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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 밭 심령 (막 4:8) 오늘 말씀 듣기 전에 한 가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똑같은 교회에서 똑같은 하나님을 섬기며 또 같은 말씀을 가지고 신앙 생활하는데 어떤 사람은 성령의 열매가 맺혀 예수님을 닮은가하면 어떤 사람은 아직도 세상 것이 가득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은혜 충만한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은혜가 없고, 또 어떤 사람은 성경대로 이루어지는 삶을 사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응답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의 씨 뿌리는 비유가 바로 그 답을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바로 마음 밭에 차이가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에는 길가밭 돌짝밭 가시밭 옥토밭 등 네 종류의 밭이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말씀의 씨가 떨어졌을 때 오직 옥토밭만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농사의 비법은 토양관리에 있다고 합니다. 어떤 분이 선진지로 일본 농촌을 방문해서 농사의 비결을 물으니까 퇴비공장을 보여주더랍니다. 최고의 양질의 퇴비제조에 성공했을 때 그 해 농사는 성공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토양관리에 모든 성패가 달렸다는 말입니다. 우리 심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심령의 옥토만 되면 그 심령은 온갖 하나님의 아름다운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럼 심령의 옥토 밭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굳은 것을 제해야 합니다. 4절에 보니까 길가에 떨어진 씨는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습니다. 굳은 길바닥에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왜 길이 굳었을까요? 사람들이 밟고 다녀서입니다. 이처럼 그 마음에 온갖 세상의 이론과 자기주장으로 다져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未?생각이 더 현명한데 어찌 말씀이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옥토가 되려면 말씀과 다른 이론들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은 사모하지 않는 것도 굳은 마음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사모함이 없으면 말씀을 들으면서 다 흘려버리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단이 말씀을 빼앗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슴이 시냇물을 사모하듯이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면 옥토 밭의 1차 공사는 끝이 납니다. 2. 돌을 골라내야 합니다. 왜 돌을 골라내야 합니까? 돌밭에 떨어진 씨는 곧 싹이 나왔지만 해가 돋자 타져서 말라죽었기 때문입니다. 이 돌밭은 무엇인가? 감정만 있는 신앙입니다. 감정은 꼭 필요합니다. 감정 없으면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이란 감정만이 아니라 지식도 의지도 필요합니다. 이런 성도들이 많습니다. 교회 나와서는 아멘 아멘하다가 세상에 나가면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서 갈 데 안갈 데 다가고 할 일 안할 일 다합니다. 그런데 돌밭이란 감정만이 아닙니다. 지정의 중에서 어느 한 가지만 없어도 역시 돌밭입니다.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그 토양에서는 싹이 나도 열매는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정의가 충만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지식의 충만을, 기도와 찬송을 통해서 감정의 충만을, 순종과 실천을 통해서 의지 충만해야 합니다. 다니엘처럼 생명 걸고 지킨 그 의지충만이 있길 바랍니다. 다윗처럼 여호와의 법궤 앞에서 덩실덩실 춤추던 그 감정충만도 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받은 계시가 커서 사단의 사자까지 붙여주셨던 바울의 지식충만이 있길 바랍니다. 3. 가시떨기를 뽑아내야 합니다. 가시가 무엇입니까? 18-19절을 보면 “이들은 말씀을 듣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라 하셨습니다. 가시덩굴이 더 성하면 곡식이 그 힘에 막혀 자랄 수 없습니다. 세상 염려와 재물의 욕심과 세상일락 등이 가시입니다. 이것 철저히 제초해야 열매 맺습니다. 식물을 보면 나중 자란 것은 먼저 자란 것에 치어서 못자라더군요. 이것은 저보다 여러분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죄악에 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염려와 근심과 일락에 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항상 배우나 참된 진리에 이를 수 없습니다. 버릴 것 버리고 신령한 욕심만 갖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4. 그럼 옥토란 무엇일까요? 막4:20에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마13:23에는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라 하셨습니다. 눅8:15에서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즉 말씀을 잘 듣고 받아들이고 깨달아서 어느 때나 그 말씀을 놓지 않고 지키는 인내의 믿음입니다. 창26장을 보면 이삭이 하나님께서 거하라는 그랄에 거하여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고 창대하고 왕성하여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랄땅은 박토입니다. 그래서 풍작일 경우 25-50배의 수확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삭은 100배를 거뒀습니다. 주석가 로빈슨은 \"그 당시 블레셋 땅의 조건과 다른 사람들의 수확량에 비교해 볼때 이삭의 100배는 파격적인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흉년 들어 어려워도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그랄을 떠나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을 잘 붙들고 끝까지 순종하면서 나아가는 옥토 밭 심령이 되어 말씀대로 열매를 맺는 100배의 결실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