈같은 일이 있었지요. 여호와께서 바벨론에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입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남북통일입니다. 지금 북한 동포들 얼마나 고통당합니까? 날마다 부르짖는 지하교회 성도들의 눈물은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남북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우리 민족에게 주시는 최고의 복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에 생명 걸고 나가면 그것이 무엇일지 모르나 꿈만 같은 일들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3. 말씀에 생명 걸면 시험을 면제하여 주십니다.


10절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여기 ‘시험의 때’란 예수께서 재림 할 때에 임할 대 환란을 의미합니다.


좁게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온갖 고통을 의미합니다. 주의 말씀을 끝까지 지키고 전진해 나가면 야베스의 기도처럼 환란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여 주십니다. 대상4:10에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했어요.


나의 시험을 대신 이기셨다는 주님의 말씀에 섰으니 그 복을 누림은 당연합니다. 주님이 이루신 복음을 붙잡고 끝까지 믿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내 죄를 해결하셨다. 주님이 내 저주를 지셨다. 주님이 내 질고를 지셨다. 주님이 내 문제를 해결하셨다. 나를 세상 끝까지 품어주실 것이다. 이 말씀에 생명 걸면 시험을 면제하여 주실 것입니다.


4. 말씀에 생명 걸면 면류관을 주십니다.


11절에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면류관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승천하셔서 영광의 보좌에 오르실 때 우리들도 그 안에서 함께 오른바가 되었습니다. 이 영광의 복음을 붙들면 영광의 면류관을 씁니다. 모든 것은 말씀을 붙들고 서는 자의 것입니다.


5. 말씀에 생명 걸면 크고 귀히 써주십니다.


12절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기둥처럼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사람이 되게 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말씀 가진 사람의 복입니다.


교회에서도 말씀 가진 사람이 기둥처럼 중요합니다. 솔로몬 성전에 야긴과 보아스라는 두 기둥이 있었듯 초대교회에도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갈2:9)라는 기둥 같은 일군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구든지 말씀에 서서 살아가면 그는 기둥 같이 귀한 사람입니다. 말씀에 서서 나가니 넘어지는 사람도 일으킵니다. 안 되는 일도 되게 합니다. 하나님이 도우실 것이라고 선포하고 그대로 되니 기둥 같은 사람입니다. 교회에 이런 사람이 절대 필요합니다.


6. 말씀에 생명 걸면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됩니다.


다시 12절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하나님이 이 사람은 나의 사람 나의 신부 나의 교회라고 자랑스럽게 인정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진리의 터에 서야 성도요 진리의 터에 서야 교회입니다. 진리 떠나 세속화되고 이단의 길로 가고 사람과 사람의 생각이 주장하는 인본주의 길로 나가면 주님은 너희는 내 교회가 아니라고 하실 것입니다. 거기 이름을 기록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정을 넘어 하나님의 자랑이기도 합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세상의 헛된 것에 생명 걸고 있다면 버리시기 바랍니다. 영원불별의 말씀에 생명을 거십시다. 우리 모두 능력을 탓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생명 걸고 전진하셔서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이 크고 아름다운 복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