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류의 믿음

세 종류의 믿음 (요 4:46-54)

이 시간에 “세 종류의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을 전혀 알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어 자기 아들의 병을 고침 받고 온 가족이 다 하나님을 섬기는 집안이 되었는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왕의 신하 그는 당시 갈릴리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던 헤롯 안티바스의 고위층 신하였습니다.

그런데 불신자가 예수 이름으로 자식 병 고침을 받고 가족까지 구원했으니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우리 성도들도 사도 요한의 축복대로 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 신하에게 세 종류의 믿음이 있음을 봅니다.

1. 표적을 보면서 믿는 믿음이 있습니다.

48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이 신하는 갈릴리 가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한 가닥의 소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이것이 표적을 보면서 믿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 믿음은 가장 초보적인 믿음이거나 아니면 불신자나 다름없는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불신자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여주어야 믿겠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신자들 하나님을 보여주면 믿을까요? 실재 보여주면 믿지 않습니다.

그 예로 유대인은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수많은 메시아적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 병을 고치고 귀신에서 해방시키고 죽은 자를 살리며 배고픈 자를 음식으로 먹이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표적을 보고도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수많은 기사와 이적을 보았지만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고 불신했습니다. 그러므로 표적을 보고라도 믿는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도마가 예수님의 손에 못 자국과 허리에 창 자국을 만져보고 믿었는데 그렇게라도 믿는다면 그것도 은혜라는 말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왕의 신하도 표적을 보고 믿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우리는 이 표적적인 믿음을 49절에서도 봅니다. 이 신하는 예수께서 자기 아들에게 내려와 아들의 이마에 손을 대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가 진정 주님을 믿는다면 그런 수고를 요청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의 믿음을 고쳐주시기 위해서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구원은 말씀을 믿는 믿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표적에 의한 믿음은 시작으로서 필요하지만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보지 않고도 믿어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다섯 살짜리 딸이 아빠에게 수영장을 가자고 했습니다. 마침 아빠는 돈이 없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딸아이는 “나 하나님한테 부탁할 거야!”하고서 자기의 방으로 뛰어 들어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여기는 오늘 너무 너무 더워요. 수영장에 가고 싶어요. 아빠는 돈이 없어서 저를 데려갈 수 없대요. 그러니 하나님이 어떻게 좀 해주실래요? 하나님. 아멘.” 그렇게 기도한 아이는 수영복을 꺼내 입고 목에 수건을 두른 후 “밖에 나가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 건지 기다릴 거야.” 하며 아이는 밖에 앉아 손으로 턱을 괴고 앉았습니다. 바로 그때 전화가 울렸습니다. 이웃집 부인의 전화였습니다. “여보세요. 가족끼리 서로 친해지면 좋겠어요. 우리 수영하러 가려는데 함께 가면 어떨까요? 저희에게 무료 티켓이 있거든요.” 이렇게 보지 못해도 믿는 아이의 믿음에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요20:29) 하셨습니다. 사실 봐야 믿는다는 믿음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체험한 후에 믿겠다는 것은 그만큼 시간과 고난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천국과 지옥을 보아야 믿겠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한 번 죽어야 할 사람입니다. 그냥 믿으면 복될 텐데 왜 죽어서 경험하고 믿겠다는 것입니까?

저는 설교하다가 우리 성도들은 복되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진리를 체험시켜 주시기 위해서 수많은 세월을 혹독한 연단 아래 두셨는데 우리 성도들은 가만히 앉아서 한순간에 그 진리를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표적을 통해서도 믿지만 표적 없어도 믿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정 믿음이 없다면 왕의 신하처럼 표적을 보면서라도 믿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것도 일종의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있습니다.

신하가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할 때 예수님은 그의 말에 반응하지 않으시고 그냥 말씀으로만 선포하셨습니다. 50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그 사람은 예수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갔습니다. 현대어 성경을 보면 “그가 서둘러 집으로 가고 있는데”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렇게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가더니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았다 하는 소식을 듣고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제 칠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아비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었습니다. 이것이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 성경에 가득 찬 약속을 내 것으로 삼는 것은 그 말씀을 믿거나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롬10:17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기적이 있고 구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잊지 말고 믿어야 합니다.

목회자 세미나에서 한 강사가 \'나는 최고의 시절을 아내가 아닌 여자의 품에서 보냈습니다\'라고 말하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어머님이었습니다!\'라며 말을 잇자 장내는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1주일 지나 세미나에 참석했던 사람이 자기 설교할 때 그 농담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최고의 시절을 아내 아닌 다른 여자의 품에서 보냈습니다!\'라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역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한 후 그 다음 말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생각나지 않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누구였는지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랬다가 혼 난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농담이지만 설교 잘 들으라는 교훈입니다.

R.A.토레이 목사님이 성경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날마다 믿음으로 승리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그는 대답하기를 “예, 제가 말씀을 붙들고 사는 것이지요.” “틀리지는 않는 말이네. 그러나 자네가 말씀을 붙들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네.” “뭡니까?”묻는 그에게 토레이 목사님은 “그것은 자네가 말씀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이 자네를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말씀 충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서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베드로처럼 말씀에 의지하여 물 위를 걸으라 하면 걸을 수 있는 믿음 갖기를 바랍니다.

3. 타인에게까지 감화를 주는 믿음이 있습니다.

왕이 신하의 위대한 점은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를 통해 온 가족이 다 믿었다는 것입니다. 53절에 “아비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신 그때 인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 했습니다. 너무나도 정확하게 말씀이 응한 것을 본 왕의 신하는 예수를 믿을 뿐 아니라 온 가족이 다 믿게 되었습니다. 감화를 주는 믿음입니다. 혼자서는 잘 믿는 것 같은데 감화를 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최근 뉴스에 대만의 한 젊은 여성은 남자 친구와 사귀기 위해 체중을 무려 100㎏이나 감량했다고 합니다. 그 여성은 키는 155㎝인데 체중은 148㎏나 나가 아무도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자 체중 감량을 결심하고 노력한 결과 무려 100㎏를 감량했다는 것입니다. 148㎏ 중 48㎏만 감량했어도 대단할 텐데 100kg을 감량했던 것입니다. 남자 친구를 감동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신앙의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 받는 사람의 수가 날로 늘어나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축복 받아 화려하게 산다 해도 죄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감화력 있는 삶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풍부함이 있다 할지라도 청빈의 모범이 되면서 가족과 친척과 이웃을 돌보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내 가족과 친척과 이웃을 전도하지 못했다면 내 삶이 건장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혹시 가족이 예수 믿지 않는다면 나를 더 변화시키고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변화되어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끊으시고 도박도 하지 않고 싸움도 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여 가족을 부양하고 돕고 사랑하면서 전도하면 가족이 믿게 됩니다. 라합의 위대한 점은 가족을 다 전도했다는 것입니다. 백부장 고넬료의 위대한 점도 가족과 군대를 전도한 것입니다. 왕의 신하와 같이 감화력 있는 믿음을 갖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표적을 믿는 것도 믿음입니다. 표적을 보고서라도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그러나 더 나아가 표적이 없어도 말씀을 믿는 신앙을 갖길 바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감화를 주는 믿음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왕이 신하와 같이 병 고침 받고 영혼이 잘 되고 가족이 구원 받고 범사가 잘 되는 은혜가 여러분께 넘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