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3대 원리

복음의 3대 원리 (고후 13:13)

우리가 복음이란 말씀을 늘 하는데 복음이란 무엇일까요? 복음(福音)이란 한문으로는 복된 소식인데 성경의 헬라어로는 “유앙겔리온” 즉 ‘좋은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왜 좋은 소식일까요? 그것은 영원히 죄악으로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 인생들이 멸망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게 되는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정확히 알려면 약 세 방향에서 알아야 합니다.

1. 성부 하나님의 방향입니다.

본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복음이에요. 이 사랑은 만세 전에 택해 주시고 불러 주신 사랑이요, 독생자까지도 아끼지 않으신 사랑입니다. 요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

이 아버지의 사랑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주신 사랑이요, 죄인을 죄 없다 하시는 사랑이요,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한다 하시는 사랑입니다. 롬5:8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씀 얼마나 기쁘고 복된 소식입니까? 그러므로 이 사랑의 복음에 확신 가지시고 더 이상 하나님 앞에 죄책으로 떨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사랑을 믿는 것이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영혼이 살고 기鳧?얻습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사랑의 사람이 될 때 율법적이지 않게 됩니다. 그래야 복음적인 사람이 됩니다. 복음적인 사람이란 사랑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율법적인 사람이란 바른 소리로 사람을 죽이는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사랑이 사라지고 이게 옳다 저게 옳다 다투기만 한다면 얼마나 삭막할까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 없어 서로 흠만 보고 질시한다면 그곳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복음적인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또 하나님의 그 사랑을 행하며 사는 것입니다.

2. 성자 예수님의 방향입니다.

또 본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랬습니다. 이 은혜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대속의 제물이 되어 주시고, 우리를 위해 사시고, 우리를 위해 승천하시고, 우리를 위해 성령을 보내시고, 우리를 위해 재림하실 그 은혜입니다. 이 은혜는 우리가 세상에 나기 전에 약 2,000년 전에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롬6:10-11에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고 예수와 함께 하늘에 앉아 영광스럽게 된 것을 믿어야 합니다. 질고도 주님이 짊어지셨습니다. 연약함도 지셨습니다. 저주도 주셨습니다. 두려움도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은혜를 받은 자로 자신을 여겨야 합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내가 이루기 위해서 발버둥 친다면 그것은 이교도들과 다름이 없는 자력신앙이요 율법적인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루어주신 것을 믿는 복음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이 사실을 믿지 못하면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어도 버림받았던 유대인들처럼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날마다 묵상해야 하는 것은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다음 중요한 또 한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없다면 우리가 믿는 복음은 실상이 아닌 허상에 지나고 말 것입니다. 세 번째는 무엇일까요?

3. 성령 하나님의 방향입니다.

본문에 “성령의 교통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교통\'이란 헬라어로 \'코이노니아\'인데 교통, 교제라는 뜻도 됩니다. 우리에게 이 성령의 교통이 없다면 우리 믿음은 허상에 지나고 맙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충만하게 임해야지 영이 막히는 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않거나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지 않거나 예배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거나 불순종하거나 포악하거나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 영이 막혀요. 혹은 너무 약하거나 형식적이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을 저해하는 요소를 부정해야 합니다.

성령의 임재가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성령이 없으면 복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항상 두려워 떨었는데 그것은 성령의 나타나심에 내가 방해자가 될까 해서였습니다. 우리가 가장 복음적이 되려면 성령 충만에 노력해야 합니다. 무늬만 복음이 아니라 진정한 복음의 능력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907년 평양에서 일어난 대 부흥운동을 기념하며 그 뜨거운 부흥이 이 땅에 다시 일어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당시 1907년은 일본이 정미7조약을 강압적으로 체결하여 조선의 경찰과 군대를 해산시키고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킨 비극적인 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를 사랑하셔서 이 땅에 부흥을 주셨습니다. 1907년 1월 2일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일어난 그 부흥운동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그 부흥이 그냥 온 것은 아닙니다. 그 부흥을 위해 수년 동안 부르짖고 기도한 기도의 준비가 밑바탕이 된 것입니다. 진정한 복음의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은 그야말로 복된 소식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십시다.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으십시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다. 그리고 이 사랑을 실천하고 전하여 복음의 사람이 되고 복음의 전도자가 되십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누리시는 가장 복되고 아름다운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