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에 나타난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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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예배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신약성서에 나타난 예배신학은 가장 중요한 주춧돌이 된다. 구약 예배와 기독교 예배의 관련성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약에 나타난 예배신학이 기독교 예배와 관련이 잇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신약성서에 나타난 예배신학을 밝히는데 있어서 한가지 장애는, 우리가 흔히 겪는 것처럼, 석의(exegesis)의 문제이다. 복음서, 특히 공관복음은 우리에게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알려주는 것의 유일한 자료이다. 하지만 이 복음서들은 신약성서 중 가장 오래된 문서가 아니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복음서들과, 우리가 가장 오래된 신약성서의 문서로 여기는 바울서신들은 그보다 전에 있었던 다른 자료들로부터 발전되어 왔을 가능성이 있다. 신약성서의 연대들이 거의 밝혀졌으며 신약성서와 관련된 이전 자료들에 대한 연구가 대부분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모든 주장을 만족시킬 만한 완전한 석의는 불가능해 보인다. 사실 신약성서에 나타난 예배신학도 역시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비록 불완전하지만, 모든 사람이 일반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자료를 중심으로 신약성서에 나타난 예배신학을 살펴보고자 한다.
공관복음과 사도행전에 나타난 예배신학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께서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으로 성전을 존경하셨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예수께서는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눅2:49)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성전을 가리켜 \"하나님의 집\"(마12:4, 눅6:4)이라고도 말씀하셨다. 또한 예수께서는 시편 48:2~3을 인용하시며 예루살렘을 \"큰 임금이신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도성\"(마5:35)이라고 말씀하셨다. 흥미로운 사실은 세 개의 공관복음 모두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셨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지만, 예수께서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거나 희생 제물을 드렸다는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마21:14-23, 막12:35, 눅19:47, 21:37).
도리어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께서 성전이 아닌 곳에서 홀로 기도하셨다 거나 비밀스럽게 기도하셨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막1:35, 6:46, 눅5:16, 6:12, 11:1). 또한 마태복음 역시 예수의 제자들 또한 그와 같이 행하였다는 점을 증언하고 있다(마 6:5-6). 예수는 자신을 \"성전보다 큰 이\"(마12:6)라고 인식하셨다는 점도 기억할만한 예수의 성전에 대한 태도이다.
예수의 진정한 성전에 대한 태도는 \'성전을 깨끗이 하신 일\'과 \'십자가형을 받게 되는 예수의 재판 과정\'에 아주 잘 나타나고 잇다. 예수께서 이사야56:7과 예례미야7:11을 인용하시면서 성전을 깨끗케 하신 것으로 미루어, 예수의 비판은 상인들과 돈을 바꿔 주는 사람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서기관과 제사장들에 대한 비판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어찌되었든, 예수께서는 성전과 성전의 제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다. 예수에게 있어서 성전은 더 이상 하나님의 집이 아니라 도둑의 소굴일 뿐이었다.
예수께서 산해드린 앞에서 재판을 받으신 기록이 마가복음에서 소개되고 있다(막14:55-64), 수많은 죄목들 가운데 예수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어떤 사람이 \"우리가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내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허물로, 손으로 짓지 않은 다른 성전을 사흘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58) 라고 말한 증언이었다. 결국 예수는 유대교의 가장 신성한 곳인 성전을 모독하였다는 죄목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사도행전에 나타나고 있는데, 바로 사도행전 5장과 6장에 나오는 스데반의 죽음이다. 스데반은 그의 증언에서 출애굽기32:4-6, 아모스5:25-27, 그리고 이사야6:1을 인용하면서 강력하게 성전 예배를 비판하였다. 결국 그는 예수께서 죽음에 처해진 것과 같은 이유로 즉각적으로 돌에 맞아 죽게 되는데, 죄목은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행6:14)라고 말하였다는 것이었다.
바울서신과 히브리서에 나타난 예배신학
구약성서의 헬라어 번역인 70인역(Septuagint)은 구약의 성전예배를 번역하면서 \'레이투르게인(leitourgein)이라는 용어를 173회 이상 사용하였다. 이 용어는 후에 liturgy(예배)라는 영어 단어의 근원어가 되는데, 어찌되었든 구약의 성전예배에 대한 적당한 헬라어 번역은 liitourgein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신약에서 leitourgein이하는 단어가 사용된 곳은 15회뿐이다. 누가복음에서 제사와 관련된 용어로 사용된 경우(눅 1:23)와 사도행전 13:2의 경우를 제외하고 leitourgein이하는 용어는 대부분 서신서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로마서에 3회, 고린도후서에 1회, 빌립보서에 2히, 히브리서에 7회).
