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박을 풉시다

결박을 풉시다 (마 12:28-29)

[요약] 최상의 자유를 위해 부름 받은 성도가 불신자보다 더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산다면 뭔가 알지 못해 결박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 율법에서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즉 보혈 공로를 믿어 정죄에서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의롭다 하신 자를 아무도 정죄할 수 없다. 다음은 침체에서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침체를 극복하려면 열심 있는 신앙생활은 물론 발성기도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지에서 자유를 누려야 한다. 성경을 알고 진리 되신 예수를 체험할 때 진정한 자유는 주어지는 것이다.

 

 

이 시간에 “결박을 풉시다”라는 제목으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무거운 짐이 다 풀려지는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진정한 자유와 능력을 누리면서 살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하셨습니다. 갈5:1에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이 놀라운 자유와 능력을 알지 못하고 불신자와 같이 혹은 불신자보다 못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불신자는 웃고 사는데 웃어야 할 신자는 웃지 못하고, 불신자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소망으로 가득해야 할 신자는 도리어 두려워하고, 불신자는 강한데 진정 강하고 담대해야 할 신자는 나약하기만 합니다. 마음에 행복이 없고 우울하고 사는 것이 힘들기만 합니다. 그렇다면 큰 문제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사단에게 속아 진리 부족으로 불신자보다 더 많은 묶임 속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신자는 장차 큰 벌을 받을지라도 우선은 율법을 모르기 때문에 율법의 묶임은 받지 않잖아요. 또 불신자들은 죄를 지어도 죄가 뭔지 모르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죄책감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잠시 동안은 괴로울 것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들은 자신을 묶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건만 그것을 알지 못하고 아직도 애굽의 종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묶고 있는 사단의 결박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그것을 풀어야 합니다.

그럼 풀어야 할 결박은 무엇일까요?

1. 율법의 결박입니다.

우리 신자를 묶으려는 무서운 결박 하나가 바로 율법의 결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율법에서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율법에서 정죄 받지 않는 자유와 율법이 지켜지는 자유입니다. 롬8:1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얼마나 정죄의식 속에 살아갑니까?

성경은 율법을 죄와 사망의 법이라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율법 자체는 선하지만 그것을 지킬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 법이 우리를 정죄하고 죽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정죄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율법으로 마음의 정죄를 받아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죄의식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와서 평안함을 누려야 할 사람들이 도리어 심령은 답답하고 갈기갈기 찢어지고 고통을 느낍니다.

그렇다면 뭔가 잘못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를 져주시고 화목제물이 되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갚아야 할 것을 하나님 앞에서 다 갚으셨습니다. 그래서 이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영적 상태가 어떻든지 의롭다 함을 얻은 것입니다. 어느 주장처럼 회개할 필요도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범죄했다면 회개하세요. 진실로 회개하세요.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 피 공로로 의롭다 함을 얻은 자라는 위치에서 회개하는 것임을 잊지 말고 보혈로서 자기 양심을 보호하면서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의롭다 하신 이는 주님이시니 누구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내 대신 정죄를 받아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지상의 법도 한 번 벌 받은 죄로 두 번 다시 벌 받게 못합니다. 이미 사화했거나 징벌을 받았다면 우리를 공소할 공소권이 없습니다. 세상의 법도 그러하듯 하늘의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죄인 내 놓으라고 요구할 권한이 없습니다. 그래서 롬5:1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고 했습니다. 이 아버지의 사랑을 믿고 가슴 펴시고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죄와 사망의 율법의 결박에서 온전히 해방되시기 바랍니다.

2. 침체의 결박입니다.

이것도 역시 무서운 결박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심령의 연약함입니다. 이 충만하지 못한 상태로는 자유를 얻지 못합니다. 고후3:17에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있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심령이 침체되지 않도록 항상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열심히 신앙생활하는데 성령 충만이 누려지지 않을 때입니다.

