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가운 데로 행하라

빛 가운데로 행하라 (요일 1:5-10)

이 시간에 “빛 가운데로 행하라”는 제목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진정 변화 받고 사랑 받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우리가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빛이 우리를 회개케하여 온전케 하여 줄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는 죄라는 말입니다. 죄라는 말은 재판정에서나 교도소에서나 일부 쓰이고 있을 뿐 종일 방송을 들어도 죄라는 용어를 듣기 어렵습니다. 죄 많은 동네에서 죄 이야기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그만큼 이 사회에 죄로 만연해 있고 회개에 무관심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영국의 어떤 심리학자는 “현대인들은 더 이상 죄책으로 말미암아 괴로워하지 않는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 “죄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가?”하는 것처럼 중요한 주제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불행은 아담으로부터 범한 원죄와 자신이 범한 자범죄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원인이 있다고 할지라도 근원을 따져 보면 죄의 결과입니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해결의 실마리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죄가 불행의 원인이라면 죄의 문제를 해결하면 불행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해결에 대하여 극단적인 두 주장이 있습니다. 소위 구원파에서는 성도는 영원한 죄사함을 받았으니 범죄해도 회개할 필요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다만 속죄의 복음을 인정하는 것이 죄에 대한 처방의 전부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속죄의 복음을 강조한 나머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나 성화적 회개를 무시한 이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가톨릭의 경우 오직 교회만이 모든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세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제 앞에 죄를 고백하는 고해성사를 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자백해야지 고해성사로 죄의 문제가 해결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증거로 가장 영적으로 낙후 되고 죄 가운데 방황하는 적당주의가 바로 가톨릭입니다.

영구불변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또 인정해야 할 것은 아직은 여전히 넘어지고 쓰러지고 있는 자신의 모습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미와 아직의 중간기에서 이미 예수 안에서 의롭게 되었지만 체험적으로는 이제 그 구원을 누림에서 자라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나아가서 새롭게 됨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빛 가운데는 약 세 가지 면이 있습니다.

1. 진실의 빛입니다.

8-10절에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 하니라” 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현재 상태를 인정하는 진실의 빛을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의롭다 함을 받았지만 현재적으로 아직 자신에게 죄악이 존재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사탄 앞에서는 예수의 의를 힘입어 강하게 우리의 의로움을 주장해야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나의 덜됨을 겸손히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인정치 않으면 그 사람은 거짓말하는 어둠 가운데 있는 자입니다. 외식자 바리새인이나 더 나아가 자기를 미화하여 미혹하는 이단과 거짓선지자가 그렇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는 자로서 새롭게 될 희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성전에서 기도하던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자기를 이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바리새인이요, 한 사람은 죄인이라고 자신을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세리였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의로움만 드런 바리새인의 기도는 하나님께 가납 되지 못하였지만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던 세리는 가납 되어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외식자는 결코 돕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아직도 변화되어야 할 부분이 많음을 하나님 앞에 겸손히 인정하고 은혜를 갈망해야 합니다. 이 진실의 빛에 나아가는 사람이 소망이 있습니다.


2. 성경의 빛이 있습니다.

7절에 “빛 가운데 행하면” 그랬는데 이 빛은 전후 문맥으로 보아 진리 즉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행하는 것을 뜻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통 빛이기 때문입니다. 이 성경의 빛은 우리를 온전케 해줍니다. 그래서 시119:105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했습니다. 딤후3:16-17에도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직 죄악 가운데 살고 있는 사람은 지적할 것이 너무 많아서 개별적으로 지적할 수 없습니다. 이럴 때는 그냥 성경을 보면서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수준에 들어온 성도에게는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죄가 있습니다. 그 죄를 예언 사역자나 혹은 성령께서 직접 깨닫게 해주시기도 합니다. 이 때 나와 해당 되지 않는 말씀 같아서 거부감이 생길 때도 있지만 그 지적이 성령께서 하신 것이 분명하다면 기도하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틀림없는 지적이 됩니다. 그러므로 용기 있게 지적해 준 지체들의 존재를 감사해야 합니다. 이 죄의 문제가 해결 될 때 우리의 문제도 아울러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책망도 빛입니다. 엡5:13에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빛 되신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할 때는 자신이 상당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의 빛 앞에서 자신을 비추어 보면 얼마나 추한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빛 가운데 나아가려면 성경 진리 가운데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성경을 보라는 말씀입니다. 그 때 오순절에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사람들처럼 회개하게 됩니다.

3. 성령의 빛이 있습니다.

5절에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죄는 다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신학에서는 성령의 조명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드러나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회개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의 빛이 사울에게 나타나실 때 사울은 그 빛 아래서 꼬꾸라져 회개하고 바울로 변화되었습니다. 이사야도 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회개하여 정결케 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빛의 하나님 앞에 기도로 더욱 나아가야 합니다.

중국에 파송된 어느 여선교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이 선교사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기도하는 선교사였습니다. 선교지에 들어갈 때마다 금식하며 기도로 무장하는 선교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는 것을 가지고 사역지에 들어가는 선교사였습니다. 그런 그녀가 골수암에 걸렸습니다. 뼈 속에 암이 자라니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숨이 막히는 무더운 날씨에 퉁퉁 부어오른 다리를 질질 끌고 걸을 때마다 톱으로 켜는 듯한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고 낮아질대로 낮아져 온갖 섬김을 다했고 많은 환자들을 치유시킨 경험이 있었기에 왜 나에게 이런 질병이 찾아왔는지 온갖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그 때 그녀는 “주님, 이제 저의 중국선교사명이 끝났습니까?”라고 여쭈었습니다. 하나님은 “네 사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아직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지 않는다는 말씀이구나 하면서 그 말씀을 붙들고 투병을 결심했지만 그녀에게 계속하여 드러나는 것은 계속 되는 고통 속에 연약해지는 믿음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그 선교사는 “아버지, 중국에 들어가 사역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저를 고쳐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는데 “내가 너를 고치리라.”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얼마나 반가운 음성입니까?

그러나 날이 가도 치료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가서 통증과 싸우며 울부짖어 기도하는데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가 교만하다.” 그는 깜짝 놀라 “아니 하나님, 지금까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는데 무엇이 교만하다는 것인가요?”라고 하자 하나님은 10년의 사역 기간에 사람들에게 받았던 많은 격려와 칭찬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전적으로 드리지 못한 장면들을 영화필름이 돌아가는 것처럼 생각나게 해주셨습니다. 그녀가 한 번도 죄로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들이었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이 어쩌면 그렇게 사역을 잘하느냐고 칭찬할 때마다 “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고 저는 그냥 쓰임을 받는 도구임에 감사할 뿐”이라고 진심으로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녀의 심령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는 그 칭찬을 당연하게 받아드리는 것을 보여주시면서 그것이 교만한 죄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치던 그 선교사에게 하나님께서는 치료의 광선을 발하여 주셨습니다. 회개기도를 계속하던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치유를 주셔서 다시 중국으로 들어가 선교사역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이 선교사가 죄를 발견한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빛입니다. 이 빛은 우리에게 깨닫는 은총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빛 가운데 나아가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늘 기도로서 나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빛 가운데로 행하면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깨끗케 해 주셔서 온전케 하여 줍니다. 우리가 사는 길은 빛 가운데로 행하는 길입니다. 인류의 불행을 가져온 죄악 이 불행을 해결하는 것은 죄를 버리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이루신 복음을 믿을 뿐 아니라 더욱 빛이신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말씀으로 기도로 나아가 온전히 해결 받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