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부활의 의미

예수님 부활의 의미 (마 20:17-19)

[요약]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는 무엇일까? 예수님의 부활은 말씀하시던 대로의 부활이다. 우리도 말씀하신 대로 죽어야 영육 간에 사는 것이다. 주님의 부활은 성경대로의 부활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닥치는 고난도 말씀하신 섭리 속에 진행 되는 것이니 새롭게 변화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를 위한 부활이다. 예수님이 죽으실 때 우리 옛사람도 함께 죽었고 예수님이 사실 때 우리도 영광스럽게 살았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모델로서의 부활이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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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에 “예수님 부활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이 말씀을 드리기 전에 그리 중요하지는 않지만 여러분의 궁금증 한 가지를 풀어드리려고 합니다. 왜 부활절이 4월이었다가 3월이었다가 날짜가 일치하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서방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절 지키는 습관 때문입니다. 양력으로 보면 주후 30년 4월 9일이 부활하신 날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서방의 그리스도인들은 춘분이 주일이면 춘분을, 춘분이 아닐 때는 춘분 지나고 만월(滿月)이 지난 후 첫 번째 일요일을 부활절로 기념했습니다.

지난 목요일이 춘분이었죠? 그리고 어제 밤 둥근 보름달이 떴는데 날이 흐려서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제 거의 둥근 달을 보며 여전히 달나라에 토기 두 마리가 떡방아를 찧고 있는 것을 유심히 쳐다보면서 옛날이야기를 회상해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이 음력으로 2월 16일이니 춘분도 지나고 만월도 지난 날이니 바로 부활주일인 것입니다.

그럼 서방 교회는 동방과는 달리 춘분이나 춘분을 지나서 부활절을 지키자고 고집하는가? 이때가 주님이 부활하신 때의 부근이기도 하지만, 춘분?태양이 적도의 위를 지나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서 따스한 봄기운을 주듯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영육 간에 생명을 주고 소생케 하는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춘분의 상징성을 충분히 살려서 부활주일을 정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생명을 소생시키는 봄기운과 같은 예수님의 부활의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1. 예수님의 부활은 말씀하시던 대로의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하리니 제 삼 일에 살아나리라”(마20:18-19) 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앞날을 아셨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고난을 당해도 모르고 당하는 고난입니다. 자기 장래 고난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르고 닥칩니다. 이미 알고 있다면 염려와 근심으로 일상생활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고난도 부활도 다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의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됩니다. 우리는 주님이 재림하시면 말씀하시던 대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까지 살아남은 자는 죽음을 보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늘 말씀하시고 우리도 늘 말하듯 내가 죽으면 살게 될 것입니다. 내가 예수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았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우리도 그 은혜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래서 딤후2:11-12에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고후4:10에도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공로를 믿음으로 불신앙과 죄와 고집과 교만의 내 옛사람에서 죽어보세요.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사는 역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상을 살면서도 하나님 나라에 속해 살기 때문에 천국에 갈 때도 결코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아이가 태어나서 엄마 품에 안길 때 그 아이는 그것이 전혀 낯설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는 엄마 품에 안길 때 열 달 동안 들어오던 그 심장소리를 엄마 품에서 다시 들으며, 열 달 동안 들어오던 엄마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되기 때문에 전혀 낯설지 않다고 합니다. 이처럼 내가 죽고 다시 사는 진리는 이미 지상에서 믿음 안에서 현실화 된 것이기에 풍성한 영생이 전혀 낯설지 않게 우리에게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2. 주님의 부활은 성경대로의 부활입니다.

고전15:3-4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것은 100% 성경대로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실 때 검으로 대항하려는 베드로에게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면서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마26:53-56)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닥치는 여러 일도 성경에 말씀했듯 하나님의 섭리 속에 진행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4:12-13)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단이 주는 시험을 물리쳐야하나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난은 그 고난 속에서 진정 회개하며 참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은 아무도 물리칠 수 없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서 사는 참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죽고 영광스럽게 다시 사는 것은 성경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대로만 죽어지면 그것은 가장 영광스런 복인 것입니다. 육체로 죽으라는 말이 아니라 진실로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3.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를 위한 부활입니다.

롬4:25에 “예수는 우리 범죄 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실 때 우리 옛사람도 함께 죽었고 예수님이 사실 때 우리도 영광스럽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이 -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엡2:4-6)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2:20)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지금 하늘에 속한 자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죽으실 필요도 살아나실 필요도 없습니다. 지상의 많은 종교들이 있지만 그들의 교주는 자기 수명과 자기 죄로 죽었지 인류를 위해 죽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보혈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창조도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부활도 없습니다.

그들은 우주의 원리나 각종 이치를 입이 마르게 이야기하지만 근본 되신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죄인을 구원하신 독생자 예수의 은혜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마음을 이야기해도 마음 그 이상이신 성령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이 아무리 어떤 이치를 이야기해도 그것은 땅에 속한 이론일 뿐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으면 체질도 바뀝니다. 성격도 바뀝니다. 약한 자가 강하게 됩니다. 강한 사람도 부드러운 사람이 됩니다. 맞지 않는 사람도 맞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마치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말하는 운명이나 철학도 우리에게는 맞지 않습니다. 예수 믿고 성령 충만해 보세요. 인생이 달라집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를 위해 사신 분이 계시기에 우리는 위대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4.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모델로서의 부활입니다.

고전15:20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했습니다. 첫 열매는 모든 열매의 대표요 모델이 됩니다. 우리들도 부활하신 예수님과 같은 은혜를 입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죽음이 없고 시공간도 초월하며 먹을 수도 있고 먹지 않을 수도 있고 영원히 썩지 않을 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되고 예수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 신신학자들은 우리가 하나님이 된다고 말합니다. 부처가 따로 있지 않고 모른 사람이 부처라는 이방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도올 김용옥 씨도 예수님의 유일성을 부정하고 우리도 예수가 될 수 있고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에덴동산에서 너도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속였던 뱀과 같은 사상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고 예수님의 영광스런 몸에 참예하는 것과 하나님이 되고 예수님이 되는 것과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과 같은 영광스러운 몸을 입게 되지만 예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영원 전에도 계셨고 또 영원히 계셔서 찬양 받으실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영광의 형체를 입게 되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사랑과 진리의 거룩한 성품을 입게 되지만 하나님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 영광스러운 은혜를 입혀 주신다는 사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은 말씀하시던 대로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경대로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를 위한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부활의 모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어도 주님의 부활이 바로 내 부활임을 믿지 않고 또 부활생명으로 다가오는 성령의 은혜를 받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부활을 내 부활로 믿고 성령의 은혜로 충만하여 영육 간에 예수님과 같이 부활 생명으로 가득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