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수종드는 여인

일어나 수종 드는 여인 (막 1:29-31)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또 다른 신분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가 하나님의 종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일에 수종을 들어야 할 종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하고 충성된 마음으로 주님이 맡기신 일에 충성하며 수종을 들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에 게을리 하고 주님께 수종을 들지 않는다면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웠다 예수님께 고침 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어떤 사람입니까? 수제자 베드로의 장모가 아닙니까? 수제자 베드로의 장모이면 베드로를 대신해서라도 맨 앞장을 서서 예수님께 수종 들어야 할 사람입니다. 마치 목회자의 어머니나 장모와 같은 위치입니다. 이 분들의 기도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런데 마땅히 예수님을 수종 들어야 할 사람이 열병 때문에 꼼작할 수 없이 누워 괴로움 가운데 뒤척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었을까요? 베드로의 장모를 깊이 관찰해 보면 몸의 열병도 열병이려니와 마음의 열병이 심하게 들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예수님의 사역의 초기입니다. 그 때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무도 모를 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형제들도 예수님이 미쳤다고 잡으러 온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지런하고 신실하던 베드로라는 사위가 어느 날 갑자기 무명의 예수라는 청년을 만나더니 배와 그물과 부모와 자식까지 내버리고 따르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혼자만 아니고 동생 안드레까지 끌었으니 충분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 배경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육신의 열병만이 아니라 마음의 열병에 깊이 들었던 것입니다.

눅4:38에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에 붙들”렸다고 한 稿낮?마음 역시 심한 열병에 붙들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장모가 병 고침 받고 일어나 즉시 예수님께 수종을 들었다는 것은 그의 육신의 열병은 물론 마음의 열병까지 치료되었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마음의 열병에서 놓임 받지 못했다면 결코 수종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이 열병이 문제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려면 이 열병에서 치료되어야 합니다.

그럼 우리가 치료받아야 할 마음의 열병은 무엇일까요?

1. 실망의 열병입니다.

주를 위해 충성해도 아무 결과도 없을 때 실망의 열병이 듭니다. 이 열병에 들면 아무리 강조해도 주를 위해 수종들 수 없습니다. 눅 24장을 보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것을 믿지 못하고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던 실망한 두 제자입니다. 실망이 컸으니 태산 같던 사명 역시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동행하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시며 그들의 눈을 열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게 하시자 그들은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실망의 열병에서 고침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갈6:7-9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고 말씀합니다. 실망하지 말고 끝까지 계속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신의주에서 목회할 때 이야기입니다. 마음이 크게 상한 일을 당하고 그만 낙심이 나서 일할 마음도 없어졌습니다. 그 날 집에 돌아왔는데 정신없이 방바닥에 넘어졌습니다. 넘어져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자신이 어떤 길을 갑니다. 길이 대단히 험한데 어떻게 피곤한지 이리 넘어지고 저리 넘어집니다. 그런데 그 때 난데없이 어떤 큰손이 사람의 손의 열 배나 되는 큰손이 나타나서 오른쪽으로 넘어지면 오른쪽에서 붙들고 왼쪽으로 넘어지면 왼쪽에서 붙들고 앞으로 꼬꾸라지면 또 두 손이 앞으로 와서 붙드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체험을 하신 한 목사님은 실망의 병에서 일어나 다시 힘을 내어 일할 수 있었습니다.

혹은 일을 했지만 사람이 알아주지 않거나 상처를 받게 될 때 실망의 열병이 옵니다. 지상에서 상을 받으려고 하니 실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상 받을 생각만 하면 실망치 않게 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 충성하게 됩니다. 마6:1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랬습니다. 하늘의 상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상 주시려고 그러시는데 왜 사람의 칭찬을 구하십니까? 사람이 알아주면 그 사람은 이미 상을 받은 것입니다. 칭찬하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마세요. 이 실망의 열병을 극복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참된 종이 될 수 없습니다.

