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을 통해 주시는 은혜
시련을 통해서 주시는 은혜 (히 12:5-13)
(요약)
하나님의 자녀에게 뜻 없는 고통은 없다. 시련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변장된 축복이요 고귀한 선물이다. 그것은 시련을 통해서 거룩한 은혜에 들어가기 때문이며, 시련을 통해서 믿음이 바로 세워지고, 시련을 통해서 더욱 복종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즉 완악한 인생에게 시련은 꼭 필요한 훈련의 도구이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고 하였다. 성도가 시련을 하나님이 내신 은사로 여기고 기뻐할 때 비로소 가장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설교)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중에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누구보다 더 고난을 주시기를 주저하지 않으십니다. 왜 그럴까요? 진주가 그러하고 다이어몬드가 그러하듯 고난을 통해서 얻는 유익이 고난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가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편한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너무 편하면 복부비만이 와서 각종 질병에 노출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땀을 흘리고 수고하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건강을 얻게 됩니다. 이처럼 인생에 있어서 시련이란 하나님의 멋진 선물입니다. 왜냐하면 징계를 통하여 더욱 온전하고 의롭고 크신 평강으로 이끌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설교가 랠프 사크만은 사람이 고통 받는 이유를 네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첫째, 개인의 죄 때문에 고통이 온다. 주초나 마약 폭식 등 악습 때문에 고통당한다면 개인의 죄 때문이란 것입니다. 둘째, 집단적인 죄악 때문이라.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혹은 공공사회의 집단적인 죄로 무죄한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셋째, 실수로 말미암아 고통이 온다고 했습니다. 그러가 하면 불가항력적인 고통이 있습니다. 천재지변 등 자연의 재해로 인한 고통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인 것일 뿐 뜻 없이 받는 고통은 없다는 것이 성경의 결론입니다.
그럼, 시련이 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일까요?
1. 시련을 통해서 거룩한 은혜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10절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사람은 고난이 없으면 거룩하게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항상 체벌 문제가 도마에 오르지만 체벌 없는 교육은 한계가 있습니다. 성경은 체벌할 때 아이의 어리석음이 달아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도 사람이 말씀에서 순종하지 않으면 체벌하십니다. 그래서 본문 5~6절의 징계라는 원문을 보면 “꾸짖음, 교정, 징벌”을 뜻합니다. 그리고 \'거룩하심\'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본질적인 성품을 나타내는 것을 가리킵니다. 신 8:5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라.”고 말씀합니다.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옛날 우스 땅에 모든 복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가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갑자기 불행이 닥쳐왔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열 자녀가 대풍에 집이 무너져 죽고, 수천 마리나 되는 가축도 잃고, 자신의 건강마저 악창이 나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가 바로 욥입니다. 그러한 욥이 전화위복하여 갑절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언제였습니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때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련이 가져다 준 축복이었습니다.
바울에게도 항상 찔리는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이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던 것입니다(고후 12:9). 이처럼 우리가 잘못 되지 않도록 하심이 고난의 목적입니다.
2. 시련을 통해서 믿음이 바로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8절에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없다면 그는 서자이며 사생아입니다. 하나님의 참 자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서자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채찍이 없고 편안하기만 하다고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난이 없으면 상도 없어요. 성도는 고난을 통해서 옛사람이 죽고, 예수 안에서 새로워진 피조물로 살아, 영적인 사람이 되고 하늘에서 상 받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불신의 이스라엘에게 광야의 40년의 연단이 필요했습니다. 그 후에야 비로소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행14:22에 바울도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의 악한 속성 때문에 바른 신앙을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야곱도 고난의 학교에서 바른 신앙을 갖습니다. 야곱이 벧엘에 올라가지 않고 세겜에서 머물러 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고난을 주셨습니다. 자녀들의 실수로 더 이상 두려워 세겜에 머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17) 라고 말씀했습니다.
무조건 형통만 좋아하지 마세요. 기독교인이 성숙한 성도가 되려면 고난의 학교에서 4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합니다. 첫째 단계는 고난에 대해 불평하면서도 견디지 않으면 안 되는 필연적인 십자가를 배우는 단계요, 두 번째 단계는 고난이 힘들지만 자진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십자가 고난을 떠맡는 단계요, 세 번째 단계는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믿고 고난을 이기는 단계요, 마지막 네 번째 단계는 \"나는 고난을 겪을 필요가 있다\"라고 하면서 고난을 은혜로 여기는 단계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고난을 은혜로 여기는 이 단계를 거칠 때 비로소 참된 신앙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비엔나의 어느 음악교수가 노래를 잘 부르는 한 학생에 대해 \"이 학생은 칭찬할 만한 좋은 성대를 가지고 있소. 지금까지 그의 인생은 그에게 너무 친절했소. 어느 땐가 그에게 큰 시련이 닥쳐온다면 그는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성악가가 될 것이오.\"라고 말해 주었답니다. \"눈물의 빵을 먹어 보지 못한 사람과는 인생을 얘기하지 말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시련 없는 신앙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3.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께 더욱 복종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9절에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여기 “복종하다”는 뜻은 ‘귀를 기울인다, 따른다, 복종한다.’는 의미입니다. 군인들이 훈련을 받는 것은 철저한 복종심을 기르기 위해서 듯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해야 합니다.
티 피어슨이(1837~1911) 제지 공장을 견학했을 때 넝마주이들이 주어온 더럽고 낡은 종이조각들이 좋은 품질의 하얀 증권 용지로 변하는 것을 보고 매료되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끝에 쌓인 더러운 넝마 더미와 공정을 거치고 끝에 쌓인 깨끗하고 흠하나 없는 하얀 종이와는 얼마나 대조적인가! 더러운 넝마 조각들이 이렇게 새로운 모양으로 나타나기까지 얼마나 큰 시련을 겪는 것인가! 산산조각으로 찢기고 모든 때가 빠질 때까지 표백제로 표백되며, 되풀이해서 씻고 또 씻어 깨끗해짐이 마치 우리의 더러움이 하나님이 주시는 훈련을 통해 깨끗해지는 것과 어떻게 이렇게 같을 수가 있을까!” 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시련의 공장을 거친\' 하나님의 자녀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경에 시련을 거치지 않는 사람이 누굽니까? 하나님의 택한 백성 14만 4천은 모두 큰 환난 가운데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시련 없이 보석이 될 수 없듯 시현 없이 영광스런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성도를 기뻐하십니다. 순종은 전적인 항복입니다. 그래서 “순종하다”는 원문의 의미가 \"아래서 항복하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시련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생각과 의지와 주장과 목적을 포기하고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순종하는 겸손의 신앙을 만들어 줍니다. 그러므로 시련의 학교에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12절에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즉 더 충성하고 더 기도하고 더 바로 살고 더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도 우리 위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세상에 고난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당할 때 그 의미를 깨닫는 복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시련의 때에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죄를 회개하고 바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복종하시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