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충만 받읍시다
성령 충만 받읍시다 (행 2:1-4)
이 시간에 “성령 충만 받읍시다.”라는 제목입니다. 어떤 사람이 거리에서 호도과자를 팔고 있었습니다. 신사가 지나가다가 호두과자 냄새에 끌려 과자를 한 봉지 샀습니다. 봉지를 열어 2개를 먹었는데 화가 났습니다. 왜냐하면 호도과자 안에 호도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보시오. 말만 호도과자지, 호도가 하나도 없질 않소.\" 그랬더니 이 호두과자 장수하는 말이 걸작입니다. \"여보시오. 붕어빵 속에 붕어 들어 있는 것 봤습니까?\" 그렇습니다. 그 속에 붕어가 없어도 붕어빵이라고 부르고 그 속에 호도 없어도 호도과자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성령 없으면 그건 절대로 그리스도인이라 부를 수 없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요 성령이 없으면 생명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에요. 우리는 영적으로 어떤 사람입니까? 초대교회에 성령이 바람 같이 불 같이 임했습니다. 그 결과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성령 충만 받기 위하여
1. 분부하신 말씀을 순종했습니다.
행1:4-5에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이 분부대로 그들은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성령에 대해 주장들이 분분합니다. 우리에게 오실 성령은 오순절에 이미 임하였다. 혹은 성령은 사모하고 구해야 오는 것이다. 전자는 개혁주의의 주장이요, 후자는 오순절주의의 주장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것 잘 ㅈ냘瞞?합니다. 잘못 정립하면 기도 하지 않는 사람 혹은 구하기만 하는 이상한 사람이 됩니다.
저는 두 가지를 함께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은 임했고 앞으로 더욱 충만히 임하실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를 보세요. 속에서 깊음의 샘이 터지고 위에서 끊임없이 비가 쏟아졌습니다. 이처럼 예수 믿는 자는 안에 성령이 계셔요. 그러나 더욱 성령의 충만을 구해야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분부대로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렸습니다. 성령은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반드시 받아야 하는 필수사항입니다. 이 말씀에 순종이 중요합니다.
2. 마음을 다했습니다.
행1:14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주님은 세상 끝 날에 대해 묻는 제자들에게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마음을 성령 받는 데다 두라는 말씀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 땅에 메시아의 통치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것이 신앙의 자유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북한을 경계하는데 그것은 신앙의 자유 때문입니다. 아무렇게나 통일이 되면 큰 일이 납니다. 그래서 나라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래서 공산주의의 영과 싸웁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관심해야 할 것이 성령입니다. 마음을 성령 충만에 쏟아야 합니다. 성령의 바람이 이 땅에 일어나게 해야 합니다.
당시 제자의 수가 많았는데 왜 120이었을까요? 그들만이 필사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들었습니다. 전체가 함께 하면 좋지만 마음 가진 사람들이라도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 운동은 아무렇게나 하는 것 아닙니다. 제자들도 3년 반이나 준비되었습니다. 사모하는 마음이 없으면 받아도 쏟습니다. 말씀 없으면 곁길로 가거나 교만합니다.
선견자 하나니가 아사에게 말한 것처럼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대하16:9) 십니다. 구세군 창설자 부츠대장은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성도들의 모임을 소홀히 생각하지 마라. 성령도 주님의 제자들이 모일 때 임했고, 주님의 재림 또한 성도들의 모임에 임하게 될 것이다. 성도의 모임은 생명과도 맞바꾸어도 족할 만큼 소중하고도 가치 있는 모임이다.\" 성령 충만 받는데 마음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3. 몸을 다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그들은 예루살렘에 모여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마가요한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마음으로 기도하고 몸을 바쳐 기도했습니다. 누워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의 기도입니다. 기도 장소에 나와 무릎을 꿇고 몸까지 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집에서 마음으로만 기도하면 잡혀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제 잡혀갈지 몰라도 몸드려 기도했습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몸드려 기도하셨습니다.
왜 몸을 드려 기도해야 합니까? 몸을 드려야 은사가 임합니다. 마음만 드리면 마음에 평안만 오지 은사는 임하지 않습니다. 우리 목소리를 드리고 무릎을 드리고 힘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면서 기도해 보세요. 묵상만 해서는 방언 같은 은사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몸을 드려 기도하면 각종 은사가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온갖 은혜와 은사를 받으려면 몸과 마음을 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4.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기도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15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모여 기다리던 교회는 베드로의 사회로 사도를 보선합니다. 예수님을 배신하고 제 곳으로 간 가롯 유다의 자리에 맛디아를 보선하며 교회를 정비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어지럽히거나 손상을 입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더욱 튼튼히 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성령의 능력만 보면 안 됩니다. 엄청난 질서 속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모습도 보아야 합니다. 사도가 여럿이어도 베드로를 중심으로 나갔습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 교회 담임이었던 것입니다.
성령을 주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개인에게는 참 믿음을 주시고 나아가 교회를 견고히 세워 나가시기 위해서입니다. 교회에 덕이 되어야 합니다. 엡4:12에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했어요. 직분이든 능력이든 은사든 교회에 유익을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 대적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뭐 좀 깨달았다고 현대 교회가 구원이 있니 없니 우리 교회에 와야 되니 마니 그게 아닙니다. 혹은 무슨 특별한 것이나 전하는 것처럼 자기를 차별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손상시키는 교만입니다. 그런 사람은 진정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를 부르심은 하나님의 교회에 도움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지 높은데 서서 비판하라고 세우신 것 아닙니다. 모든 은사는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아져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왜 그렇게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나는지 저는 그것이 우리 하나님의 주신 마음이라고 믿습니다.
5. 그들은 계속하였습니다.
2:1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그 날도 그들은 모였습니다. 이때가 열흘째였습니다. 그 날 성령이 임하지 않았다면 계속 모였을 것입니다. 계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이 끓으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우리 신앙의 열도도 계속해야 합니다. 그런데 좀 뜨거워지려고 하면 끝내면 거기에는 큰 역사는 오지 않습니다. 영의 세계에도 클라이맥스가 있어요. 성령의 흐름을 타면서 계속해야 합니다.
영국의 고아의 아버지 죠지 뮐러는 고아원을 설립해 일생 9975명의 고아를 자식처럼 보살핀 사람입니다. 그런 죠지 뮐러는 21살까지 기도할 줄도 모르고 아버지 돈을 훔치는 도벽질에다 거짓말과 유흥으로 방탕하며 감옥에 갇히는 등 허랑방탕하게 살았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임종하던 날도 뮐러는 카드놀이를 하였습니다. 그러던 뮐러는 친구의 권유로 성령 받는 집회에 참석하여 불같은 성령을 받고 회개하여 일생 고아들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낙심하지 말고 계속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그러나 한 분 일체이시기에 모두 시인해야 합니다. 관심 가지고 성령의 충만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분부를 받들어 마음을 다하고 몸을 다하고 시간을 다하고 힘을 다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계속하여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충만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