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지상 명령 즉 하나님의 복음 사역보다 더 급한 일은 먼저 내가 세속에서 떠나는 일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큰 비전을 주시기 전에 먼저 떠나라 하셨다. 나 자신을 죄에서 깨끗하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비로소 귀히 쓰시기 시작하신다. 그리고 사역보다 더 급한 일은 은혜 받는 일이다. 주님께서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하셨다. 기도하여 능력 받지 않고 나가다가는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삼십 세에 사역하신 주님처럼 준비하는 성도가 되자.
(설교)
이번 뉴스에도 나오는 것처럼 아프가니스탄에 안전문제로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2006 아프가니스탄 평화축제(8.5∼7)가 취소되어 행사를 위해 현지에 간 1400명의 한국인들이 철수해야 하는 황당한 일을 당했습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거기 간 사람들은 기독교정신에 입각했을 뿐 술자 등의 선교가 아닌 순수한 봉사단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을 제지한 것은 안전문제가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이 회교 국가이기 때문에 기독교의 진출을 막기 위한 술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분부대로 온 세상에 나가서 주님의 증인이 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진정 복음을 위한다면 축제와 같은 거대한 외부적 행사가 아니라 여러 가지 신분으로 들어가서 그들을 자극하지 않고 감화시키는 일이 최선입니다.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우라던 주님의 교훈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주님의 지상 명령 그리고 천하보다 더 귀한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달려가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약 두 가지입니다.
1. 먼저 내가 세속에서 떠나는 일입니다.
신앙생활에는 떠나야할 것과 떠나지 말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 큰 구속의 경륜을 이루시기 전에 먼저 “너는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창12:1). 여기 고향 친척 아비 집이란 영적으로 세상입니다. 세상에 둔 마음 떠나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너를 창대케 하며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고 모든 열국이 너로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처럼 먼저 떠나는 일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일보다 더 선행 되어야 할 것이 죄악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죄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한다고 나섰다가 하나님의 영광 가리는 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 자녀 된 것에 만족하지 마세요. 사도들의 외침처럼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 세상 죄악을 떠남, 그러나 이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아브라함도 얼마나 어려웠으면 아버지를 하란까지 모시고 오고 조카 롯은 가나안까지 데리고 왔겠습니까? 아버지가 붙잡습니다. 아브라함도 아버지를 떠나지 못합니다. 이렇게 세상 욕망 떠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과업으로 맨 먼저 할 일이 떠나는 일입니다.
대부분 간증을 들어보면 그런 자리에서 떠나게 되는 것도 하나님께서 떠나도록 특별한 기회와 힘을 주셔서 떠난 사실을 봅니다. 아브람도 아비 데라가 죽은 후 하란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행7:4절과 창12:4절을 비교해 보면 성경은 데라가 두 번 죽는 것으로 나옵니다. 데라와 아브라함의 나이 차이가 70세입니다(창11:26).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데라가 죽어 하란을 떠날 때 75세였다면 데라가 145세에 죽었다 해야 맞습니다. 그러나 실재 데라가 죽기는 나이 205세(창11:32) 즉 아브라함이 135세였던 이삭을 모리아 산에 드릴 때입니다. 그렇다면 성경 기록에 의하면 데라는 분명 두 번 죽은 것입니다. 어떻게 성경이 데라의 두 번 죽음을 기록할 수 있을까요? 사람이 두 번 죽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저는 데라의 두 번의 죽음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한 번은 아브라함을 붙잡으려는 고집에서 죽었고 또 한 번은 205세에 실제로 몸이 죽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도는 이중으로 죽어야 합니다. 우리를 붙잡던 세상이 우리에게 대해서 죽고 나도 세상에 대해 죽어야 합니다. 이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세상과 결별시킨 십자가 예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믿고 성령으로 늘 나를 씻어야 합니다.
채필근 목사가 쓴 ‘이야기 책’에 보면 한국 초기에 선교사들이 들어와 복음을 전할 때 강조한 것이 주초문제였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주초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세례도 직분도 주지 않았습니다. 어느 농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 교회의 집사 한 분이 교회에 나오면서 구습을 버리지 못하고 남이 없는 곳에서는 담배를 한대씩 피워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그만 선교사님이 오는 것을 보고는 너무나 급해서 뒤로 던진다는 것이 등속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집사님은 등에 불이 닿을 때마다 움찔 움찔 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은 이미 다 보고 온 터라 일부러 이런 저런 말을 건네면서 가지 않았습니다. 너무 뜨거워 참다못한 그 집사는 “아이쿠 선교사님 잘못했어요.” 그만 항복하고야 말았습니다. 그 후 그는 교회 앞에서 눈물로 자기의 허물을 고백하고 훌륭한 장로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기 전에 그 무엇보다 떠나야 할 것을 떠나야 합니다. 온전히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될 때 비로소 하나님이 귀히 쓰실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때가 나서야 할 때입니다.
2. 은혜의 자리를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주님께서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하였습니다. 여기 약속하신 것은 성령이시고, 예루살렘은 은혜를 사모하며 기다릴 장소입니다. 시110:2이나, 사2:1-9, 미4:1-2 등을 보면 구원의 복음이 예루살렘을 통해서 만방에 전파될 것이 예언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우리로 치면 은혜의 장소를 가리킵니다. 이 장소가 교회가 될 수도 있고 하나님과 나 사이 보이지 않는 영적교제의 장소일 수도 있습니다.
즉 하나님 앞과 교회에서 말씀으로 준비 되고 은혜 받기 전에는 복음사역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전도는 초신자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적인 사역자는 철저히 준비 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과 초대교회는 일군을 세우실 때 준비되고 합당한 자를 골라 세우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이 일을 위해 준비시키시기 위한 은혜의 선물입니다. 고전12:28에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그리고 엡4:11-12에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떠나지 말고 주의 종들의 가르침을 받아가며 바르고 열심히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구비되고 생명으로 구비되고 능력으로 구비되고 사랑으로 구비되고 교육과 훈련으로 구비되고 준비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도 세상에 오셨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으셨고, 하나님의 일이 급하셨지만 사역하시기까지 30년을 준비하셨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셨다면 우리는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세상에 대한 사역이 급하고 급해도 이 두 가지 일보다는 급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죄악을 떠나십시다. 그리고 사도들처럼 은혜의 자리를 떠나지 말고 은혜를 받읍시다. 그래서 그들처럼 하나님 앞에서 귀히 쓰임 받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한성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