2. 세속의 열병입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좋아하면 하나님의 일에 수종들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했습니다. 세상 영광을 더 좋아하고 돈을 좋아했습니다. 요5:44에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하셨습니다. 눅16:14에서는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눅20:46에는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좋아하는 서기관들”이라고 했습니다. 세속의 열병에 빠진 것입니다. 그랬기에 쓸데없는 일만 하다가 예수님을 배척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교계라고 세속이 틈타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총회에서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온갖 권모술수와 돈다발이 굴러다니는 소리가 납니다. 실망할까봐 깊이 말할 수 없지만 돈이 아니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만큼 타락하고 있습니다. 돈을 너무 좋아합니다. 명예를 너무 좋아합니다. 권세를 너무 좋아합니다. 돈 없어 정치 못하겠다고 고민하는 것이 그들의 일입니다. 그러고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합니다. 비판하기보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제목임을 말씀드립니다. 우리의 기도 부족이었음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교계가 세속의 열병에 빠져 있는 한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개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좋아하면 하나님께 수종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섬길 수 없습니다. 세상의 영광과 쾌락에 꽉 찬 마음에 어찌 예수님이 거할 곳이 있겠습니까? 그 마음으로 어찌 하나님을 높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에 마음을 두어야 할 때 다른 오락과 취미에 마음이 가 있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우리의 소 떼와 양 떼에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혹은 하나님의 일보다 자기의 일에 열망해서는 수종들 수 없습니다. 전에 황해도 재령읍에 정 찬유 장로라고 있었는데 그는 주일 성수도 잘하고 십일조도 잘하는 분이고 또 돈도 잘 벌어서 2층 양옥집을 지으려고 설계사를 불러다 설계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하나님이 책망을 하시는데 \"네 집은 그렇게 화려하게 지으면서 내 집은 어찌하여 양철집으로 내버려두느냐\"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깨어 일어나 무릎을 꿇고 회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이 죄인을 용서해 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내일부터 곧 하나님이 계실 거룩한 집부터 건축하겠습니다.\" 그 이튿날 곧 설계사를 불러다 설계를 예배당으로 바꾸어 가지고 잘 지었는데 그것이 \"재령 동부 예배당\"으로 당시에는 한국 제일의 예배당이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병에 빠지시기 바랍니다.

3. 불평의 열병입니다.

일하다 불평이 생기면 일 할 수 없습니다. 흑인으로서는 미국 최초의 국무장관이 된 콜린 파월(Colin Powell)을 아실 것입니다. 뉴욕의 흑인 빈민가에서 태어나 자라난 사람이지만 언제나 긍정적이었습니다. 사춘기 시절 그는 공장에서 도랑을 파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동료 인부들 가운데 한 사람은 삽에 몸을 기댄 채 회사가 임금을 충분히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옆에서 또 한 사람은 묵묵히 성실하게 도랑을 파고 있었습니다.

몇 해가 지난 후 파월이 다시 그 공장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을 때 여전히 한 사람은 뭐가 못마땅한지 계속 불평만 하고 있었지만 묵묵히 일하던 사람은 이제 승진하여 지게차를 운전하고 있었습니다. 또 여러 해가 흘러 그 공장에 다시 갔을 때 불평만 하던 사람은 원인불명의 병으로 장애인이 되어 회사에서 해고됐지만 열심히 일하던 그 사람은 그 회사 사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경험이 파월에게 굉장한 교훈이 되었습니다. 파월은 어느 곳에 가더라도 환경을 탓하지 말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마음먹었습니다. 파월이 흑인으로서 출세하기에는 악조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결코 실망하지 않고 감사하는 태도로 일관했을 때 4성장군인 합참의장을 거쳐 국무장관까지 올라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너무 높게 올려놓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망하거나 불평이 생깁니다. 이렇게만 된 것도 감사하십시다. 욕심을 줄이십시다. 목회하면서 늘 생각하는 것인데 반대만 하지 않아도 감사하다고 생각입니다. 큰일을 하지 않았지만 따라만 준 것도 감사합니다. 내 앞에 대들지만 않은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이렇게 욕심을 줄이면 목회가 즐겁습니다.

우리 여전도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하나님과 회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집시오. 그러면 마음이 편해질 것입니다. 집에서도 남편이 있는 것만도 감사하고, 아내가 있는 것만도 감사하고, 자녀가 큰 출세 못해도 예수 믿는 것만도 감사하고, 건강한 것만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마음에 불평의 열병이 사라져야 비로소 주를 위해서 충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낙심 가운데 계십니까?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눅4:38에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에 붙들린 지라 사람이 저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먼저 마음의 열병에서 구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의 강한 손이 우리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31절에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라는 말은 \'크라테시스\'라는 말인데 \'움켜쥔다\'는 말입니다. 가볍게 잡은 것이 아닙니다. 강하게 움켜쥐셨습니다. 그리고 열병에 앓아누운 장모를 강하게 일으키셨습니다. 이처럼 이 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며 부르짖는 성도의 기도를 들으시고 성령으로 강하게 우리를 일으켜 주십니다. 사람은 못 일으켜도 하나님은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육체의 열병과 마음의 열병에서 고쳐주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충성하는 하나님의 일군을 만드실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중한 열병에 붙들려 있습니까? 실망의 열병입니까? 세속의 열병입니까? 불평의 열병입니까? 어떤 열병입니까? 오늘 주의 말씀으로 치료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에 열망하시기 바랍니다. 그 주님을 최고로 수종 들기 원합니다. 우리 모두 마음의 열병에서 일어나 사랑하는 베드로의 장모와 같이 주님께 온전히 수종 드는 사랑하는 일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