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드릴 세가지 보배

우리가 드릴 세 가지 보배 (마 2:11)

 


우리가 주님께 드릴 세 가지 보배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얼마 전 굴지의 기업을 일군 어느 모 회장을 가까운 친척으로 둔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회장을 대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이 회장에게 선물을 할 때랍니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 집에는 온갖 귀한 것들이 많아 웬만한 것 가지고는 귀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그렇다면 하나님은 더욱 그렇지 않을까요? 우주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 뭘 드려야 귀히 여기시겠습니까?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자기의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즉 예수님이 자신의 목숨을 주셨습니다. 이런 주님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드려야 감동을 받으시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마음을 드린다면 그보다 더 갚진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네 마음으로 여호와를 섬기라고 했습니다.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우리는 그것을 동방박사들이 드린 예물에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별을 보고 왕 되신 아기 예수께 찾아와 세 가지의 예물을 드렸는데 그 세 예물 속에 우리가 드릴 세 가지 보배 같은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1. 그 보배는 믿음입니다.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보배 합을 열어 드린 예물의 첫 번째가 황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황금을 좋아하신다는 말씀일까요? 금은 믿음의 상징입니다. 벧전1:7에 믿음을 금에다 비유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믿어 드리는 것만큼 귀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믿음이 없어서 늘 책망 받았는데 그만큼 믿음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바꾸어놓고 생각해 보세요. 남이 나를 의심하고 믿어주지 않는다면 얼마나 얹잖습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히11: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습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존재와 좋으신 하나님을 믿어 드리세요. 그것이 복 받는 길입니다. 풀무불 앞에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하나님께서 건져내 주신다고 믿어 드리세요. 나아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것은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면전에서 살고 있다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눈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함께 하지 않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곁에 계시고 우리 안에 계십니다. 이것을 믿고 의식하며 살 때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 무엇하고 계시냐? 왜 침묵만 하시는가 하면서 외칩니다. 그러나 그렇게 의심해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의 모든 삶에 관여하시며 책임지고 계심을 믿을 때 우주와 역사와 인간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사야의 체험이 그것입니다. 나라를 부강하게 한 강력한 왕 웃시아가 교만하여 문둥병 들어 죽고 근동지방에 앗수르왕 디글랏 빌레셀 3세가 새로운 실력자로 부상하면서 나라는 긴장과 불안에 휩싸였습니다. 웃시아의 죽음은 유다 백성들은 물론 이사야에게 절망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이제 세상에 기댈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 때 성전에 기도하러 간 이사야는 성전에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왕이신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를 이끌어가던 쟁쟁한 일군들이 다 은퇴하고 나면 한국교회는 어떻게 될까? 그러나 사람은 표면에 나타난 도구일 뿐 지금까지 역사하시던 분은 우리 하나님이셨으니 그 하나님께서 계속하여 새로운 일군을 내셔서 이끌어가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 보지 마세요. 하나님을 보세요. 하나님을 믿으세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것처럼 믿고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최고의 예의는 믿음입니다.

이왕 믿는 것 목숨 걸고 믿으세요. 어떤 청년이 세계 최대의 전도자 무디에게 와서 질문하였습니다.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그러자 무디는 그 청년을 뒷동산으로 데리고 올라가서 벼랑 끝에 있는 나뭇가지에 매달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 손을 놓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선생님! 이곳에서 저를 아무도 모르게 죽일 작정이십니까?’ 이때 무디는 “신앙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의지하면 살 수 있고 예수를 놓으면 죽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가르쳐 주었습니다. 청년은 깨닫고 그 때부터 목숨 걸고 신앙생활하여 황금 같은 믿음을 소유했다고 합니다.

2. 그 보배는 기도입니다.

동방박사들이 또 그린 것이 무엇입니까? 유향을 드렸습니다. 유향은 기도의 상징입니다. 유향은 성전의 분향단에 드렸던 향입니다. 시141:2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드는 것이 저녁 제사같이 되게 하소서” 했습니다. 계8:3에도 성도의 기도가 향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유향은 위로 연기를 내며 타오릅니다. 이와 같이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며 대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 자신이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기도할 시간에 봉사하니 하나님이 봐주시겠지 그렇지 않습니다. 봉사는 봉사고 전도는 전도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 시간에 돈 벌어 헌금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부모는 자녀 만나가를 원하고 남편은 아내를 원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원하십니다. 어떤 선물이 그것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갖는 시간이 많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기도에 빠지면 온갖 아름다운 것을 주실 텐데 사람들은 깊이 들어가는 것을 외면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마7:7)라 하셨습니다. 렘29:12에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통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해서 손해 볼 것 없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보배입니다. 기도하는 교회가 귀한 교회입니다. 그 기도가 세계를 움직이고 우주를 움직입니다.

3. 그 보배는 희생입니다.

동방박사들이 몰약을 드렸습니다. 몰약은 고난의 상징입니다. 그냥 고난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수고하며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남기신 고난이 있습니다. 너는 내 양을 먹이라 하신 교회를 향한 수고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빛이 되라는 사회를 향한 봉사입니다. 고난 받는 이웃을 위하여 그것을 내 가슴에 안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몰약은 방부제로서 썩는 것을 방지하는 것입니다. 미라를 만들 때 썩지 말라고 시체에 바르는 향품인데 우리가 그 역할을 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무관심은 모르고 사회가 썩었다고 비난합니다. 그리고 자기 할 일은 하지 않고 교회 역시 썩었다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썩은 세상을 가슴에 안고 애통하고 기도하며 수고하는 것이 내 사명인 줄 알아야 합니다. 자칭 선지자는 많지만 엎드려 기도하는 제사장은 많지 않습니다.

1980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테레사 수녀가 한번은 영국 BBC방송에 나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기자는 테레사 수녀에게 “당신은 일생을 죽어가는 사람들 곁에서 살아왔는데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그러자 테레사 수녀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 자신이 버려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진심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보살펴 주는 이웃이 있다는 것을 살아있는 단 몇 시간만이라도 느끼게 해주는 것입니다.”

가장 큰 은사는 무엇일까요? 사도보다 선지자보다 모든 지식과 예언과 산을 옮길만한 믿음보다 병 고치는 것보다 더 큰 은사가 무엇일까요? 사랑입니다. 천사에게서 이것을 빼면 사탄이 될 수 있고 사람에게서 이것을 빼면 짐승이 될 수 있는 이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수고를 가진 사람을 가장 귀히 여기십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예로부터 왕은 반드시 금으로 꾸미고 몸에는 유향과 몰약의 향을 바르는 것이 풍습이었습니다(시45:8-9, 시72:15, 사60:6). 그러므로 동방 박사들이 예수님에게 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바친 것은 예수님이 유대의 왕(마2:2)으로 오신 분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신령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리십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주님이 다스리실 때 천국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주님이 왕이심을 인정하십시다. 동방박사들처럼 보배를 드리십시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보배처럼 여기시는 우리의 믿음을 드리고 기도를 드리고 희생을 드려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우리들도 그 은혜에 참여하는 가장 복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