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님이 오시면

부활의 주님이 오시면 (요 20:19-29)

이 시간에 “부활의 주님이 오시면”이라는 제목입니다. 우리 주님이 다시 사신 부활은 우리의 최고의 기쁨이요 우리 기독교의 최고의 기쁨입니다. 세상 어디에 죽은 자가 다시 살았다는 말이 있습니까? 더구나 다시 산 사람이 영원히 살아있는 일이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사셔서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 사실은 어느 종교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기독교만이 참 종교임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세상 모든 종교들은 자기 교주의 무덤을 자랑하며 온갖 것으로 치장합니다. 그러나 지금 성지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에 세운 성묘교회당 안에 예수님의 기념 묘소에는 예수님의 시신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텅 빈 무덤일 뿐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흔히 기독교를 가리켜 빈 무덤의 종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빈 무덤이 우리의 최고의 자랑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리스도의 부활이 놀라운 사건일지라도 우리와 상관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우리가 주님의 부활하심을 기뻐하는 것은 바로 주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능력이 우리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부활시키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은 이 축복은 부활하신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셔야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충만히 임하시기를 늘 사모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원수들이 두려워 숨어있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오신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냥 오시지 않고 많은 은혜와 복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 시간에도 각인에게 부활의 주님이 오시면 이와 동일한 은혜를 가지고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부활의 주님이 찾아오시면 어떤 은혜를 주실까요?

1.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시면 평안의 은혜를 주십니다.

19절에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서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평안이었습니다. 시시각각으로 위험이 닥쳐오고 있었습니다. 어느 때에 유대인들의 습격을 받아 체포당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이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평안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이 찾아오시면 평안이 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평안을 축복하실 때 제자들 중심에 서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이 평안이 완전한 평안임을 보여주심입니다. 이 평안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내 중심의 평안이요 세상이 주는 그런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평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요14:27)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기쁨이 오는 그런 주님의 평안입니다. 예수님이 누리시는 그 평안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2. 부활의 주님이 찾아오시면 성령을 주십니다.

22절 말씀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왜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을까요? 호흡은 생명인데 성령은 우리에게 생명보다 더 귀하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얼마나 귀한지 아십니까? 성령이 오셔야 믿음이 생기고, 성령이 오셔야 예수님을 주로 믿고, 성령이 오셔야 중생하여 새 생명을 얻고, 성령이 오셔야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고, 성령이 오셔야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 받고, 성령이 오셔야 천국의 소망으로 살게 되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령님을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행2:33에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주셨느니라” 했습니다. 딛3:6에도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 그랬습니다. 그래서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영원히 나오신다는 것이 정통교회의 고백입니다.

그런데 예수 없는 곳에는 성령도 없어요. 예수를 부정하는 사람에게는 성령님이 오시지 않아요. 예수님을 나의 주로 시인하고 영접한 그 심령에만 성령께서 임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가고 예수님을 사랑하며 희생할 때 성령께서 강하게 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높이고 왕 삼아야 합니다. 그 발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이처럼 부활의 주님이 임하시면 성령을 충만히 받습니다.

3.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시면 죄 사함의 권세를 주십니다.

본문 23절에 부활하신 주님은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이 구절을 난해한 구절이라고 합니다. 과연 죄 사함의 권세가 인간에게 있는가? 선언적인 것인가? 효과적인 것인가? 해석이 분분한 말씀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선언적인 견해를 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죄를 사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우리 안에 계신 주님께서 죄사하시는 권세를 계속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결코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서 죄사하시는 은총을 베푸십니다. 우리가 병 고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고치시듯 우리는 죄사하는 능력이 없지만 주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죄를 사해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는 자마다 변화 받게 됩니다. 이것이 믿는 자들에게 주님이 함께 하셔서 따르는 표적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이 많을수록 교회는 더 새로워지게 됩니다. 아직도 죄악이 존재합니까? 이 시간에 이사야의 악을 제하셨던 그 성령의 제단 숯불로 정결케 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4. 부활하신 주님이 오시면 의심을 몰아내주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났을 때 그 자리에 도마가 없었습니다. 도마는 주님이 살아 나타나셨다는 말씀을 들었지만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고 말했습니다.

이런 의심 많은 도마에게 주님은 나타나셔서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도마가 주님의 손의 못자국과 허리에 창자국을 만져보고는 그 앞에 엎드려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 말씀하셨습니다.

의심 많은 도마와 같은 사람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의심이 왜 생길까요? 도마는 주님이 오셨을 때 웬일인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은혜 받는 자리에 있지 않으면 도마와 같이 딴소리하는 것입니다. 주일날 하나님의 집에 있어야 할 성도들이 다른 곳에 있다면 도마 같이 됩니다. 더 깊은 진리를 설교하는 다른 시간에 참여하지 않아도 딴 소리를 해요. 주일 낮에는 대중설교를 하기 때문에 교리적인 깊은 진리는 가르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시간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러한 도마였지만 부활의 주님을 만나 확신을 가졌습니다. 이처럼 부활의 주님이 임하시면 의심을 몰아내주십니다. 나의 신앙고백이 확실한대도 주님이 믿어지지 않고 기도가 되지 않고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지고 의심이 있다면 무언가 영적으로 무언가 잘못이 있어서입니다. 진실로 복음에 설 뿐 아니라 회개하고 겸손하고 주님을 사모하면 주님이 함께 하셔서 믿음을 주십니다.

5. 부활의 주님이 찾아오시면 사명의 은혜를 받습니다.

21절에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하셨습니다. 그리고 행1:8에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사명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부활의 주님을 만날 때 사명을 받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다메섹에서 부활의 예수를 만나고 한 첫 기도가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행22:10)였습니다. 이제까지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다고 뛰어다니며 열심 냈지만 한 일은 결국 하나님의 일군들을 죽이고 교회 손해 내는 일만 했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 내는 열심은 기껏해야 그런 것입니다.

 

빌립보에서 귀신들려 점치던 사람이 바울을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고 바울 앞에서 외치던 점장이가 겉으로 보기에는 얼마나 하나님의 일을 돕는 사람입니까? 그러나 그 안에 어떤 영이 있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성령의 지배를 받지 못한 활동은 옳은 일 같아도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방해꾼밖에는 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시면 평안의 은혜를 주십니다. 성령의 충만을 주십니다. 죄사함의 권세를 주십니다. 의심을 몰아내시고 믿음을 주십니다. 그리고 사명을 주십니다. 그래서 주님이 부활하신 것도 기쁘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가장 기쁨이 충만하신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