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바다 유라글로

인생바다의 유라굴로 (행 27:9-20)

 

 

이 시간에 “인생바다의 유라굴로”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 인생을 비유한다면 바다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순풍도 있지만 광풍도 몰아칩니다. 바울이 탔던 죄수호송선 알렉산드라아호도 로마를 향해 가는 도중 유라굴라라는 광풍을 만났습니다. \'유라굴로\'는 그레데섬의 이다산맥으로부터 생기는 북동풍으로 이 바람을 만나면 배는 방향을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속수무책으로 아프리카 방면으로 밀리다가 모래톱이나 암초에 부딪혀 파선하는 무서운 바람이라고 합니다.

우리 인생길에도 이런 광풍이 있습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왜 이런 유라굴로를 허락하실까요? 영적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고난 없이 순종하면 좋으련만 완악한 우리 인간은 고난 없이는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고난이 없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해와 달이 보이지 않는 열 나흘의 극심한 고난 속에 알렉산드리아호에 탄 276인은 고난 속에서 회개하여 예수 믿고 육지에 상륙하게 되었듯 고난은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던져줍니다.

우리 인생에서 유라굴로가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1. 말씀에 순종하라는 교훈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렵니까? 유라굴라를 당하렵니까? 둘 중에서 선택하세요. 이 풍파는 피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백부장에서 금식의 절기가 지나 계절풍이 부는 겨울이기 때문에 행선하면 위험하다고 권했습니다. 이때가 양력 9-10월입니다. 이때가 되면 쉴 사이 없이 계절풍이 붑니다. 그래서 이때가 되면 봄이 올 때까지 배를 정박시키고 항구에서 겨울을 나야 합니다. 이다산맥으로부터 생기는 바람은 예고 없이 몰아칩니다. 그래서 뱃사람들의 소원은 제발 유라굴라만은 만나지 않게 해 주세요가 그들의 기도였습니다. 

바울은 어떤 사람입니까? 전도하다가 파선의 위기를 세 번이나 겪은 사람입니다. 그 뿐 아니라 이번 행선에 큰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는 성령의 감동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항해를 중단하고 이 항구에서 겨울을 지내자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었습니다. 선주는 배가 정박해 있으면 손해고, 선장은 바다가 너무나 잔잔하니 출항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말대로 순종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무슨 뜻입니까? 말씀대로 순종하면 고난 주실 이유가 없다는 교훈입니다. 고난도 은사이지만 고난 받아야 순종하려는 마음 있다면 버려야 합니다. 순종하는 자식이 되어야 합니다. 이삭도 이스라엘 족장이요, 야곱도 족장이지만 야곱처럼 고통 속에서 변화되는 것보다 이삭처럼 순종하여 축복 받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고 우리에게도 유익이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의도는 광야 40년이 아니었습니다. 말씀을 받고 신앙의 훈련을 하는데 1년이면 족합니다. 고난이 필요 없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고난은 주시지 않습니다.

2. 미혹 받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하였나요? 그들은 바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더 달콤한 소리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과동을 하더라도 더 나은 항구에 가서 겨울을 나자는 의견이었습니다. 그럴듯한 소리입니다. 그런데 가을인데도 순풍이 불어옵니다. 뱃사람에게 순풍이란 얼마나 좋습니까? 참으로 매혹적인 것입니다. 이 좋은 순간을 놓치고 싶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내렸던 닻을 감아 올리고 행선을 시작합니다. 바울 보기에는 참으로 위험한 항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어려운 일이 없이 평안하고 형통하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없지요? 그러나 이때가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누구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 교만하게 됩니다. 교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 교만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의 교만을 책망할 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고(삼상15:23) 교훈한 것처럼 순종하지 않음이 교만입니다.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아요.

1912년, 영국에서는 타이타닉(Titanic)이라는 배를 만들었습니다. ‘타이타닉’이란 가장 강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이 배는 ‘절대로 침몰할 수 없는 배, 하나님도 침몰 시킬 수 없는 배’라고 교만했습니다. 그런데 대서양을 횡단하다가 빙산에 부딪쳐 2,208명 중에서 1,513명이 배와 함께 바다에 장사지내는 엄청난 사고가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길에 가장 위험한 것이 평탄이요 교만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십니다.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너 혼자 해봐라 놔두십니다. 형통할 때 자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3. 세상 초라한 것에 매달리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바울이 탄 알렉산드리아호는 태풍에 밀려서 작은 섬 가우다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이미 일차 목표지 뵈닉스를 벗어난 지 35Km 지점입니다. 겨울나기에 가장 좋다는 뵈닉스항을 지나쳤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겨울이 옵니다. 인생의 겨울에 어떻게 나기를 바라십니까? 뵈닉스와 같이 화려하고 평안하고 향락이 있고 유희가 있기를 원하십니까?

노년의 3가지 고민이라는 글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노년의 세 가지 고민은 먼저는 고독의 문제랍니다. 외로움, 그러므로 자녀들은 부모를 효도하고 인정해 주고, 신앙을 권장하며, 적당한 일거리를 드리고, 대화할 기회를 드리라. 다음 고민은 건강의 문제이고, 다음은 경제적인 문제라, 그래서 사람들은 겨울나기 좋은 인생의 뵈닉스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맘대로 되나요? 이 세 가지 다 충족한 사람 있나요? 돈이 있으면 건강이 없고, 건강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도 건강도 있는데 고독하고, 이건 있는데 저것은 없고, 저건 있는데 이건 없고, 다 있으면 뭐합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행복할까요?


