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깊이 예수님을 만나자

더 깊이 예수님을 만나자 (요19:23-25)

 

(요약)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을 죄수로 알고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러나 주님의 겉옷을 벗겨놓고 보니 놀랍게도 제사장 복이 나타났다. 이것이 주님의 속옷이 보여주는 진리의 비밀이다. 이처럼 예수님이 4대 성인 중 한 사람이 아니라 더 깊이 보는 눈이 필요하다. 제사장복은 주님이 제사장이심과 나아가 제물 자체이심을 보여준다. 이처럼 진정 예수님이 나의 구주시요 중보자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면 구원 받을 수 없다. 욥처럼 귀로 듣기만 하던 주님을 눈으로 보는 체험의 성도들이 되자.

 

 

(설교)

이번 수련회에 얼마나 은혜 받았습니까? 능력 받고 기쁨을 소유하고 사명감까지 받았다면 더 말할 것이 좋지만 우리가 결코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은 예수님이 바로 나의 생명의 구주시라는 확신입니다. 예수님의 공적생애가 거의 끝나 가실 무렵 예수님께서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그러자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그러자 주님은 다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 때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척舅甄蔑?그러자 주님께서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하시면서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3-19) 축복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주시라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성령으로 되는 것으로 영원히 변치 않는 나의 확신으로 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알아야 할 것은 지금 교회에 나오지만 아직도 많은 분들이 주님을 부르고 믿는다지만 아직 이 확신에 이르지 못한 분들도 있습니다. 야곱도 자기 조상들과 함께 있을 때 하나님을 배우고 섬기고 예배하며 살았지만 그가 진정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부르는 순간이 있었습니다(창33:20). 우리도 이제 신앙을 자립하여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사건이 있어야 합니다. 이 중생의 확신이 있을 때 여러분은 일생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참 신자로 자라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듣던 주님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필요합니다. 질문을 드리면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주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중세기에 유명한 화가가 성경을 연구하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달리신 모습을 그렸는데 놀랍게도 완전 나체의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고정관념으로서는 도저히 그 그림을 벽에 걸 수가 없어서 물었습니다. “왜 완전 나체로 그렸습니까?” 화가가 대답하였습니다. “성경대로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성경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군병들이 예수님의 겉옷은 물론 속옷까지 벗겼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되 더 깊이 보는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본문 23절에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했습니다. 이렇게 로마 군병 넷이서 예수님의 겉옷을 나누어 가진 다음에 속옷을 벗기려고 할 때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속옷이 보통 속옷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23절에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요한복음 원문에는 이 옷을 “키톤”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키톤이라는 말은 놀라운 단어입니다. 그것은 당시에 보기 드문 통으로 짠 옷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옷은 보통 사람이 입을 수 없고 오직 제사장들만이 특별히 입는 옷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역사가 요세프스도 이 옷은 제사장이 입는 옷이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시내산에서 이렇게 계시하셨습니다. 출39:1에 “청색 자색 홍색실로 성소에서 섬기기 위한 정교한 옷을 만들고 또 아론을 위한 거룩한 옷을 만들었더라.” 했는데 여기 “정교한 옷”이란 ‘쉐라드’라고 되어 있는데 바느질 자국이 없는 특별히 제조된 꿰매지 않은 옷을 가리킵니다. 이 옷을 우리 주님이 입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 옷은 구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가격으로 치면 너무나 비싼 옷이라 군병들도 나눌 수가 없었습니다. 통 채로 한 사람이 가져야 제 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럼 예수님이 키톤을 입으셨다는 사실은 무엇을 교훈할까요?

1. 예수님은 제사장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옷을 벗기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실로 통으로 짠 키톤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제사장이신 것을 보았습니다. 이 때 사람들은 여러 반응이 있었을 것입니다. 로마 병정들은 “야! 돈이 되겠다.” 일반 사람들은 말하였을 것입니다. “어! 제사장 옷을 입었네.” 그러나 영적인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다리를 놓으신 우리 제사장이시다.” 우리도 예수님이 보통 세계 4대 성인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이신 제사장이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히4:14에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했습니다. 히7:26에도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했습니다. 제사장은 라틴어로 ‘폰티텍스’라고 합니다. ‘폰티텍스’라는 말은 ‘다리는 놓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운명하실 때 성전의 지성소와 성소 사이를 막고 있는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키톤을 통해 예수님이 나의 중보자 구주이심을 확신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이 속옷은 또한 예수님이 속죄의 제물이심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제사장 옷은 제물을 다룰 때 입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옷을 입으셨다는 것은 그 순간 주님이 제사장으로 동시에 제물 또한 드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제사장이심과 동시에 제물이십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동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지만 예수님은 자기 몸을 제물 삼아 하나님 앞에 나가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일2:2에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했고, 히9:26에는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마20:28에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물이라는 사실은 내 죄를 담당하셨다는 사죄의 확신을 줍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천사가 한 영혼을 인도하여 하늘나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혼은 천사를 따라가면서 걱정만 하였습니다. “나같이 죄인이 감히 그 거룩한 나라에 어찌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저는 워낙 더럽고 죄가 많은 놈입니다.” 어느 덧 천국 문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그 영혼이 자신을 보니 아주 깨끗해져 있었습니다. 너무도 이상하여 물었습니다. “나는 죄 많은 사람인데 어떻게 이처럼 깨끗하게 되었지요?” 천사가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피로 다 덮으셨기 때문에 당신의 죄가 가려져서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영혼은 담대한 마음으로 천국에 들어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더 깊이 아십시다. 예수님을 아무리 불러도 바로 알고 그리고 나와 관계하여 알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부르고, 십자가에 못 박던 사람들이 발견한 것처럼 주님을 더 깊이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예수님은 제사장이요 제물로서 나의 중보자요 구주시요 내 죄를 사하신 분으로 알 뿐 아니라 더욱 확신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과 자유와 성령의 천국생활하시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