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열병

마음의 열병 (막 1:29-31)

이 시간에 “마음의 열병”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옛날 말로 열병이란 참으로 무서운 병입니다. 열병이란 정상체온에서 벗어나 39도 40도 이상 고열을 나타내는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들을 가리킵니다. 흔히 장티푸스 콜레라 페스트 같은 병이 대표적인데 이 병들은 심한 고열과 설사와 구토는 물론 높은 감염률로 인해 법정전염병으로 정해진 무서운 질병들입니다. 특히 페스트는 흑사병이라 해서 수많은 인류를 죽음에 몰아넣은 무서운 병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현대의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해 이제는 대부분 치료할 수 있는 병이 된 것은 퍽 다행스런 일입니다.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은 육신의 열병은 물론 마음의 열병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일로 말 못하는 가슴앓이 병이 바로 마음의 열병입니다. 어떤 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아들이 방을 얻는다고 돈을 부쳐 달라고 해서 부쳐주었더니 알고 보니 악성 다단계에 포섭 되어 단체생활하고 있다면서 한숨을 쉬면서 어찌하면 좋으냐는 것이었습니다. 이것도 마음의 열병입니다.

베드로의 장모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에 시몬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었는데 베드로의 장모는 육신의 열병은 물론 마음의 열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일과 가정밖에 모르던 사위가 예수라는 어떤 무명의 랍비를 만나더니 배와 그물은 물론 부친까지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 그 내막을 모르고서야 어찌 열병이 안 생길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갈릴리 회당에 오셔서 메시야로서 말씀과 기사와 이적을 행하신 후 베드로의 장모에게 찾아가셔서 다정하게 손을 잡고 일으켜 주셨습니다. 그랬더니 베드로의 장모는 깨끗하게 열병을 치료함을 받고 즉시 일어나 예수님께 수종을 들었습니다. 그가 수종을 들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육신의 병은 물론 마음의 병까지도 깨끗하게 치료함을 받은 것을 뜻합니다. 이처럼 혹시 말 못하는 마음의 열병으로 고통하고 계십니까? 이 시간에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신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을 깨끗하게 치료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사항을 알아야 합니다.

1. 예수님과 그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29절에 “회당에서 나와 곧 - 들어가시니” 그랬습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의 집이 회당과 가까운 것을 보여줍니다. 실재로 베드로의 집은 회당에서 불과 10-20미터밖에는 떨어져 있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온 갈릴리까지 퍼져나간 예수님의 권세와 말씀이 나타난 소식을 회당 가까이 사는 베드로의 장모가 듣지 않을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베드로의 장모는 예수라는 사람에 대해서 자기의 부정적인 생각을 바꾸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성경을 알면 마음의 열병은 다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모르기 때문에 방황하고 고민하고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입니다. 속죄의 복음을 모르기 때문에 죄로 인해 고민하는 것입니다. 시험을 만나도 피할 길을 주심을 모르기 때문에 절망하는 것입니다. 혹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기 때문에 만족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고 성경을 알고 묵상하는 사람처럼 행복한 사람은 없습니다.

사41:10에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신 말씀을 날마다 외우며 그 말씀에 서 보세요. 어찌 마음의 열병이 날 수 있겠습니까? 놀라운 기적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살면 형통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부인이 가정생활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이런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 너무 괴롭습니다. 저를 예수님 계신 하늘나라로 데려가주세요. 너무나 간절히 기도하니까 예수님이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그래 내가 네 소원을 들어 주마. 그런데 내가 너를 데려가기 전에 네가 해야 할 일이 몇 가지가 있구나.

네가 하늘나라 오면 장례식을 할 텐데 집안이 너무나 어지럽혀져 있는 것 같구나. 사람들이 왔을 때 이 사람이 끝까지 잘 정리하고 갔다는 소리를 듣도록 집안 청소 좀 할래? 예, 하겠습니다. 그래서 집안을 깨끗이 정돈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예수님이 저 정원 좀 보아라. 정원이 엉망이구나. 그래서 이 부인은 며칠 동안 열심히 땀을 흘려서 정원을 예쁘게 가꾸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또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그냥 떠난다면 네 자식들이 마음에 걸리지? 그러니까 우리 엄마가 우리를 정말 사랑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자식들에게 며칠간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의 표현을 해 봐라. 그래서 부인은 며칠 동안 자식들을 안아 주고 특식을 해주고 기도해 주고 온갖 사랑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또 다시 부탁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네 남편이 너의 속 썩인 것 내가 잘 안다. 그러나 내가 마지막 부탁인데 남편이 장례식하면서 참 그래도 좋은 여자였는데 이런 추억을 가질 수 있도록 사흘만, 꼭 사흘만, 남편이 뭐라 그래도 절대로 말대답 하지 말고 남편에게 할 수 있는 한 마지막 친절을 베풀어 보아라. 그래서 부인은 마지막 가는 판에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래서 부인은 이를 악물고 최선을 다 해서 남편을 섬겼습니다.

