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 7세기 예언자

주전 7세기 예언자

 

1. 스바냐

 1) 구조
 1장 ~ 2:3 유다왕국에 대한 심판의 말씀
 2:4 ~ 2장 끝 이방 외국에 대한 심판의 말씀
 3:1 ~ 8  심판의 말씀
 3:9 ~ 3장 끝 희망의 말씀

 

 2) 스바냐의 활동과 말씀
  ① 활동연대
스바냐는 유다왕국의 요시아 왕 때 활동하였다. 그가 준엄하게 종교적 부패를 공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요시야 왕이 일으켰던 종교개혁(B.C. 621) 이전에 활동한 것으로 생각된다.

 

  ② 활동지역 :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③ 개인적 배경
스바냐의 족보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었더라”(1:1). 구약 예언자 가운데 이렇게 상세한 족보가 기록된 사람은 스바냐 외에는 없다. 이러한 족보는, 스바냐의 4대조가 “히스기야”였다는 것을 밝히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 “히스기야”가 유다의 유명한 히스기야 왕을 말하는 것이냐에 대해서는 찬반의 논의가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견해는 그가 왕족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편이다.

 

  ④ 역사적 배경과 말씀
스바냐는 요시야 왕의 종고개혁 직전에 유다왕국의 종교상태가 극도로 문란해져서 혼합종교로까지 전락해 있던 시대에 활동하였다. 이러한 상태는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을 일으키게 하였고, 이것을 통해서 일시 종교적 부패가 정화되었었다.

 

스바냐 1:4-6

 

스바냐 3:1-3

 

이렇게 혼란된 종교적 상황을 향해서 스바냐는 “야훼의 날”을 선포하였다. 이 날은 하나님께서 정벌하시는 무서운 심판의 날이었다.

 

스바냐 1:14-18

 

과거의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와 주시는 날은 그들과 함께 싸워주시고, 그들을 구원해 주시는 승리와 기쁨의 날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야훼의 날”은 하나님의 진노가 발하는 심판의 날로 변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예언자들과 마찬가지로 스바냐도 심판의 말씀과함께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주었다(스바냐 3:9-20).

 

2. 나훔

 1) 구조
  1:1 ~ 8  하나님의 진노
  1:9 ~ 3장 끝 니느웨의 멸망

 

 2) 나훔의 활동과 말씀
  ① 활동연대
앗시리아 제국의 수도 니느웨가 함락되기 직전(B.C. 612)에 활동하였다.

 

  ② 활동지역 :유다 왕국

 

  ③ 개인적 배경
나훔은 엘고스 출신이었다. 이곳은 현재까지 미확인 지명이다.

 

  ④ 역사적 상황과 메시지
고대 근동세계를 제패하였던 앗시리아 제국의 세력도 영원히 계속되지 못하였다. 아수르바니팔 대왕(B.C. 668-627) 때의 전성기를 마지막으로 하여, 그가 죽은 후, 앗시리아 제국의 세력은 갑자기 몰락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612년 수도 니느웨는 바벨론 군대에게 함락되었고, 앗시리아 제국 시대는 끝을 맺게 되었다.

 

나훔의 메시지는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을 오랫동안 괴롭혀 왔던 앗시리아 제국이 몰락하는 것에 대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반응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나훔은 앗시리아 제국이 멸망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보았고, 임박한 니느웨의 조알을 선언하였다. 이렇게 나훔에서는 앗시리아 제국의 운명에 대한 말씀이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니느웨에 대한 중한 경고”라고 말로 시작하여(1:1), 앗시리아와 그 왕에 대한 조가로서 끝을 맺고 있다(3:18-19).

 

3. 하박국

 1) 구조
  1:1 ~ 2:5 하박국의 항의와 하나님의 응답
  2:6 ~ 2장 끝 하나님의 심판
  3장  하박국의 기도

 

 2) 하박국의 활동과 말씀
  ① 활동연대
앗시리아 제국 시대는 끝나고, 대신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대왕이 고대근동 세계의 통치자로 등장한 때 하박국은 활동하였다(B.C. 605).

 

  ② 활동지역 : 예루살렘

 

  ③ 개인적 배경
하박국의 개인적 배경에 대하여는 정확히 아는 바가 없다. 다만 예루살렘 성전과 관계있던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박국은 하나님께 항의하고 논쟁한 예언자였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과 씨름한 자”라고 불려지기도 한다.

 

  ④ 역사적 상황과 메시지
주전 612년 앗시리아 제국의 수도 니느웨는 함락되고, 이때부터 바벨론 제국시대로 전환되었다. 605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대왕은 갈그미스 전투에서 이집의 군대를 무찌름으로 명실공히 고대 근동 세계의 패권자가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대 변혁 속에서 예언자 하박국은 “하나님의 정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것을 두 가지 차원의 문제였다.

 

첫째, 사회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은 왜 “악인이 의인을 삼키는 데도 언제까지나 침묵을 지키시는가” 하는 문제였다.
다음은,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하나님은 왜 “악한 세력 바벨론을 일으켜 세워 하나님의 심판이 도구로 사용하시는가”하는 문제였다.