그런데 배가 가우다섬 아래로 밀려온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이 섬이 조금은 바람막이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사이에 선원들은 배 고물에 매달려 물에 잠겨 끌려 다녔던 거룻배를 갑판 위로 끌어 올릴 수 있었습니다. 배가 좌초될 때 유일한 비상수단입니다. 그러나 바람이 그치지 않으면 거룻배가 무슨 소용입니까? 세상 초라한 것 의지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세상도 돕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4. 버릴 것을 버리라는 교훈입니다.

죄수를 태운 알렉산드리아호는 광풍에 밀려 계속하여 떠밀려갑니다. 선원들은 배가 깨어지지 않도록 줄로 배를 감고 연장을 바다에 내려 배가 서남쪽으로 떠밀려 가는 것을 최대한 억제했습니다. 그래도 폭풍은 더 거세지기만 합니다. 그래서 이튿날 사공들은 배를 가볍게 하려고 짐을 버리고 그래도 더욱 거세지니 사흘째 되던 날에는 기구까지 바다에 버렸습니다.

이처럼 살려면 버릴 것을 버려야 합니다. 사람의 방법도 버리고 세상 종교도 버리고 아버지 앞에 나와야 합니다. 죄악 염려 근심 걱정 다 버려야 합니다. 이제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일 염려는 내일하고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풍랑은 더 거세질 뿐입니다.

17절에 스르디스라는 것은 리비아의 모래톱 해안입니다. 이 모래톱에 걸리면 파선됩니다. 모래는 해류에 따라 자주 변해서 항해자들이 가장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거운 것을 다 버렸습니다. 이처럼 육체의 근심과 걱정과 욕심과 세상 것 버리지 않으면 파선됩니다. 믿음도 파선되고 행복도 파선됩니다. 살려면 버릴 것 다 버리세요.

5. 하나님 말씀에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바울이 탄 배는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없었습니다. 열 나흘간 음식조차 먹지 못했습니다. 모두 기진맥진 죽었다고 소망을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바울에게서 말씀이 터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21절에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이 얼마나 반가운 말씀입니까? 회개의 말씀입니다. 복음의 말씀입니다. 간증의 말씀입니다. 이제는 선장도 백부장도 군인들도 죄수들도 바울의 말을 듣습니다.

바울은 계속하여 말합니다.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걸리리라” 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 말씀입니까?

이처럼 완전한 절망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들려옵니다. 그 전에도 들렸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예수의 복음이 들려와야 합니다. 우리 일생 최고의 위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세상 소리 들으면 힘을 주던가요? 우리에게 힘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밖에는 없습니다. 담대하세요. 두려워 마세요. 나 그렇게 쉽게 안 죽어 이렇게 말하세요. 나의 사명 다하기까지 나는 죽지 않는다고 말하세요.

어느 날, 리빙스턴이 아프리카를 횡단하다가 야수에게 물려 거의 죽게 되자 시종이 죽지 말라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때 리빙스턴이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일을 다 할 때까지 결코 죽지 않아.” 그런 자신감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몸 하나님께서 시시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뭔가 영육 간 잘못 되서 아플 것입니다. 그 잘못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6. 세상 줄 끊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바울의 말대로 열나흘 째 되던 밤 사공들은 육지가 가까워지는 것을 알고 닻을 내리고 거룻배를 타고 도망하려고 합니다. 바울이 발견해 소리치자 그들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최후의 희망인 거룻배는 풍랑 속으로 멀리 사라졌습니다. 군사들이 거룻줄을 끊어버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공이 도망하면 배 안의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받기 위해서는 세상 줄이 남아있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 말고도 구원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구원 받지 못합니다. 나는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고 예수님만이 나의 생명의 구주시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가 구원의 길 중 하나라는 주장으로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가 나의 구주라는 믿음 가지시기 바랍니다.

7. 교회생활하며 경건의 훈련 잘 받아야 합니다.

그들은 바울의 지시와 기도 속에서 음식을 먹었습니다. 배의 분위기는 상상할 수 없이 바뀌었습니다. 날이 새어 항만을 발견하고 배를 더 가볍게 한 후 돛을 달고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두 물이 합하여 흐르다 멈추는 곳에 배를 거니 배가 요지부동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헤엄쳐서 혹은 널조각이나 물건에 의지하여 모두 상륙하여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 두 물이 충돌하여 멈추는 곳이 어디 일까요? 교회입니다. 세상적인 흐름을 차단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세상의 물이 몰려와도 하늘의 생명수가 내려와 차단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생활 잘하면서 신앙생활하시면 우리 믿음은 날마다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유라굴라의 광풍은 불어옵니다. 그러나 이 광풍을 통해 더욱 회개하고 예수 믿고 더욱 깨어지고 회개하고 부서지고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더 원하는 것은 고난 풍파가 필요 없이 진실로 회개하고 순종하여 하나님께 가장 사랑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