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 8세기 예언자

주전 8세기 예언자

 

1. 아모스

 

 1) 구조
  1장 ~ 6장      죄에 대한 책망과 심판의 선언
    1장 ~ 2:3    이방에 대한 심판의 말씀
    2:4 ~ 6장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말씀
    7장 ~ 9:10  아모스가 보았던 5가지 환상
    9:1 ~ 15     희망의 말씀

 

 2) 아모스의 활동과 말씀

  ① 활동연대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때, B.C. 750년 경

 

  ② 활동지역
북 이스라엘 왕국에서 활동하였다. 특히 북 왕국의 성전이 있었던 벧엘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③ 개인적 배경
아모스는 북 왕국에서 활동하였으나, 그의 고향은 남 유다 왕국 드고아이었다. 그는 본래 “목자요 뽕나무를 가꾸는 농부였다고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다(아모스 7:14).

 

  ④ 역사적 상황과 메시지
여로보암 2세(786~746)가 통치하던 기간은 북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 중에서,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가장 번성한 때였다. 그러나 이러한 번영 가운데 북왕국은 종교적으로 부패하고,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은 팽배하게 되었다.

 

아모스 8:11

 

이 말은 아모스 활동 당시의 경제적 번영과 신앙적 빈곤을 잘 대조시켜 주고 있다. “상아 침상에 누워 비파 소리를 들으며 포도주를 대접으로 퍼 마시는 자”가 있는가 하면(아모스 6:4-6), 신발 한 켤레 값으로 사람이 종으로 팔려가는 상황(아모스 2:6; 8:6)을 향해서 아모스는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리라”고 외쳤다(아모스 5:24).

 

아모스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의 책임을 강조하였고(아모스 3:1-2), 특히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사회정의의 실현을 강조하였다.

 

2. 호세아

 

 1) 구조
   1장 ~ 3장     호세아와 고멜의 결혼
   4장 ~ 9장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책망
   10장 ~ 14장  이스라엘의 죄의 역사와 하나님의 사랑

 

2) 호세아의 활동과 말씀

  ① 활동연대
아모스보다 약 5~10년 정도 뒤, B.C. 745년 경

 

  ② 활동지역
북 이스라엘 지역

  ③ 개인적 배경
그의 아버지는 브에리였다. 그의 유명한 결혼생활 이외에는 호세아에 대해서 별로 아는 바가 없다.

 

  ④ 역사적 상황과 메시지
호세아가 활동하던 시대는, 북왕국의 여로보암 2세가 죽은 후 정치적 안정기가 끝나고, 극도로 혼란하던 시기였다.

 

호세아의 관심은 특히 이스라엘의 종교적 부패 즉 우상숭배 문제였다. 호세아는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한다. 고멜은 세 자녀를 낳은 후, 호세아를 버리고 떠난다. 그러나 호세아는 부정한 아내 고멜을 사랑으로 용서하고 다시 그를 맞아들인다. 호세아의 고멜과이 불행한 결혼 생활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상징하는 “예언자의 상징적 행동”이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 신을 따라가는 것은 마치 결혼한 부인이 부정의 죄를 범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호세아 1:2

 

사실,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의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격을 상실하였다. 그러나 호세아가 고멜을 용서하고 다시 맞아들인 것처럼, 하나님도 이스라엘을 버리실 수가 없다.

 

호세아 11:8-9

 

이 말씀은 호세아의 메시지의 핵심이다. 이스라엘은 “음란의 죄”(우상숭배)로 말미암아 “이혼”을 당해야 마땅할 것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신비를 말하고 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결혼한 부부의 관계로서 표현한 최초의 예언자는 호세아였고, 이후로 예레미야(3:6-10 등), 에스겔(16장, 23장) 같은 예언자는 “결혼의 상징”을 그들의 말씀에서 많이 사용하였다.

 

3. 미가

 

 1) 구조
미가서는 준엄한 심판의 말씀과 아름다운 희망의 말씀이 교차되는 구조를 보여준다.
  1장 ~ 3장    심판의 말씀
  4장 ~ 5장    희망의 말씀 (새로운 이스라엘)
  6장 ~ 7:7    심판의 말씀
  7:8 ~ 20     희망의 말씀

 

 2) 미가의 활동과 말씀
  ① 활동연대
미가는 이사야보다 약간 젊은 동시대의 예언자였다.

 

  ② 활동지역 : 유다왕국

 

  ③ 개인적 배경
미가는 유다지방의 작은 마을 모레넷 출신이었다. 이사야가 “도시의 귀족적”인 예언자였다면, 미가는 “지방의 서민적”인 예언자였다.

