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시대의
성만찬과 같은 순서에서 볼 수 있듯이 기독교 예배는 다른 종교의 예배와 다른 독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독교 예배가 무로부터 창조(ex nihilo)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예배학자 루이스 보이어(Louis Bouyer)가 그의 책「Eucharist: Theology and Spirituality of the Euphemistic Prayer」에서 말하듯이, 기독교 예배란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는 멜기세댁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진 어떤 것이 아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예배를 논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기독교 예배의 뿌리, 즉 그것의 기원이 되는 발생(genesis)과 발전과정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
루이스 보이어(Louis Bouyer)가 \"기독교 예배는 유대교 예배로부터 그 뿌리를 가진다\"고 말하던 1966년만 하여도 그러한 가설은 상당히 논쟁의 여지가 있는 이론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성서신학의 진보와 예배 예전의 비고학적(comparative study of liturgy)연구는 이미 구약예배에서 기독교 예배를 분리하는 것이 얼마나 인위적인 것인지를, 그리고 구약의 예배와 신약의 예배가 얼마나 연속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의 예배
그렇다면 구약에 나타나는 예배는 어떠한 독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형태를 갖춘 제사로서 구약에 나타나는 인류최초의 예배는 \'가인과 아벨의 제사(창4:3-4)이다. 이 인류최초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인간이 드리는 예배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계시는지를 보여준다. 첫째, 하나님은 인간의 예배를 받기도 하시며 도한 거부하기도 하신다. 둘째, 하나님께서 인간의 예배를 받으시는 조건은 인간의 행위와 삶이 올바르고 선할 때이다(창4:7). 따라서 구약에 나타나는 예배는 처음부터 인간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인간이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 때 하나님은 언제나 예배자의 행위와 마음을 살피신다(사1). 예배자의 윤리적 삶은 구약시대의 예배가 강조하는 요소로서 구약의 예배뿐 아니라 신약시대의 예배까지도 이어지는(롬12:1) 기독교 예배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배의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도 구약시대의 예배는 이방종교의 예배와 다른 독특성을 가지고 있다. 정장복 교수는 그의 책「예배학 개론」에서 로날드 바욱스 (Ronald de Vaux)의 「Ancient Israel: It\'s Life and Institution」의 글을 요약하여 다음과 같이 구약시대 예배의 독특성을 설명하였다. 첫째. 이방 원시종교의 예배가 해, 달, 별 등을 비롯한 자연의 신들을 섬기는 다신적 예배인 반면에 구약의 예배는 야웨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는 유일신 사상의 예배였다. 둘째, 이방원시종교의 예배에서는 신들로부터 아무 응답도 받지 못한 반면 구약의 예배에서는 하나님의 임재와 인격적인 응답이 있었다. 셋째, 이방원시종교의 예배에서는 섬기는 신들의 형체를 그리거나 만들어 우상을 숭배하였으나 구약의 예배는 하나님에 관한 일체의 형상을 남기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순종하는 일관된 삶을 살았다. 넷째, 이방 원시종교의 예배가 예배하는 자들의 소원성취에 예배의 주목적을 둔 반면 구약의 예배는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에 응답하는 감사의 제사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구약시대 예배의 독특성을 넘어서, 그렇다면 구약시대의 예배는 어떠한 예배신학을 가지고 있었을까? 많은 학자들은 오랫동안 구약에 두가지 다른 예배신학이 존재하고 있음을 관심있게 보아왔다. 첫 번째, 예배신학은 예루살렘 성전 예배에 기초를 둔 것으로 레위 제사장의 역할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다. 또 다른 하나의 예배신학은 일상생활에 기초를 둔 것으로 제사장보다는 일반 예배자인 회중의 역할과 행위에 중점을 둔 것이다.
제사장 중심(Priesthood-oriented)인 구약의 예배신학
구약의 몇 개의 본문에 의하면(민1:50-54, 3:5-10, 5:15, 레1-7, 대하5:5, 13:10-12, 젤40-46, 슥14:16-20등) 거룩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오직 예루살렘에 있는 그의 성전의 지성소 안에 임재하신다. 따라서 앞의 본문들은 예배가운데서 \"거룩Sacred)\"과 \"세속(profane)\"을 예리하게 구별하여 나누고 있다.
