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적인 신앙

신약적인 신앙 (고후 3:3-6)

이 시간에 “신약적인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 인생을 영적으로 분류하면 크게 두 종류로 분류됩니다. 사도신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산자는 믿는 자이고 죽은 자는 불신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도 구약성도와 신약성도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를 사는 성도들도 구약적 신앙과 신약적 신앙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분명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믿는 신약시대의 성도이지만 아직도 구약적인 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신약에 주신 더 크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축복과 사명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 신약적인 신앙이란 어떤 것일까요?

1. 예수님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요 체험하며 사는 신앙입니다.

고후3:18에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찾아오셔서 나를 예수의 생명과 영광으로 완전히 변화시키는 이 축복은 신약의 성도들이 누리는 축복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메시야가 아직 오지 않으신 때기 때문에 메시야에 대해서 듣기만 하던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일1:1에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했습니다. 신약시대도 듣기도 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듣습니다. 열심히 들어야 합니다. 이 최소한의 은혜를 소홀히 하면 그는 불신앙으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듣는 데서 그치지 말고 직접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영접하고 기도함으로 체험하고 사랑함으로 더욱 연합하여 하나 되어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듣기만 하는 구약에 가까운 초보적인 신앙을 버리고 예수님과 연합하여 함께 사는 신약의 온전하고 참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 신약적 신앙이란 돌비의 삶이 아니요 심비의 삶입니다.

고후3:3에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했습니다. 돌비가 무엇입니까? 십계명입니다. 그럼 심비는 무엇입니까? 십계명의 핵심인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우리의 심비는 어떤 상태입니까? 십계명을 지킴으로 만족한 삶입니까? “나는 다른 신을 배척하고 하나님만 섬기며 우상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으며 주일을 지키고 살인과 간음도 도적질도 욕심도 거짓말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잘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이 십계명 정도의 수준은 우리가 지킬 최소한의 계명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십계명도 지켜져야 합니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는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신약에는 다른 신 섬기지 않는 것으로 다 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까지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까지 나가야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최소한 다른 신만 섬기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셨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성품과 목숨을 다해 사랑할 뿐 아니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뿐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범죄 하지 않기 위해서 참는 그 이상으로 적극적인 선이 흘러넘쳐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38-44)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에는 살인만 하지 않으면 됐습니다. 구약에는 행위로만 범죄 하지 않으면 됐습니다. 그러나 신약에는 우리 마음 중심으로 행하는 시대입니다. 미워함도 살인이고 음욕도 간음이요 욕심도 도적질입니다. 그만큼 신약 성도에게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겨우 하지 말라는 십계명 돌비로 만족하지 마시고 진실로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원수까지도 사랑하시는 신약의 아름다운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3. 신약적 신앙이란 제도나 규율을 넘어서 성령의 감동 속에서 더 충만히 살아가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2장에 놀라운 모습을 봅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행2:44-47) 꼭 천국의 한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신약입니다.

구약에는 물질생활이래야 겨우 십일조와 헌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십일조는 최소한의 반드시 드려야 할 의무이고 그 이상으로 사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눅11:42에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지니라” 하셨습니다. “이것도 행하고”라는 말씀 속에 십일조도 하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십일조는 최소한의 헌신이기 때문입니다. 이것마저 버린다면 하나님을 조금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구약의 십계명도 우리가 버릴 수 없는 최소한의 계명이듯 십일조 역시 하나님의 백성들이 갖는 최소한의 의무입니다. 최소한 이 의무만큼은 지켜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그 하한선에 머물지 않습니다. 성령의 감동 속에서 나의 것을 내 것이라 하지 않고 때로는 성령께서 강권하신다면 나의 것 전부라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구약에 제비뽑기 제도입니다. 제비뽑기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는 하나님 주권신앙과 분쟁을 막는 지혜로움이 가미된 좋은 제도입니다. 그런데 신약에서 더 좋은 것이 나타났습니다. 성령의 택하심과 감동입니다. 신약의 성도들은 구약처럼 모르고 뽑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뽑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결과에 오해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내가 되지 않는 것도 다 다른 뜻이 있기 때문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좋은 방법이 또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시대는 신약이지만 온갖 부정부패가 난무한 환경 속에서 영적 상태는 죄로 가득 찬 사람들이 투표하겠다고 하니까 온갖 문제가 난무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저리가고 금전이나 지연 나와 관계된 것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총회에서는 퇴보 같지만 성령강림 이전에 실시했던 제비뽑기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상태로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비뽑기는 신약적인 제도는 아니지만 그러나 그 이상으로 행함이 불가능하다면 돌아가야 할 규칙 가운데 가장 좋은 규칙이 바로 제비뽑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간절히 원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와 같이 제비뽑기 없이도 모두가 성령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그런 시대가 오기를 간절히 희망해 봅니다.

주일 개념 역시 그렇습니다. 구약에는 안식일 하루만 잘 지키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매일 매일이 다 주일이고 다 예수 안의 안식일입니다. 그래서 롬14:5에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주일로 지키는데 알고 보면 모든 날이 다 주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루만이 아니라 매일 예배하며 사는 거룩한 생활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주간 중 주일 하루를 지키는 것은 이 역시 최소한의 의무입니다. 이것마저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것도 지키지 못하면서 모든 날을 주일로 지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약 성도라면 거기에 머물지 말고 모든 날을 거룩하게 지키는 생활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은 구약적입니까? 신약적입니까? 구약에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완악하여서 최소한의 것만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것은 물론 우리가 더욱 풍성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 잘 믿고 성령으로 순종하여 더욱 충만하여 온전하고 풍성한 신약적인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