이중에서 leitourgein을 예루살렘의 \'제사장적 역할\'을 지칭하는데 사용한 히브리서의 두 본문(히9:21, 10:11)과, \'천사들의 하나님을 위한 사역\'을 지칭하는데 사용한 본문(히1:7-14), 그리고 통치자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지칭하는데 사용한 로마서의 본문(롬13:6)을 제외한 나머지 본문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을 주는 leitourgein의 사용을 발견하게 된다.
로마서와 빌립보서의 두본문은 바울의 일(leitourgia of Paul, 롬15:16, 빌2:17)과 그리스도인의 일(leitourgia of Christians, 롬15:27, 빌2:30)을 묘사하면서 leitourgein 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또한 고린도후서의 본문에서 역사 그리스도인들의 일(leitourgia of Christians)을 묘사하고 히브리서의 본문에서도 역시 그리스도의 일(leitourgia of Christ)을 묘사하는데 leitourgein을 사용한다. 여기서 사용되는 leitourgiendml 뜻은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행하는 봉사의 일(work)을 뜻하는 것이다.
이상에서 사용된 leitourgein의 사용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예배와 관련하여 추론할 수 있다.
1. 그리스도야말로 새로운 성전의 주춧돌이다. 이새로운 성전은 손으로 지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살아있는 존재이다.
2. 그리스도는 새로운 거룩한 예배(leitourgos hagion)의 대제사장이다.
3. 그리스도의 예배(leitourgia)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다른 이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다.
4.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다른 이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줌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은 오직 한 분이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새로운 능력을 부여받는다.
5. 결국,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그리스도인의 예배(leitourgia of Christians)란 우리의 \'삶을 통하여 봉사\'(liturgy of life)하는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성전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의 제사장적인 삶을 강조하는 주제는 특별히 히브리서에 잘 나타나고 있다. 히브리서 10:22은 우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것을 권면한다. 물론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조건은 예수께서 그의 피를 뿌리심으로 단번에 희생제사를 완성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23~24절은 새로운 영적인 공동체에게 \"희생적인 예배\"가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나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결국 과거 희생제사와 예배의 자리가 새로운 영적인 공동체에게 있어서는 그들의 삶을 통한 봉사(liturgy of life)로 바뀌어진 것이다.
이러한 히브리서의 주제는 목회서신에서 다시 확인된다(딤전3:15, 딤후2:20-22, 딛 2:14등). 바울은 특히 여러 본문에서 그리스도인은 살아있는 성전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이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너희 몸을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의 것이 아니라\"(고전6:19).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후6:16)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한 봉사를 예배\"로 보는 바울의 견해는 로마서 12:1~15과 35에 가장 잘 나타나고 있다.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요한문서에 나타난 예배신학
크리스천 공동체를 새로운 성전으로 파악하는 예배신학이 바울서신과 히브리서를 통하여 발전되었다면, 이러한 신학이 가장 정교하게 표현되고 화려하게 꽃피운 곳은 요한문서이다. 공관복음에서 성전은 \"hieron\"혹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로 표현되고 있는데, 요한복음에서는 성전을 \"naos\", 혹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으로 표현된다.
요한복음의 첫 장에서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1:14)고 말한다. 이 구절을 주석 하면서 R. Brown은 그의 책 The Gospel According to John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서론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람들 가운데 거하셨다는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가 바로 이 지구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보여주는 새로운 장소이며 고대 성막의 대체(replacement)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Brown에 따르면 이러한 대체(replacement)라는 주제는 요한복음의 1장에서 10장까지의 중요한 주제이다.
2~4장에서 우리는 유대교 전통과 종교적 관점에 대한 대체(replacement)를 발견할 수 있다. 2장의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께서는 물을 사용하여 포도주를 만드신다. 여기서 유대인들이 보통 사용하던 포도주는 예수께서 만드신 포도주로 대체(replacement)된다. 같은 장에서 예수께서는 성전을 깨끗이 하시면서 보이는 성전이 아닌 새로운 성전의 대체(replacement)를 말씀하신다. 사실 성전을 깨끗이 하신 사건은 공관복음에 따르면 예수께서 공생애를 마치시기 직전에 행하신 것이었다. 하지만 요한복음은 역사적이기보다는 신학적인 의도를 가지고 이 사건을 복음서의 앞에 위치시켰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것을 대체(replace)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강조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3장에서 예수는 바리새파 사람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통하여서 유인의 종교적 전통을 대체하는 새로운 진리를 선포한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같은 장에서 예수님의 세례는 세례요한의 세례를 대체(replacement)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4장에서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시는 중에 예루살렘과 그리심산의 예배를 대체(Replacement)하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말씀하신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4:23).