에스겔서를 보자(40-46장), 에스겔서는 환상을 통해 예언자에게 보여진 성전의 형태와 크기를 설명한다. 여기서 누누이 강조되는 것은 성전이 세속과 구별되고 신성함을 유지하여야 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거룩함과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장소의 거룩함이 모독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은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과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에 관하여 자세히 가르치고 있다. 레위 제사장들 중에 오직 사독의 아들들만이 하나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허락되었다. 왕은 문 현관까지만 나올 수 있으며 회중들은 밖에 남아있어야 한다.(44:3). 사옥의 아들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는 가는 베옷을 입고 나아가야 했으며 그들이 바깥뜰 백성에게로 나아갈 때에는 수종 들던 옷을 벗어 거룩한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고 나아가야 했다(44:19).
이러한 본문들에 의하면, 하나님은 오직 성전에 있는 그의 제단에서만 제사를 받으시는 것으로 묘사될 수 있다. 에스겔서에서 특별히 강조하듯이 사독의 아들들에게만 한정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제사장들을 넘어설 수 없다. 이러한 예배에서 회중들은 단지 멀리서 참여하는 구경꾼에 불과하다. 번제를 바칠 때에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방법을 따라 제사를 확실하고 완벽하게 드려야 한다. 물론 이러한 제사에 사용되는 도구들도-의복이나 기구들, 심지어 가구들에 이르기까지-허락되지 않은 손으로 건드릴 수 없도록 특별히 구별되어야만 하였다.
결국, 이러한 제사장 중심의 예배는 인간존재의 철저한 무가치성을 분명하게 강조하게 되었다. 평신도의 하나님과의 만남은 오직 중재자에 의하여 거행된 성스러운 제사에 의하여 보장될 뿐이었다.
회중중심(people-oriented)인 구약의 예배신학
위의 제사장 중심의 예배학과는 전혀 다른 신학이 구약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데 그 본문들은 출19:5-6, 신10:12-22, 시50:7-23, 51:17-19, 암2:6-8, 호6:4-10, 8:11-14, 사1:10-17, 56:6-8, 60-61장, 미6:6-8, 렘7:1-12, 22-23, 슥8:14-23, 삼상15:22-23 등이다.
위의 본문들 속에서 강조되고 있는 예배신학은 더 이상 제사장 중심의 외적이고 형식적인 제의가 아니다. 오히려 위의 본문들은 형식적인 예배가 아닌 내적이고 \'영적인 희생(spiritual sacrifice)\'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영적 예배\'라는 말의 의미는 마음으로만 드리는 예배, 혹은 반물질적(antimaterialistic)예배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위의 본문들이 말하는 예배의 신학은 이 세상으로부터의 이탈이나 도피가 아니다. 도리어 이 세상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상호간의 강한 연대와 형제애를 가지고 자신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결국 위의 본문들이 강조하는 예배는 거룩한 예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의 계명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회중 중심(people-oriented)의 예배신학은 회중의 구별된 삶을 예배하고 규정한다. 배고픈 자를 먹이고 목마른 자, 과부와 고아를 돌보고, 궁핍한 자와 압제받고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주의 이름으로 돕는 일이 바로 예배가 된다. 결국 이러한 관점에서 예배는 인간의 삶의 전 영역으로 확대된다. 즉 예배는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는 하나님을 향한 공허한 형식이나 제의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God who is with us)\'. 즉 임마누엘과 함께 하는 흥겨운 잔치가 된다.
제사장들의 중재를 통하여 초월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접촉하는 것은 이제 회중중심(people-oriented)의 예배신학에는 의미가 없게 된다. 도리어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함께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장소,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을 요청한다. 결국 이러한 예배신학에서는 세속과 거룩의 구별은 의미가 없게 된다. 본질적으로 이러한 예배신학이 강조하는 것은 한 인간, 혹은 한 민족, 이스라엘의 삶과 행위들이며 이러한 것들로 열매맺어지는 윤리적 혹은 사회적인 결과들이다.