 

하박국의 항의와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의 대답이 주어졌다.

 

하박국 2:4

 

이것은 하박국의 메시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하박국의 마지막 장은 그의 찬양의 기도이며, 이 기도는 구약에서 가장 아름다운 감사의 노래로서 끝이 나고 있다.

 

하박국 3:17-18

 

4. 예레미야

 1) 예레미야의 구조
  ①  1장~25장 유다 죄에 대한 책망과 심판의 말씀
  ② 26장~29장 예레미야에 관한 전기적 기록 (=예레미야의 수난)
  ③ 30장~35장 희망의 말씀
     31:31-34 새 계약
  ④ 36장~45장 예레미야에 관한 전기적 기록 (=예레미야의 수난)
  ⑤ 46장~51장 이방 외국에 대한 심판의 말씀
  ⑥ 52장  유다왕국 멸망에 관한 역사적 기록 (=왕하 24:18~25장 끝)

 

 2) 예레미야의 활동과 말씀
  ① 활동연대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 13년 (B.C. 627)에 예언자로서 활동을 시작한다(1:1). 그는 유다왕국이 몰락해 가는 모든 과정을 목도하였고, 결국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게 짓밟히는 비극도 경험하였다. 유다 왕국이 멸망한 직후, 이집트로 망명하는 사람들에게 반강제로 끌려가서 그곳에서 최후를 마친다(B.C. 587, 렘44장). 그는 유다 왕국이 몰락해 가는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40년간 예언자로 활동하였다(627~587).

 

  ② 활동장소
예루살렘, 최후는 이집트

 

  ③ 개인적 배경
예레미야는 아나돗의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나돗의 제사장 가문은, 솔로몬 왕 때 귀향 당했던 제사장 아비아달의 후손들이었다(왕상 2:26-28).

예레미야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었고, 즐거움이 없는 외로운 삶은 자체가 “예언자의 상징적 행동”이었다(렘45장).

그의 옆에는 제자 겸 비서였던 바룩이 있어서 그의 활동을 돕고 그의 말을 받아 기록하였다(렘45장).

 

  ④ 역사적 상황과 메시지
예레미야의 생애와 활동은 다음의 4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a. 요시야 왕 시기 (627-621)
요시야는 유다 역사상 가장 의로운 왕 중의 한 사람이었고 예레미야도 그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렘 22:15 이하). 예레미야가 이 기간동안에 활동했던 기록은 많지 않다.

 

   b. 여호야김 왕 시기 (621-597)
여호야김 왕의 등장과 함께 요시야 왕이 이루었던 종교개혁은 무효로 돌아가고, 다시 종교적 사회적 혼란이 심해진다. 이 기간동안 예레미야는 그가 전한 말씀 때문에 불의한 자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다(렘 18:18이하, 11:18이하).

 

   c. 시드기야 왕 시기 (597-587)
이 기간은 유다왕국이 멸망하기 직전의 운명적인 기간이었다. 이 기간동안 유다 조정에서는 당시의 유다의 지배자였던 바벨론 제국에 항거하려는 여러 가지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세력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임을 확신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힘을 사용하여 죄많은 유다 왕국을 징벌하시는 것이라고 선포하였고, 바벨론 세력에 대항한 일체의 항거운동을 반대하였다. 에레미야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대왕을 “하나님의 종”이라고까지 불렀다(렘 27:6). 유다 조정의 국수주의자들에게는 이러한 예레미야의 말씀은 반역자의 말로 생각되었고, 예레미야는 반역죄로 몰려 투옥되기도 하였다(렘 37장).

 

   d. 유다 왕국 멸망 이후 (587)
예레미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드기야 왕은 이집트의 원조를 기대하고 바벨론에게 반항하였다. 그 결과 바벨론의 군대는 예루살렘에 쳐들어 오게 되었고, 결국 유다 왕국은 멸망하게 되었다(렘 39장, 52장)

 

유다 왕국이 몰락한 후,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 머물러서 하나님의 채찍을 받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일단의 “망명파”들은 예레미야와 그의 비서 바룩을 억지로 끌고 애굽으로 내려갔다. 그 곳에서 마지막으로 예레미야는 그들이 당한 역사적 비극의 의미를 해석해 준다.

 

렘 44:22-23

 

이 마지막 설교를 끝으로, 눈물과 고독, 수난과 오해로 점철되었던 대 예언자의 생애는 끝난다.

 

예레미야 애가

 

“슬프다! 이 성(예루살렘)이여!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히 앉았는고… 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 ”
(애가 1:1-2)


애가는 주전 587년 바벨론 군대에게 예루살렘이 짓밟히고 성전이 불탄 것을 애도하는 조가이다. 전통적으로 애가의 저자는 예언자 예레미야로 생각되어 왔다. 그래서 한글개역성경도 “예레미야 애가”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애가의 저자라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문학적인 면에서 보면 애가는 1~4장까지는 소위 ‘알파벳 시’의 형태로 되어 있다. 즉 이 네 장은 모두가 매절의 첫 자음이 히브리어 자음 22자로 되어 있다. 이것을 번역 성경에 나타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