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쉼을 누리는 법
참된 쉼을 누리는 법 (마11:28-30)
(요약)
참된 쉼은 우리 인간의 한결같은 소망이다. 그럼 참 안식은 어떻게 오는 것일까? 그것은 참 안식의 주인이신 예수님께 오는 것이다. 구약의 안식일은 창조와 구원의 개념이었다. 이처럼 예수께로 오면 영혼이 새롭게 되고 죄악에서 구원 얻게 되어 참 안식이 주어진다. 그리고 참 안식을 위해 주님의 멍에를 함께 져야 한다. 이 멍에는 온전히 죽어지고 맡기는 십자가이니 가장 쉽고 가벼운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 늘 배우는 것이다. 주님을 배우고 주님의 삶을 배우고 주님의 말씀을 배워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다.
(설교)
이 시간에 “참된 쉼을 누리는 법”이라는 제목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항상 몸과 마음에 쉼이 있고 평안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이 세상에서는 참된 평안은 없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이 세상을 고해와 같다고 합니다. 그만큼 고달프고 쉼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참된 안식을 얻는 길을 성경은 가르쳐 줍니다.
그럼 참 안식은 어떻게 오는 것일까요?
1. 우리 주님께로 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여기 “수고하는 자”의 원문의 뜻은 “스스로 많은 일들을 하여 계속해서 피곤에 지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무거운 짐 진 자”는 “무거운 짐을 진 채 계속해서 지쳐 있는 자”를 말합니다. 우리 하나님께로만 오면 피곤할 필요가 없는데 사람들이 스스로 피곤을 자초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주님께 오면 참 안식이 있다는 것을 성경은 여러 가지 예표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구약의 안식일을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구약 안식일의 개념은 약 두 가지입니다. 먼저는 창조의 개념입니다. 출20:11에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이와같이 우리가 예수님께로 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안에서 창조해 주시기 때문에 안식이 옵니다. 엡2:10에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이 창조 받은 우리 사람은 피곤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로 오면 하늘이 무너져도 믿음으로 사는 우리 안의 신비한 새 사람이 만들어집니다.
또안식일의 다른 개념은 구원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해방 기념입니다. 신5:15에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이렇게 안식일의 개념은 예수 구원을 향해 발전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이처럼예수 안에는 이 구원의 개념과 실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로 오면 세상 애굽에서 구원 받기 때문에 세상의 죄와 사망과 저주로 인한 고통이 더 이상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로 와서 새 창조와 구원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이 아니었으면 몇 번이고 우울증에 걸렸을 것이라고 간증하는 것을 들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신다면 열 번이고 백 번이고 그러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2. 참 안식을 위해서 주님의 멍에를 함께 져야 합니다.
29절에우리 주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라 하셨습니다. 멍에를 지라니 무슨 말씀입니까? 멍에란 쟁기나 수레를 끌기 위해 동물의 목에 얹는 구부러진 막대기를 말합니다. 소를 길들여 보셨으면 알지만 소가 멍에 메기를 얼마나 싫어합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 멍에를 지라니 무슨 말입니까? 혹시 혹 떼려 왔다가 혹만 붙이는 것 아닐까요? 주님 십자가의 무게는 성인 몸무게 대략 2배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 지지 못하고 아래는 끌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분명히 30절에 말씀하시기를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하셨습니다. 가볍습니다. 왜 가벼울까요? 주님이 대신 지셨기 때문입니다. 가볍다는 것은 몇 kg쯤 일까요? 40kg 벼가마 무겁지요? 그럼 절반 20kg이면 어떻겠어요? 그러나 더 가벼운 것입니다. 1kg보다 1kg도 1g보다 더 가벼운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모든 것을 주님께 내려놓는 것입니다. 0g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말씀한 십자가는 자기를 내려놓는 가벼운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리고 쉽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쉬워서 쉽다고 하실까요? 가장 쉬운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것보다 달리는 것이 쉽고, 달리는 것보다 걷는 것이 쉽고, 걷는 것보다 앉아있는 것이 쉽고, 앉는 것보다 눕는 것이 더 쉽니다. 누워 자는 것보다 더 쉬운 것은 죽는 것입니다. 썬다씽이 천국의 성도들에게 죽음이란 어떤 것이냐고 물으니 아무 체험이 없는 것인데 졸린다고 합니다. 졸려서 자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날마다 몇 천 번이고 연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께 만사를 맡기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만큼 쉬운 것이 또 어디 있습니까? 사람들이 믿음이 없어서 염려하지 않을 것 가지고 염려하고 근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문제가 풀리지 않고 주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24시간마다 자는 죽음 훈련을 통해서 만사를 맡기고 사는 법을 가르치고 새 출발을 주시지만 어리석게도 인간은 일어나면 또 다시 문제를 걸머지고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벧전5:7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했습니다. 여기 “맡겨 버리라”는 원문의 의미는 한꺼번에 내던지라는 뜻입니다. 조금도 남겨놓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권고”란 ‘아우토 멜레아’라고 하는데 ‘염려가 그에게 있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이 문제는 내 문제가 아니고 주님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문제이므로 주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염려로 조금의 중압이라도 있으면 온전히 기도로서 “주님께서 책임져 주심을 믿습니다.” 하면서 나에게서 주님께로 떼어내는 작업을 하세요.
야곱 보세요. 자기가 염려하고 걱정하니 외삼촌 집에서 일해 주고 결혼하는데 통째로 14년을 바치고, 재산 마련 위해 7년, 전체 20여년의 세월을 바쳤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무거웠습니까? 그나마 마지막 순간에 외삼촌과 그 아들들이 야곱이 부자 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야곱을 해치고 재산과 가족까지 뺏으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모든 것을 맡기고 은혜로 살았던 이삭을 보세요. 이삭은 어련히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랴 하면서 맡기고 평안할 때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리브가로 책임져 주셨습니다. 안 맡기고 못 맡겨서 고달픈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주로 삼았으니 1g도 남기지 마시고 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평안함 가지시기 바랍니다. 갈2:20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했던 바울의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염려와 근심을 믿음으로 털어내는 작업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3. 주님께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멍에를 맨 짐승들이 서로 마음이 맞아야 힘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율법에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신22:10)라 했습니다. 한 멍에를 맨 두 마리의 짐승이 서로 뜻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면 얼마나 서로 목이 아프고 고달프겠습니까?
그러므로 배워야 합니다.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한 멍에 메신 예수님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겸손을 배우고 온유를 배우고 순종을 배우고 하나님을 사랑함을 배우고 섬김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3년 반 동안 예수님이 구주요 주님이신 것과 주님의 마음과 삶을 배웠습니다. 그 배운 대로 실행했기에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온 것입니다. 우리도 예배를 배우고 기도를 배우고 전도를 배우고 섬김을 배워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멍에만큼은 메야 한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이 편하면 시험이 옵니다. 이삭도 만사를 은혜에 맡겼지만 열심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 앞에 엎드려 묵상함이었습니다(창24:63). 신앙생활의 짐만은 내려놓아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배운 대로 순종하면 조금 힘들 것 같지만 성령의 풍성한 은혜가 임하여 독수리의 날개를 달아 자유롭게 세상을 날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과 순종을 통해서 주님의 안식에 들어간다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께로 오시기 바랍니다. 주님께로 와서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그 대신 주님의 삶을 배워 열심히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이것마저 벗어버린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로 와서 배워 순종함으로 능력과 쉼과 자유와 축복의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