예배에 빠지지 않고 기도생활도 충분히 하고 나름대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데 늘 나약합니다. 두렵고 떨리고 고독하고 기쁨이 없고 능력이 없고 근심과 걱정과 상처와 온갖 것에 심히 눌려 있습니다. 질병이 두렵고 죽음이 두렵고 천국 가는 것이 두렵고 영적으로 늘 침체되어 있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 원인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 원인 중 중요한 하나는 발성기도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하셨고,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성도들은 소리를 잃어버렸습니다. 발성기도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데도 능력을 모르고 그래서 두렵고 떨리고 나약하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깊이 기억하십시오. 이 침체는 발성기도로만이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진정한 묵상도 발성기도를 한 자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얼마나 소리가 많습니까? 옛날은 교회의 소리는 컸지만 세상의 소리는 작았습니다. 그 때 교회는 날로 부흥했고 우리 심령의 은혜도 풍부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는 조용해지고 세상의 소리는 큽니다. TV나 경기장이나 거리에서 세상이 떠들고 노래하고 웃고 즐기고 응원하는 소리, 세상은 소리로 가득하지만 교회는 소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종소리도 잃어버렸고 발성 기도소리도 잃어 버렸습니다. 말씀에 서서 믿음을 외칠 줄도 모릅니다. 생활 속에 찬송이 없습니다. 주님을 부르라 해도 그 소리가 나오다가 다시 들어가 버립니다. 그 결과 세상을 이기지 못하고 부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독도가 천성을 가는데 길을 가던 사람들이 길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일어나시오. 원수들이 위험합니다.” 하니 그들은 일어나서 둘러보더니 아무 일 없는데 하면서 다시 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독도가 잃은 물건을 찾으러 다시 돌아왔을 때 그 사람들은 이미 결박당해 목이 베여져 있었습니다. 침체의 결박을 당하면 영적으로 죽는다는 교훈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온갖 마음과 환경의 시험이 닥칩니다. 그러면서도 왜 그런 시험을 당하는지조차 모릅니다.

한국교회의 침체는 80년대 후반 5,000불을 넘어서면서 부터였습니다. 경제발전으로 부르짖을 육신적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진정 부르짖어야 할 영적 이유는 알지 못하고 육신적 이유가 줄어들자 침체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영성보다 논리를 중시한 백인들의 신학이 한국교회를 정복할 때부터였다고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는 성령 충만한 일군은 안중에 없고 이력서에 너무 집중하는 것 같은데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기도하고 찬송할 때 옥문이 열린 것처럼 진정한 영성은 소리를 회복하는데서 출발합니다.

3. 무지의 결박입니다.

어느 부족의 추장은 자기만 공부하고 자기 부족들에게는 공부를 시키지 않고 노예처럼 부려먹는다고 합니다. 보물을 채취해 오면 헐값으로 사서 비싼 값에 내다 팝니다. 부족들은 영어를 모르니 상거래를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선교사가 이들을 거기서 해방시킬 방법은 공부밖에는 없음을 알고 공부를 시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알지 못하면 타인의 노예만이 아니라 온갖 불가능에 둘러싸이게 됩니다. 알지 못하는 것처럼 불편한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하셨습니다. 진리를 알지 못하면 결박당한다는 말씀입니다.

알아야 삽니다. 알아야 가능합니다. 장차 농촌경제가 어려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면 앞으로 곡식 없어 고통당할 때가 온다고 했습니다. 지금 국제 곡물 가격이 갑절로 뛰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로 지상에는 온갖 격변이 끓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팔리지 않으면 현재는 어렵더라도 미래를 대비한다는 마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영적인 자유를 누리려면 성경을 배워야 합니다. 진정한 진리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체험할 때 만사는 거기서 해결 됩니다. 영혼의 갈망은 예수님을 체험할 때 해결 됩니다. 아무리 훌륭한 프로그램과 세미나가 있어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 만족함이 없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진리 되신 예수님을 체험할 때 가능합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는 귀신 들렸다고 자기를 핍박하는 사람들에게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단은 결박하고 온갖 결박에 묶인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사단을 예수의 이름으로 결박하고 죄와 질고와 저주의 온갖 결박에서 자유 얻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결박을 푸시기 위해서 대신 결박 당해 끌려가셨습니다(요18:12).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자유를 주셨으니 다시는 결박 당하지 마십시다. 우리가 결박당할 때 그것은 우리의 슬픔은 물론 하나님의 슬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진정한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과 침체와 무지 등 그 어떤 것에도 결박당하지 말고 예수님과 그 복음 안에서 신앙생활 잘하여 온전한 자유와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