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쓰신 큰 인물 모세의 믿음은 어떤 것일까? 일부만 언급한다면 먼저 모세의 믿음은 애굽의 영화를 거부하는 믿음이다. 이처럼 세상 죄악에서 철저히 분리될 때 하나님께서는 귀히 쓰신다. 다음은 애굽의 영화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믿음이다. 이처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예배하는 자를 하나님은 크게 쓰신다. 그리고 모세의 믿음은 자기 백성들과 고락을 같이 하는 믿음이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여 주를 위해 희생하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참으로 귀하고 크게 써주신다.
(설교)
오늘 이 시간 우리가 배울 믿음의 사람은 모세입니다. 모세는 잘 아시는 대로 히브리인으로 태어나 나일강에 버려졌으나 애굽 바로왕의 공주의 아들이 되어 40년간 애굽의 왕궁에서, 40년은 도피자로 광야에서 양을 치며, 그리고 40년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한 이스라엘의 목자로 하나님이 쓰신 지도자입니다. 이런 큰 인물이 가졌던 믿음은 무엇인가? 우리가 배울 때 우리도 그런 큰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모세를 통해 보여준 큰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1. 세상의 죄악을 거부하는 믿음입니다.
24절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랬습니다. 이처럼 거절을 잘 해야 큰 믿음입니다. 무엇을 거절해야 합니까? 애굽은 세상의 상징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애굽 생활을 죄악의 낙이라고 해석합니다. 즉 모세가 애굽의 영화를 거절한 것처럼 죄악을 거절해야 합니다.
이것을 잘해야 믿음입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아직도 세속에 빠져 허우적거린다면 믿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오듯 이 세상에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에미 카마이클은 말하기를 “당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살피라 그리하면 네가 어떤 존재인지 알리라” 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대기 오염도를 측정하듯 심령 오염도를 측정하는 기계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스스로가 대략은 짐작하리라고 믿습니다. 우리 심령의 오염도가 제로상태가 되도록 우리 몸을 주님께 드려야하겠습니다.
빌3:19에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이것이 보통 사람들의 영적 상태입니다. 그러한 인생들에게 성경은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행2:40) 말씀합니다. 세상 죄에서 실재로 구출 받아야 합니다.
모세가 애굽 공주의 아들임을 거절하기까지 갈등이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가 세상의 죄악을 끊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그것을 철저히 끊어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무궁한 생명의 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계22:14에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했습니다.
깨끗하게만 하면 하나님이 귀히 쓰세요. 딤후2:21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엎디어서 자기 심령의 더러움을 씻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을 세상보다 더 사랑하는 믿음입니다.
다시 24-25절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다고 했습니다. 모세는 세상의 영화보다 하나님과 자기 백성을 더 사랑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노예였습니다. 그런데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능욕 받는 자기 백성과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는 것은 애굽에 대한 배신이요 역적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원수 됨보다 세상 원수 됨을 택했습니다.
세상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사랑하면 그게 성공이에요. 그 자체가 성공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온전히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이 보이는 성공의 최고의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세상 사랑치 않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가만 두시겠습니까? 써도 크게 쓰십니다. 강패 김익두도 그렇게 했더니 크게 쓰셨잖아요. 이랜드의 박성수 회장도 대학 4학년 때 루게릭이라는 불치병으로 죽어갈 때 그는 그 절망 속에서 날마다 성경 읽고 기도하며 바른 신앙을 세웠습니다. 그랬더니 2년 후 하나님께서는 그 질병을 말끔히 치료해 주셨고,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셔서 대 그룹의 회장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가 한 해 동안 사회를 위해 봉사한 돈이 수천억 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주시는 은혜와 복은 한없습니다. 잠22:4에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하나님을 사랑한 고라자손들도 시편 84편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10-11절)고 노래했습니다. 모세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3.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믿음입니다.