구약에 나타난 예배신학의 다양성과 통일성
그렇다면 이두가지 서로 다른 구약의 예배신학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벨하우젠(Wellhausen)이 1885년 Prolegomena to the History of Israel\"을 발표한 이후로 \'예언자들의 예루살렘 성전 예배에 대한 명확한 태도가 무엇이었는가?\"에 대하여 수많은 논쟁이 있어 왔다. 진보적 종교사학파(Religiongeschichte school)에 영향을 받은 학자들은 제사장 중심(priest-oriented)의 예배신학이 본래적인 것이며 회중 중심(people-oriented)의 영적 희생(spiritual sacrifice)의 예배신학은 후기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와는 반대로 몇몇의 학자들은 칠십인역(Septuagint)에서 가장 잘 반영되고 있는 제사장 중심(priest-oriented)의 예배 신학은 포로후기 시대의 부패한 예배의 정신을 깨우치기 위한 것으로서 그러한 본문들은 그 배경과 함께 이해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가장 적당한 주장으로 여겨지는 이론은 체리(T. Chary)등에 의해 주장되었는데 그에 의하면 구약에는 처음부터 두 가지 서로 다른 예배에 대한 신학이 공존하고 있었다고 한다. 에스겔과 예례미야로 대표될 수 있는 이두가지 예배신학은 언제나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켜 왔다는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예배신학은 에스겔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포로기 시대의 예배신학을 대표하는 제사장 중심(priest-oriented)의 예배개념을 형성하였다. 이시기의 예배신학은 더 이상 모세의 율법(Torah)을 지키는 것이 아닌, 희생적인 제사를 드리는 것을 강조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변화는 실제적으로 행해지던 당시의 예배의 모독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예례미야로 대표되는 회중 중심의 예배신학은 본래 초기 예언자들에 의해서 강조되었던 것으로 모세의 율법을 강조하는 신명기, 스가랴서와 다니엘서에서 지지되고 있는데, 이러한 예배신학이 에스겔의 예배신학의 등장으로 주춤하였으나, 이후에도 시편과 같은 지혜문학 가운데 계속하여 남아 있게 되었다고 한다.
성전예배
그렇다면 구약에 나타나는 이러한 예배에 대한 서로 다른 신학은 구약예배에 어떻게 반영되었을까? 제사장중심(priest-oriented)의 예배신학과 회중중심(people-oriented)의 예배신학이 반영된 구약의 예배 형태는 성전예배(temple worship)와 회당예배(synagogue worship)라고 말할 수 있다. 제사장 중심의 예배신학은 성막 및 성전의 예배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한편 회당 예배는 예배자의 삶과 생활을 강조하는 회중 중심의 예배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데, 이는 재물이 아니라 선지자들의 가르침과 계명을 순종하는 것이 참다운 예배라고 생각하는 예배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에 순종하기 위하여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게 된 데서 기인한 것이다.
성전예배는 성막 예배와 함께 이스라엘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현존을 상징적으로 강조한다. 거룩한 공간과 거룩한 예식들, 그리고 거룩한 직분은 성전예배의 중요한 요소로서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가시적으로 상징화하였다. 이러한 거룩한 상징들은 하나님에 의하여 친히 제정된 것으로서(출26-28장, 대상28:12,19) 이러한 것을 통하여 하나님은 상징적으로 인간과 교통(communicate)하시고 자신의 현존을 나타내신다.
