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능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
권능이 나타나지 않은 이유 (막 6:1-6)
이 시간에 “권능이 나타나지 않은 이유”라는 제목입니다. 우리에게도 능력이 많이 나타났으면 좋겠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크신 도움을 내가 입고 또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니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능력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권능이 나타나야 정상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 하셨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오늘 말씀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본문은 주님이 고향에서 전도하실 때의 일입니다. 주님의 고향이 어디일까요? 주님이 자라신 고향은 나사렛입니다. 우리 주님도 고향을 사랑하셔서 고향에 가셔서 메시아의 표적을 보이시며 전도하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니까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곳에서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소수의 병인에게만 안수하여 고치시더라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행하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은 전능하신데 왜 그랬을까요? 이것은 우리에게도 귀한 교훈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권능을 행하실 수 없었던 이유는?
1. 사람들이 호기심에서 그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2절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뇨 이 사람의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 됨이뇨” 예수님께서 나사렛에서 말씀하실 때 고향 사람들은 그 말씀의 권세와 손으로 행하시는 능력을 보고 놀랐습니다. 한 번도 그런 은혜로운 말씀과 권능 있는 일들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호기심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우리와 함께 자랐던 저 예수가 도대체 어디서 저런 지혜를 얻었을까? 그리고 가버나움에서 많은 기적을 행했다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하고 마음속에 의문만 가졌습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나갔더라면 됐을 姆?더 이상 나가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당시 메시아의 표적이었기 조금만 말씀을 유의했더라면 충분히 더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호기심은 본래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입니다. 호기심 때문에 과학이 발달하고 호기심 때문에 예술이 발달하고 호기심 때문에 문화가 발달합니다. 호기심이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때도 있지만 생산적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도 호기심도 필요합니다. 대체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성령님은 어떤 분인가? 성경은 진리인가? 나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가? 천국은 과연 있는가? 어떻게 구원 받는 것인가? 어떻게 능력 받는 것인가? 이 호기심이 없이 어떻게 참된 진리를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고향사람들의 문제는 이 호기심에서 그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더 나가야 하는데 더 나가서 저 예수가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데 호기심에서 그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진리는 아무리 교회가 좋고 교인들이 좋고 신앙생활이 좋게 보이고 하나님이 좋게 보여도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나의 중심에 모셔 들이지 않으면 주님은 나에게 아무 것도 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구원 받지 못합니까? 왜 능력이 없습니까? 왜 승리가 없습니까?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지 못하거나 믿는다면서도 아직도 내 중심으로 살아 나의 중심 가운데 모셔 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보세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 보세요. 주님은 우리에게 권능을 나타내시게 될 것입니다.
2. 사람들이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절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나사렛 사람들이 회당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냐?”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편견에 아주 익숙해 있었던 것입니다. 나사렛에서 함께 자란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 예수라는 사실 밖에는 더 이상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성경 말씀에 서야지 나의 견해에 서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가장 방해하는 것이 내 인간의 편견입니다. “나는 안 될 거야. 나는 할 수 없어. 나는 복이 없어. 나에게 무슨 놀라운 일이 일어날까? 우리는 할 수 없어” 이렇게 하나님을 기대하지 못하는 믿음이라면 결코 하나님의 기적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이 함께 하시니 놀라운 사람이야. 나는 예수 안에서 하늘에 앉은 영광과 권능 받은 사람이야. 하나님은 나를 독생자까지 주시면서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나에게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날 줄 믿어. 나에게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을 거야” 이렇게 믿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기적이 나타나게 됩니다.
어느 성도는 제 손을 잡으려고 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 손만 잡아도 마음이 시원해진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차를 태워드렸더니 목사님의 차만 타도 몸과 마음이 시원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님은 아주 쎈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더 세지 못해서 죄송하지만 우리 성도는 모두 쎈 사람입니다. 말하면 말한 대로 이루어지고 생각하면 생각한대로 이루어지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역사하는 기적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모든 약속은 다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배우고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내 생각과 말이 변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더 풍성한 영적 삶을 영위하려면 우리 생각을 수없이 성경에 입각하여 바꾸어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큰 역사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내 생각부터 변화시키시기 바랍니다. 편견은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왜 나사렛 땅에 하나님의 기적이 없었을까요? 그 이유는 육신적인 것에 매여 편견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3.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5-6절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뿐이었고 저희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왜 이상히 여기셨을까요? 예수를 메시아로 믿을 수밖에 없는 수많은 표적을 보았음에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도 믿지 않으면 역사해 주시지 않습니다.
미국의 한 교회에서 목사가 설교하기 전에 지갑에서 20$짜리 상품권을 꺼내서는 원하는 사람은 가지고 가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한동안 침묵이 흐르고 아무도 나와서 가지고 가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한 어린 아이가 나와서는 그 상품권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그 아이가 그 상품권을 갖게 된 이유를 이야기했습니다.
“이 아이가 상품권을 가진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먼저는 상품권이 실제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목사가 정말로 상품권을 주기를 원한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또 주셔도 다시 달라고 하지 않을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아이는 내 말을 듣고 나왔기 때문에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라는 말씀입니다. 이 상품권 한 장도 믿음 없이는 내 것 삼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의사를 믿고 수술대에 몸을 맡기고, 이발사를 믿고 이발소에 가서 면도를 하고, 은행을 믿고 돈을 맡기고, 땅이 안 꺼질 줄 믿고 발을 힘차게 내딛는 것과 같이 하나님을 의심 없이 믿어야 합니다. 기도했으면 하나님이 들으셨다고 믿고 안심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5장을 보면 중풍병자를 지붕을 뚫고 내려서 예수님께 고침 받은 사건이 나오는데 믿음 없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을 대접하는 최고는 무엇보다 믿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11: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습니다.
여러분 오해 받는 싫지요? 저도 오해 받는 것은 싫습니다. 오랜 세월 겪었으면 다 알 텐데 왜 오해합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십니다. 하나님도 자기를 믿지 못하고 오해하고 불평하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안 되도 그래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넘어져도 그래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경을 믿습니다. 하는 믿음에 서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나사렛 삶들은 믿을 만한 이유를 발견하고도 편견에 사로잡혀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더 이상 권능을 행하실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을 나의 구주로 나의 왕으로 믿고 겸손히 순복하시기 바랍니다. 편견을 버리고 진리로 생각을 변화시키시기 바랍니다. 온전한 믿음에 서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놀라운 권능으로 함께 하시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