26절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출애굽기의 모세 이야기에는 그리스도라는 용어는 없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 이야기에 그리스도를 삽입해 넣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신령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 이야기나 성막이나 여러 이야기로도 예수 복음을 이야기 하는 신령함을 보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믿음, 이것이 모세를 통해 보여주신 큰 믿음입니다.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희생할 줄 아는 신앙이야 말로 참으로 귀합니다.
한 번 물어 보겠습니다. 여자와 어머니가 같습니까?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남자들 군대 이야기라고 하더군요. 전혀 경험해 보지 않는 이야기를 하니 그럴 수밖에요. 그러나 어머니는 다릅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군대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아들이 군대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꼬치꼬치 물어보며 흥미를 갖습니다. 여자와 어머니는 분명 다릅니다. 여자는 희생이 없지만 어머니는 희생이 있어요. 여자는 이기적이지만 어머니는 자기를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합니다. 여자는 눈으로 울어도 어머니는 마음으로 울어요.
이처럼 영적으로 어린 성도와 장성한 성도의 차이는 큽니다.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면 주를 위해 희생할 줄 알게 됩니다. 주님을 위해서 수고하고 욕을 먹어도 매를 맞아도 감사하고 기쁩니다. 아가서에도 나오지만 그냥 시집을 가는 것이 아닙니다. 유방이 필요합니다. 유방은 믿음과 사랑입니다. 소녀에게는 이게 없습니다. 이처럼 믿음 어린 성도는 생명 건 믿음과 희생적 사랑이 없어요. 주를 위해 수소할 일이 있으면 다 도망칩니다. 그러나 믿음과 사랑이 있을 때 예수님의 진짜 신부입니다. 누구나 명분상으로는 신부지만 정말 주님이 함께 하실 수 있는 신부는 주님을 생명 바쳐 믿고 희생할 줄 아는 성도입니다.
이런 장성한 성도들이 많아야 합니다. 이런 성도들이라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무슨 다툼이 있겠습니까? 작은 것 하나 가지고 삐지고 토라지는 막내 같은 성도가 아니라 이해하고 격려하고 희생하며 이끌어주는 큰 오빠 큰 언니 같은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늘의 상을 바라보고 묵묵히 자가 시명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 말고 모세처럼 하늘의 상을 바라보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탁구의 양영자 선수 아시죠? 양영자 선수는 전북 익산의 이일여고 출신입니다. 그가 매달 100만원씩 나오는 체육연금은 시골의 어느 노인 목사 앞으로 돌려놓고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는 몽골에 선교사로 가서 일하고 있습니다. 양선교사가 금매달리스트니까 어디서나 환영 받아 어려움이 없었을 것 같지요? 그러나 가서 토착병에 시달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모든 것이 결핍된 환경에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들판에서 양치는 그들에게 탁구가 무슨 관심사겠습니까? 그러나 양영자 선교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부귀영화보다 당신의 뜻대로 가시밭길이 더 행복합니다.” 이것이 모세의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를 통해 보여주신 믿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 죄악과 결별하는 믿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믿음, 그리스도를 위해 수고하는 믿음을 갖기 바랍니다. 우리가 성령의 은혜 충만 받으면 그런 마음이 생깁니다. 이 시간 성령의 은혜 충만 받아 모세와 같은 믿음 가져 주님께서 모세를 쓰시듯 크고 귀히 쓰시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크리스챤 유머
어떤 사람이 목사에게 물었다. 목사님 교회의 성도가 몇 명이나 됩니까? 성도는 모두 150명입니다. 그 사람이 다시 질문했다. 목사님 교회의 성도 중에 십일조는 몇 명이나 드립니까? 우리 교회는 150명 모두가 십일조를 드립니다. 그 사람이 이상해서 다시 물었다. 아니! 정말 150명 모두 십일조 생활을 합니까? 목사는 웃으며 말했다. 150명 중에 50명은 교회에 십일조를 드리고, 나머지 100명은 하나님이 직접 거두어 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