 

  ④ 역사적 배경과 말씀
미가는 부패하고 허위에 찬 도시문명을 신랄하게 공격하였으며 불의한 지도자들에 대해서 철저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1-3장). 또한 이사야와는 달리 예루살렘도, 심지어 성전까지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미가 3:12

 

이 말씀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대단히 충격적인 말이었고, 한 세기 후인 예레미야 시대까지 기억되었다(예레미야 26:1-29).

 

그러나 미가의 심판의 말씀은 아름다운 희망의메시지와 교차되고 있으며, 하나님의 심판 뒤에 올 이스라엘의 회복의 꿈으로 끝을 맺고 있다(미가 7:8-20).

 

4. 이사야

이사야는 예레미야, 에스겔과 함께 이스라엘의 3대 예언자 중의 한 사람이다. 이사야서는 모두 6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범위     이름      활동장소          활동연대                                          당시의 제국세력
---------------------------------------------------------------------------
1~39   이사야    예루살렘           C.742-700                                      앗수르(앗시리아)
40~55 제2이사야  바벨론 포로지  포로생활이 끝날 무렵 C.540            바벨론
56~66 제3이사야   예루살렘        귀향하여 “제2성전” 건축이 끝난 후   바사(페르시아)

1. 이사야 (예루살렘 이사야) 1~39장
  1) 이사야의 구조
   ① 1장 ~ 12장  이스라엘 두 왕국에 대한 심판과 희망의 말씀 (이사야 초기 활동)
         2:2-5  영원한 평화의 세계
         5:1-7  포도원의 노래
         7장     임마누엘 예언
         9:1-7  메시야 왕
        11:1-9  메시야 왕
   ② 13장 ~ 23장  이방 외국에 대한 심판의 말씀
   ③ 24장 ~ 27장  “이사야 묵시”
   ④ 28장 ~ 35장  이스라엘 두 왕국에 대한 심판과 희망의 말씀 (이사야 후기 활동)
   ⑤ 36장 ~ 39장  역사적 기록 (열왕기 하 18:13~20:19)

 

  2) 이사야의 활동과 말씀
   ① 활동연대
이사야는 구약의 문서 예언자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활동하였다 (C. 742-700). 그는 유다왕국의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예언자로 소명을 받았고 (사 6장), 요담 왕과 아하스 왕을 거쳐, 히스기야 왕 때 앗수르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침공(701) 할 때까지 활동을 계속하였다.

 

   ② 활동지역
이사야는 예루살렘에서 활동하였고, 그의 메시지도 예루살렘 중심적이다. 그래서 이사야 1장~39장의 이사야를 “예루살렘 이사야”라고 흔히 부른다.

 

   ③ 개인적 배경
아버지 : 아모스
아  들 : 스알야숩 (사 7:3), 마헬살랄하스바스 (사 8:3)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이 있었음 (사 8:16)

 

   ④ 역사적 상황과 메시지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대는 유다 왕국이 전례없이 큰 변란을 겪던 때였다. 주전 735년에는 시리아(아람)와 북 이스라엘 왕국이 동맹을 맺고(시리아-이스라엘 동맹), 연합군이 예루살렘을 침공하는 전란이 있었다. 또한 701년 히스기야 왕 때는 앗시리아 제국의 산헤립 왕이 유다 왕국의 전역을 태풍처럼 휩쓸고, 마침내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하여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은 때도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이사야는 활동하였다. 그는 국운이 백척간두와 같은 상황에서 초지일관하게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의지할 것을 외쳤다.

 

이사야 7:9

 

이 말씀은 이사야의 메시지를 잘 요약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그들과 함께 하시고 예루살렘을 적들로부터 구원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리아, 이스라엘 연합군이 예루살렘을 쳐들어 왔을 때 그는 유명한 “임마누엘의 예언”을 말씀하셨다(이사야 7장).

 

또한 앗시리아 제국의 산헤립 왕이 예루살렘을 향해 진격하고 있을 때,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였다.

 

“그가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 대저 내가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이사야 37장)

 

이사야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은 두 번의 위기를 무사히 넘기게 되었다. 이후로부터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도성이기 때문에 어떤 적도 함락시킬 수가 없다고 하는 “성도(聖都)로서 예루살렘 신학”이 뿌리 깊이 확립하게 되었다.

 

이사야는 또한 앞으로 도래할 영원한 평화의 세계의 비전을 보여주었고 (이사야 2:2-4), 메시야 대망의 꿈을 심어 주었다 (이사야 9장, 11장).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궁극적인 에덴의 낙원이 회복되는 모습도 그려주었다.

 

이사야 11: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