성전은 특별히 공간 사용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법을 따른다. 바깥뜰과 안뜰, 지성소 등의 배열을 통하여 지성소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과 예배자 사이의 거리를 표시하고 번제단, 금등대, 물두멍, 진설병을 놓는 탁자, 향단, 언약궤 등의 모든 기구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묘사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성전예배는 여러 가지 거룩한 예식들에 의해 진행되었는데 일반적인 희생제사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첫째, 희생 제물을 바치기 전에 예배자는 자신의 몸을 깨끗이 하고 바쳐질 온전한 동물을 준비한다. 이때 동물을 바치는 행위는 하나님께 어떤 보상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예배자가 자발적으로 감사를 드리는 것을 강조하곤 하였다. 둘째, 희생 제물 위에 안수한다. 셋째, 희생제물을 죽인다. 넷째, 희생재물의 패를 뿌린다. 다섯째, 희생제물을 태운다. 마지막으로 바쳐진 동물의 고기를 제사장들과 회중들이 나누어 먹는다. 결국 희생 제사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잔치로 막을 내리게 된다. 일반적인 희생 제사 이외에도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지고 특별히 드리는 제사들이 있었는데 예를 들어 번제(양 한 마리를 매일 드리는 제사로서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헌신을 의미함)와 화목제(사람과 사람사이의 화해를 상징함), 속죄제(부작위에 위한 죄를 속죄를 상징함), 속건제(작위에 위한 죄를 위한 속죄를 상징함)등이 있다.
또한 성전 예배는 거룩한 예식을 집행하는 직분을 강조한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을 중재하는 자들로서 오직 레위인들만이 제사장이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정교한 예식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성별 되었다. 그들은 섬기는 일에 적합한 의복을 입었으며(출28:40-43, 39:1-31) 거룩한 생활을 위한 엄한 규칙들을 부여받았다(레21:1-22:10).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 자신과의 관계를 가시적으로 표현하는 성전예배의 강조점은 결국 후에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와 연결되어 기독교 예배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신약성서는 여러 곳에서 성전예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상기시킨다.(막14:58, 15:29, 38, 요2:19-21). 하지만 거룩한 장소(건물, 거룩한 예식(성찬식 등), 거룩한 직분(위임받은 자들)등에 대한 개념 등은 기독교 예배의 발전과정에서 성전예배를 통하여 기독교 예배에 전수되어 남게 되었다.
회당예배
회당에 대한 구약의 기록은 거의 없다. 그러나 회당예배는 아마도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BC.587) 및 포로기 동안에 이루어진 유대 민족의 분산의 결과로 생겨났을 것이다. 회당예배는 성전 예배와는 판이하게 달랐는데 거룩한 예식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거룩한 직분들도 강조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이해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이러한 회중 중심의 예배신학은 회당 예배 이전부터 존재하였다고 보여진다. 모세의 율법이 주어지는 시내산 사건 가운데 나타나듯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법(십계명)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그 법을 그들의 삶속에 이루어 갈 것에 동의한다. 즉 하나님과 백성사이에 계약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하나님은 모세와 예언자들을 통하여 수시로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알려주셨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삶을 통하여 이루어 내는 참 예배(people-oriented worship)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이 말씀을 통하여 전달되었던 것은 회당 예배 이전부터 전해오던 구약 예배의 오랜 전통이었는데 이것이 결국 포로기 이후 회당 예배의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회당 예배는 대부분 몇 사람의 평신도에 의해서 인도되곤 하였는데 누가복음4:16-27에 의하면 예수님의 첫 설교는 회당 예배 중에 하신 강론이었다. 일반적인 회당 예배의 순서는 먼저 쉐마(shema)의 낭독(신6:4-9, 11:13-21)과 축복(benediction)으로 시작된다. 이어서 회당 예배는 테필라(Tefillah)라는 기도서를 일어나서 읽는 순서와 율법(Torah)과 예언서를 읽는 순서, 그리고 설교가 이어졌다.
이러한 회당 예배가 기독교 예배에 미친 영향은 대단한 것이었다. 초대 기독교회가 독자적인 예배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면서 회당 예배순서는 쉽게 기독교 집회에 전용되었고 기도하는 순서, 성경을 낭독하는 일, 그리고 설교하는 일등이 기독교 예배 가운데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되었다. 이 회당 예배의 가장 큰 강조점은 회중 중심(people-oriented)의 예배, 즉 영적인 제사(spiritual sacrifice)를 통하여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배워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제사를 삶으로 드리기 원하였던 구약의 예배자들의 회당 예배전통은 후에 기독교 예배 가운데 이어져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고전3:16-17,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