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대한 성경에 교훈

돈에 대한 성경의 교훈 (고후8:9)

[요약] 성도가 돈 문제를 바로 하지 않으면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다. 돈에 대한 성경의 교훈을 살펴보면 돈은 일만 악의 뿌리니 돈을 사랑하지 말라(딤전6:10). 풍족히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라(마6:31-32). 부지런히 일하라(살후3:10).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면 백배로 주신다(창26:12-13). 그 방법은 진실이요, 아이디어요, 기도이다. 지상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으라(마:19-21). 성령의 뜻을 따라 심고 거두어야 한다(잠11:24-25). 그리스도를 본받아 없는 자와 나누며 살아야 한다(고후8:9).

 

 

이 시간 “돈에 대한 성경의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은 영혼만이 아니라 육체를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아울러 물질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 하셨는데 이 말씀은 말씀과 아울러 물질도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물질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돈입니다. 그러므로 돈 없이 살기 어렵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돈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일까지도 돈 없이는 거의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사람은 돈 때문에 웃고 돈 때문에 웁니다. 우리 성도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돈 문제 바로 하지 않으면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돈에 대한 성경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딤전6:10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돈은 아주 필요한 것이지만 너무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그 돈을 불어버리십니다.

그래서 잠23:4-5에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물질의 창고를 맡으려면 돈을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돈은 붙잡으면 붙잡을수록 멀리 도망갑니다.

이것이 세상의 이론과 달라요.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면 될 것도 안 됩니다. 그것이 바로 십일조입니다. 그리고 주일성수, 그리고 구제생활입니다. 돈을 사랑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시금석이 바로 십일조입니다. 돈을 사랑하면 결코 할 수 없는 것이 이 세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이 관문을 통과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풍족히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합니다.

마6:31-32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며 책임져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사람들이 알지 못해서 그렇지 이 복음을 전해 주는 것이 그 무엇으로 구제함보다 더 값집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이루신 공로이기도 합니다. 고후8:9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이 말씀을 믿는 한 우리가 세상 어느 곳에 있다 해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을 채우는 기적의 비밀입니다.

3. 부지런히 일하라고 말씀합니다.

살후3:10에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습니다. 솔로몬도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잠6:6-8)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고 일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공중의 새도 하나님이 먹이시지만 가만있지는 않습니다. 항상 채우실 것을 믿으면서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도와주십니다. 게으름은 온갖 고뇌와 가난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게으름은 모든 일을 망친다는 말도 있고, 인간의 최대의 악은 태만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성도는 하루 주일은 쉬고 엿새 동안은 부지런히 일해야 합니다.

4.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야 합니다.

창26:12-13에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는 대로 했더니 큰 복을 주셨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께서 그물을 오른 편에 던져라 하실 때 순종했더니 가득히 잡았습니다. 가나의 혼인집에서도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할 때 그대로 순종했더니 넘치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먼저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잠11:1에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하셨습니다. 남을 속이는 것으로는 잠시 될지 모르나 자기 복을 막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속이는 사람에게 누가 다시 상대하려고 하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했습니다. 그랬더니 100배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실 때 100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열심히 배우는 것도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지혜입니다. 유대인들은 무엇을 행하기 전에 먼저 지혜를 구한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세계의 부요를 유대인들이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성급해서 투자부터하기 때문에 실패하고 맙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은 기도입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쉬고 또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내신 법칙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기도 없이 일만하면 영감이 없어요. 기적이 없어요. 하나님과 동역할 수 없어요. 더 아름답고 위대한 인도를 받을 수 없어요.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하면 무엇을 하든지 성공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5. 지상에 쌓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마:19-21에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땅히 성도가 천국 소망이 충만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면 그 이유가 무언 줄 아세요. 천국에다 쌓는 재미를 모르고 사라질 지상에만 쌓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소망을 가지려면 결코 자기를 위해 지상에 쌓는 꿈을 꾸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생각하면 하나님의 일은 언제 합니까? 딤전6:7-8에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진정 행복하려면 누구보다 복을 받아야 하지만 무엇보다 하늘에 쌓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부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나누고 베풀며 검소하게 사는 사람들을‘욘(yawn)족’이라고 부릅니다. 대표적인 욘족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나 야후의 창업자인 제리 양 같은 사람들인데 그들은 다 기독교인들로서 지상보다 하늘에 쌓는 것을 더 기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갑부가 아니기에 더 실천하기 쉽습니다.

6. 성령의 뜻을 따라 심고 거두어야 합니다.

잠11:24-25에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더 선한 일 많이 하라고 자꾸 자꾸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9:8)고 했습니다. 착한 일 많이 하라고 더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투자로 치면 가장 안전하고 큰 투자입니다. 그러나 내 기분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감동 따라 해야 합니다. 이 청지기 역할을 잘하면 더 맡기시지만 감동을 주셨는데도 불순종하면 가진 것도 가져가십니다.

6.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며 살아야 합니다.

흔히 고후8:9을 잘못 해석하는 것 같아요. 고후8:9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은 우리의 가난의 저주를 예수님께서 져주셨다는 의미도 있지만, 전후 문맥을 보면 연보를 교훈하는 말씀입니다.

당시 성도들은 연보를 해서 가난한 사람을 도왔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연보를 말씀하면서 이것이 평균케 하는 진리라고 했습니다. 마치 예수님은 부요하시지만 가난하게 되신 것처럼 우리도 그 본을 받아 나눔의 삶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예수님처럼 청빈하자고 하면 예수님이 가난의 저주를 지셨는데 무슨 소리냐고 반박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청빈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가난예찬론의 청빈이 아닙니다. 복음을 위해 그리고 불우한 형제들을 위한 나눔의 청빈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모본이요 초대교회 성도들이 보여준 모본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행복하게도 예수님의 모범은 물론 한경직 목사가 보여준 아름다운 모범이 있습니다. 당시 한국 최대의 교회인 영락교회 담임목사였던 한 목사님은 100세가 가깝도록 남한산성의 움막에서 사시며 그 본을 보였습니다. 그 모습대로 따라가면 어느 누가 우리를 비방할 수 있으며 어느 누가 감동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물질을 사랑하여 비난 받고 전도 길을 막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벌어서 하나님의 일하고 남과 나누기 위해서 버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특수한 물질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구주 예수님을 본받으십시다. 주님은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이처럼 먼저 물질의 부요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돈을 사랑하지 말고,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서, 부지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잘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지상에 쌓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주며, 청빈의 삶을 따라가십시다. 그 때 하나님께서 지상의 풍성함은 물론 하늘의 영원한 상급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