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로 임하시면

왕으로 임하시면 (눅 19:41-48)

 

이 시간에 “왕으로 임하시면”이라는 제목입니다. 오늘 주일은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평화의 왕으로 입성하신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이란 예수님께서 입성하실 때 백성들이 종려가지를 흔들며 환영했다 해서 생겨난 이름입니다. 사람들은 길에 옷을 펴며 종려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 하며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호산나란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의 뜻입니다. 신령한 의미에서 종려주일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섬기느냐가 중요합니다. 주님을 구원자이실 뿐 아니라 매사에 나의 왕으로 환영하고 받들어 모셔야 합니다. 그 때 주시는 은혜가 예언되어 있습니다.

슥9:9-10에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하셨습니다.

주님이 왕으로 임하시면 어떻게 될까요?

1. 사랑으로 품어주십니다.


왕으로 입성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보세요. 41-42절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왕으로 입성하신 주님이 하신 첫 번째 하신 일은 예수살렘을 향한 탄식이었습니다. 그토록 사랑하는 예루살렘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장차 원수들에게 죽고 끌려갈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마23:37-38에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탄식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왕으로 모셔 들이면 진정 사랑으로 품어주십니다. 왕의 행복은 백성이 평안하고 태평성대를 누리는 것입니다.

2. 장래 일을 알려주십니다.

43-44절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머지않은 장래에 자기 백성들이 당할 비극을 아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사람들은 피신케 권고하신 것을 알지 못해 A.D. 70년에 로마군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면 장래 일을 알려주십니다. 미래의 꿈을 주십니다. 비전의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내가 주장하니까 방황하지 하나님이 주장하시면 미래가 보여요. 인생의 성공은 얼마나 큰일을 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성공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며 살았느냐에 달렸습니다.

내가 목적하는 것을 이룬다고 복이 아닙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완전한 복은 하나님의 비전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 나이에 무슨 비전”이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 사람입니다. 야곱처럼 자신의 꿈도 자손의 꿈도 천국의 꿈도 다 여러분의 비전입니다. 천국에다 놀라운 보화를 쌓아야지 이것도 비전입니다. 가장 큰 비전입니다.

미국의 웬디스 햄버거의 창업자 데이브 토마스는 『나는 10억 배의 축복을 받은 자』라는 간증을 펴냈습니다. 그는 사생아로 아버지도 없이 자랐습니다. 학교도 중퇴하였고 할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60세가 될 때까지 간이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회에 다른 사람보다 먼저 출석하고 열심히 기도하며 십일조도 먼저 드렸습니다. 그의 나이 60이 되었을 때 햄버거 가게를 차렸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보다 더 좋은 재료를 쓰고 더 저렴하게 더 맛있는 햄버거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돈을 벌기 시작하여 6조원 규모의 대 기업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10억 배의 복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인생은 되돌릴 수 없는 것 지금부터 잘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왕으로 모실 때 꿈을 주십니다.

3. 악을 척결해 주십니다.

왕으로 입성하신 주님 하신 일을 보세요. 45-46절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성전을 청결케 하시며 거룩한 성전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든 당시 종교지도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왕으로 모셔 보세요. 주님이 마음을 다스려 주셔서 마음의 악을 청결케 해주십니다. 내가 왕이 되니까 범죄하는 것입니다. 겸손하여 주님이 주장하시면 청결해져요. 그래서 요한복음 16장을 보면 성령이 임하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해 주신다 하셨습니다.

이 책망은 우리가 체험하기에는 회개의 영을 가리킵니다. 마음에 엄청난 회개의 영이 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불효하고 교회에 충성하지 못하고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그렇게 죄송할 수가 없습니다. 왜 그랬는지 견딜 수가 없는 마음이 생겨요. 세상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 그렇게 어리석게 여겨집니다.

불가사리가 조개를 잡아먹습니다. 어떻게 잡아먹는지 아십니까? 불가사리가 처음에는 조개 가까이 접근하여 같이 놀면서 친구가 된답니다. 그러면 조개가 마음 놓고 입을 조금 벌립니다. 그때 불가사리가 조개의 살을 가볍게 간질거리며 애무한답니다. 그러면 조개가 기분이 좋아서 입을 딱 벌리는 순간 불가사리가 조개의 심장을 찍어서 잡아먹는답니다. 그러므로 방심하지 말고 근신하여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성령 충만하여 살아가는 자에게 악한 자가 가까이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4. 진리로 인도해 주십니다.

47-48절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두목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침을 찾지 못하였더라” 왕으로 입성하신 예수님이 하신 주된 일이 가르치심이었습니다.

사람도 배우려는 마음을 가져야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선생을 높이고 그 가르침을 사모해야 합니다. 주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높이고 모시고 따라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받으려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를 지도해주십니다.

5.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왜 입성하셨습니까? 아버지의 뜻을 따라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대신 달리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님은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자기를 불사르신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 안에서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하십니다.

대전 어느 집사는 심방을 집에서 받지 않고 자꾸 가게에서 받아서 교회에서는 왜 그럴까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집사의 장인이 “목사님, 우리 사위가 지금 어디에서 사는지 아십니까? 저를 따라와 보세요.” 그래서 장인을 따라가니 어느 언덕 아래 비닐하우스가 있더랍니다. “이게 제 사위가 사는 집입니다.” “아니? 그 좋은 집 어떻게 하고요?” “아직 모르셨군요. 그 집은 팔아서 예배당 짓는데 바쳤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 집사님의 사업이 잘 되어서 지금 십일조를 그 때보다 이십 칠 배로 한답니다. 사람들은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수십 배로 갚아주셨던 것입니다.

여자가 결혼하기 전에는 친정을 위해 살지만 결혼하면 시댁을 위해 살듯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왕이신 예수님을 모시면 하나님을 위해 살게 됩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을 주인이라 했어요. 우리가 겸손히 하나님을 주라 왕이라 섬길 때 큰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돈도 주님을 위해 쓰고, 시간도 주님을 위해 쓰고 무엇을 하든 주님을 위해 하게 되는 은혜를 받습니다. 나는 없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 1:20에서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간증했습니다.

나를 잊고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도 자기를 잊으시고 우리를 위해 사십니다. 신앙생활은 널뛰기와 같습니다. 우리가 “주님, 영광 받으세요.” 하고 높여 드리면 주님께서도 “너도 귀해져라”고 하십니다. “아닙니다. 주님만 잘되어야 합니다.”하면 주님께서는 “아니다 너도 잘 되어라.”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 4:8에 보면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삶은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섬길 때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예수님도 우리 왕이십니다. 비유에서도 말씀하셨듯 예수님이 왕 되기를 원치 않는 자는 심판을 받습니다. 반대로 예수님을 왕으로 부를 뿐 아니라 왕으로 높이고 섬기고 따를 때 놀라운 구원과 사랑과 꿈과 성결과 진리와 영광을 주십니다. 우리 모두 만왕의 왕 되신 예수님을 호산나 영접한 사람들처럼 이 시간 온전히 마음의 종려가지를 들고 왕으로 섬기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