그렇게 하고 보니 집안은 잘 정돈되어 있었고 정원에서는 꽃이 피고 벌과 나비가 날아와 안고 나뭇가지에는 새들이 노래합니다. 온 가족이 행복한 모습으로 모여 앉아 웃음의 꽃이 피었습니다. 남편도 예전과는 태도가 다르게 부드러운 표정이었습니다. 이것을 본 부인은 기도가 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주님, 저를 부르지 마세요. 조금 더 살다가 하나님 나라에 가겠어요. 그랬다는 이야기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실천했더니 문제가 해결되고 만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실천할 때 해결 되지 않을 문제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진정 우리 하나님과 그 말씀의 약속을 깨닫고 순종하여 마음의 열병에서 놓임 받으시기 바랍니다.

2. 마음의 열병을 치료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30절에 “사람들이 곧 그의 일로 예수께 여짜온대” 그랬습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기도를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 앓아누운 것을 소상하게 알려드렸습니다. 이처럼 마음의 열병에 걸렸을 때 우리가 해야 할 것을 하나님 앞에 문제를 소상하게 아뢰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의 상담자에게 마음을 열어도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는데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면 왜 문제가 해결 되지 않겠습니까? 세상 상담학은 심리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상담은 실재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위로해주시고 사랑해 주실 것입니다.

성경에 한나도 마음의 열병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아들을 낳지 못해 남편의 첩 부닌나에게 모욕을 당하고 말할 수 없는 마음의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그 때 한나는 하나님 전에 나아와 마음을 쏟아 부르짖으며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치료해 주시고 불임증까지 치료해 주셔서 사무엘이라는 유명한 인물을 낳게 해 주셨습니다.

세상에 문제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 청년이 목사님을 찾아와서 상담하기를 문제없는 직장 하나 소개해 달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정말 아무 문제가 없고 조용한 곳을 가고 싶나요? 그렇다면 마침 생각나는 곳이 하나 있는데 차를 타고 가자고 해서 데리고 간 곳이 공동묘지였습니다. 여기만이 문제없는 곳일 뿐 문제없는 곳은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문제가 있어도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고 위로해주십니다.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기도할 때 문제도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미국의 훌러 신학교의 교회성장학 교수 피터 와그너는 한국 교회가 급성장한 이유를 기도에 있다고 정의했습니다. 교회마다 기도원마다 기도하는 사람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1990년에 들어서부터 기도하는 곳에 사람들이 모이지 않기 시작하자 교회성장이 멈추게 되었고 대신 무속과 불교가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번성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되지 않습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 한 가지 알려드립니다. 기도하는 개인과 교회는 영원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21세기에 가장 희망 있는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애통할 일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애통할 일이 해결 됩니다.

3. 마음의 열병을 없애려면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또 주님이 하신 일은 31절에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신 일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장모의 소식을 듣고 다가가셔서 권능의 손으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셨습니다. 그냥 일어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손만 잡으신 것도 아닙니다. 손을 잡아 일으키셨습니다. 보통 손으로 잡으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권능의 손으로 붙잡아 일으키셨습니다.

이처럼 우리 영혼에도 주님의 능력이 임해야합니다. 능력을 받지 않으니까 자꾸 약해지고 상처투성이가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병이 들면 오해하지 않을 말도 오해해서 듣습니다. 같은 말도 자신의 귀에는 그렇게 말이 들려옵니다. 이런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모두가 괴롭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 아래 있으면 나쁜 말도 좋은 말로 들려옵니다. 절망을 보아도 희망을 봅니다. 어려운 일 당하면 더 용기가 생깁니다. 능력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핍박을 받으면 더 재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능력 받으면 죽음 앞에서도 두렵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은혜 속에서 강하라고 권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를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엡3:16)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초대교인들은 이 능력을 받았기 때문에 박해를 받아도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울지 않았습니다.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고 찬송하고 전도했습니다. 더욱 강해졌습니다. 왜 두렵습니까? 능력 받지 못해서입니다. 왜 마음의 열병이 생깁니까? 성령의 능력 받지 못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마음의 열병으로 고통당하고 있습니까? 주님은 이 고통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대신 고민하셨고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을 보세요. 말씀을 보세요. 기도하세요. 능력 받으세요. 그래서 이 시간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과 삶의 모든 문제를 깨끗이 해결해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