5~10장은 유대교의 축재기간과 관련된 예수의 행동과 말씀이 대부분을 이룬다. 예수께서는 \"우리 조상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5:31)라고 말하는 무리들에게 \"하늘로부터 내래온 떡이라.\"(5:41, 51, 58)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도 광야의 만나는 생명의 빵으로 대체(replace)된다. 장막절 기간에 예수는 자신이 생명의 빛(8:12)이며 생명수(7:37)임을 말씀하셨다. 장막절은 참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새로운 빛과 새로운 생명수로 대체(replace)된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 주시면서 율법에 매여 있는 유대의 사람들에게 안식일의 참 의미를 회복(recover)할 것을 말씀하셨다(7:23). 또한 예수께서는 성전 봉헌절 행사가 예루살렘에서 있을 때에 \"너희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10:38)라고 말씀하시면서, 참 성전이 예수 자신으로 대체(replace)되었음을 증거하셨다.
결국 요한복음이 끊임없이 증거하는 것은, 성전의 희생은 새로운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대체(replace)되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과거의 모든 부적절한 종교적 관습과 절기를 대체하는 유일한 대안이다.
그렇다면 요한복음이 말하는 새로운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한 분이신가? R. Daly는 그의 책 The Origins of the Christian Doctrine of Sacrifice에서 새로운 성전으로서 예수의 의미는 요한복음 7:37~38에 잘 나타난다고 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요한복음 7:38은 우리에게 예수께서 참 성전이시며 그분만이 생명수의 근원이 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동시에, 우리가 그 음료를 마심으로 우리 또한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살아있는 음료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고 하였다. Daly는 이러한 관점에서 요한의 새 본문을 중시한다. 첫째, 요한복음 10:17 예수의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발적으로 이뤄졌다. 둘째, 요한복음 13:1~15절은 예수는 유월절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이하여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음을 보이셨으며, 동시에 제자들에게 같은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희생할 각오를 가질 것을 촉구하셨다. 셋째, 요한1서 3:16 :예수께서 제자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에 제자들 또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은 마땅한 것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Daly는 바울서신과 히브리서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희생과 그리스도인의 희생적인 삶을 기초로 하는 예배신학이 요한의 문서에서도 발견되고 있음을 증거하였다.
삶을 통해 봉사하는 예배신학(liturgy of life)
이상과 같은 신약성서의 여러 본문 연구를 통하여서 신약성서가 지향하는 예배신학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신약성서가 일관되게 증거하고 있는 것은 성전의 예배가 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대체(Replacement)되었다는 것이었다. 신약성서는 구약의 제사와 절기들과 종교적 관습들이 이제는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구약에 나오는 제사장 중심의 예배신학9priesthood-oriented theology of worship)은 더 이상 그리스도인들에게 의미가 없게 된 것이다. 인간은 이제 더 이상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하여 희생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단번에 모든 희생을 완성하셨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다른 사람을 위하여 우리의 삶을 나누어 주는 것(liturgy of life)이다.
자연히 인간의 삶을 강조하는 구약의 회중 중심의 예배신학(people-oriented theology of worship)이 신약의 예배신학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신약에 나타나는 예배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라는 기초(Base)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약에 나타난 회중 중심의 예배신학과 구별된다.
어떠한 면에서 신약에 나타난 예배신학(liturgy of life)은 구약에 나타났던 제사장 중심의 예배신학과 회중 중심의예배 신학을 예수 그리스도의희생이라는 연결점(connection point)을 가지고 재해석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꺼이 우리의 삶을 나누어 주는 것(liturgy of life)을 강조하는 예배신학이 자연적으로 강조하게 된 예식(worship service)은 무엇일까?
결국 이러한 신약성서의 예배신학은 참 성전이신 예수를 기념하고 재현하기 위한 예 예식을 발전시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성만찬이다. 성만찬을 통하여 초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희생을 상기하며, 또한 그분이 생명의 떡이며 생명의 음료임을 고백하고 상기하였다. 또한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그들도 생명의 떡과 음료를 마신 후에 세상을 향하여 그들의 삶을 나누어 주기 위해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성만찬 예식의 발전에 대하여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밝히겠지만, 성만찬 예식이 신약성서 이후로 기독교예배의 중심에 서기 된 이유가 바로 신약성서의 예배신학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