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씨를 뿌립시다

좋은 씨를 뿌립시다 (갈6:7-9)

요약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는 것이 심고 거둠의 법칙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것으로 많이 뿌릴 때 좋은 결과가 올 것이다.
그럼 어떤 씨를 뿌려야 할까요?
먼저 기도의 씨를 뿌리자(시126:5-6).
복음의 씨를 뿌리자(막4:20).
축복의 씨를 뿌리자(고후9:10).
좋은 말씨를 뿌리자(민14:28).
선행의 씨를 뿌리자(갈6:9).
육체를 위해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해서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
씨를 뿌리지 않고 좋은 결과를 기다린다면 어리석은 것이다.

설교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만드시고 변하지 않는 법칙을 주셨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심는 대로 거두는 법칙입니다. 본문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하신 말씀은 영원불변의 법칙입니다.

유럽의 외딴 들에 여관업을 하는 모녀가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어머니는 어릴 때 집을 나간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가난과 고독에 시달린 모녀는 어느 날부터 부유하게 보이는 손님에게 독약을 먹여 살해한 후 금품을 빼앗고 시체를 강물에 던지는 범죄를 저지르는 이상한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여관을 찾은 말쑥한 청년에게도 독약을 먹인 후 강물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런 다음 여인은 지갑에서 돈을 꺼내다가 신분증을 보고 그만 놀라 뒤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청년은 다름 아닌 자기가 그토록 기다려온 사랑하는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청년은 고향을 떠난 후 크게 성공해 어머니와 여동생을 만나러 귀향하던 길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까뮈의 소설 “오해”의 줄거리 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무엇이라 합니까? 자업자득이라 이것이 심는 대로 거두는 법입니다. 이 이야기를 반대로 바꾸어 두 여인이 나그네에게 선행을 했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어떤 결과가 왔을까요? 비극이 아닌 희극이었을 것입니다. 씨는 속이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납니다. 그러므로 좋은 씨를 심어야 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떤 좋은 씨를 뿌려야 할까요?

1. 기도의 씨를 뿌리십시오.

시126:5-6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했습니다.
바벨론에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뿌린 씨는 기도의 씨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해방과 귀환의 대사를 행해 주셨습니다. ‘성령과 능력의 삶’의 저자인 데이브 로버슨은 기도하기 전에는 벌목공이었는데 기도를 배우고 나서는 하나님의 위대한 종으로 온 세상의 크리스천을 깨우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누구나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누구든 어떤 방면에 쓰시든 귀히 쓰십니다. 참으로 기쁜 일을 보려면 기도의 씨를 항상 뿌려야 합니다.

2.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막4:20에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열심히 복음의 씨를 뿌리셨습니다. 제자들도 바울도 이 씨를 뿌렸습니다. 왜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합니까? 복음은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전하지 않고는 들을 수 없고 듣지 않고는 믿을 수 없고 믿지 않고는 구원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 전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복음은 우리가 뿌리지만 나게 하시고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고 열심히 뿌려야 합니다.

3. 축복의 씨를 뿌리십시오.

고후9:10에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하셨습니다.
축복도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심어야 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잘 보아야 합니다. 물질도 심고 거두는 법칙에 속하며 또 하나님께서는 물질을 주시되 먹을 양식과 심을 씨앗으로 구분해서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씨가 무엇입니까? 말3:8을 보면 십일조와 헌물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씨까지 다 먹어버리니 문제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탓을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 못 속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심으세요.

십일조는 말씀에 따라 하는 고정적인 것이라면 헌물은 성령의 감동 속에서 하는 여러 가지의 봉사들입니다. 이것을 막아버리면 축복이 오지 않습니다. 혹은 잘 되다가 순식간에 무너져 버립니다. 불신자들도 잘만 되더라? 천만예요. 하나님의 참된 자녀들은 절대로 안 되어야 정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일조 훈련을 시키실 때 십일조를 하지 않을 때 즉각 즉각 손해 보는 일 경험해 보셨지요? 우리 집 사람도 처녀 시절 그것을 수없이 경험하고부터 십일조 신앙이 바로 서게 되었다고 합니다. 신기한 것은 잘 심으면 특별히 잘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윤택해지고 안 심으면 특별히 못된 것도 없는데 항상 쪼들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속습니다. 혹시 십일조와 봉사 많이 했어도 결실이 없다면 열매가 열릴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두 물질을 심어 축복의 기적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4. 좋은 말의 씨를 뿌립시다.

민14:28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하셨습니다.
출애굽 1세 국민들이 가나안에 왜 들어가지 못한 줄 아세요? 그들의 불신앙의 말 때문입니다. 누구나 사람인지라 마음에서는 의심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것이 말로 나타날 때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말을 누가 들으실까요?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말3:16에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한 그 말대로 행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나쁜 말을 뿌리면 말이 씨가 되어 나쁜 열매를 따고 좋은 말을 뿌리면 또 그 말이 씨가 되어 좋은 열매를 땁니다. 어느 교회 어떤 사람은 교회가 그 일을 해낸다면 내 열 손가락에 장을 지지겠다고 말하더니 그 교회는 그 일을 성공적으로 해냈고 그 사람은 아프다기에 심방을 갔더니 손에 뜨거운 장을 지지고 있더랍니다. 우리 같은 값이면 믿음의 말 긍정적인 말 협조적인 말을 하십시다.

5. 좋은 선행의 씨를 뿌립시다.

갈6:9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선행의 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선행과 사랑을 계속해야 합니다. 벧전2:15에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미련하고 악한 사람일지라도 선행을 보면 핍박을 그치고 마음을 열고 예수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편이 되어줍니다. 우리가 성경대로만 하면 이 세상복음화는 알고 보면 너무나도 쉬운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화에 가장 장애들은 선행을 하지 않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기독교언론이나 우리 기독교인들이 기독교를 실재 이하로 폄하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복음선교에 장애를 주는 사람들은 놀랍게도 타종교인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잘 믿고 교회를 사랑한다는 기독교인들이 더 많습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구제나 선교 복지 등을 합하면 30%는 사회봉사에 기여하고 있는데 3.8%에 불과하다고 구제비 한 항목만 가지고 공영방송에서 나팔을 불어 아주 기독교 선교를 막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세상들은 아주 교회를 향해 등을 돌려버립니다. 선행이란 이렇게 복음화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 강력한 씨앗을 낙심하지 말고 더 뿌리고 더 뿌려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세우신 법칙은 영원불변의 법칙입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한 알의 밀알이 되어주신 우리 주님처럼 좋은 씨를 뿌리십시다. 우리 모두 기도의 씨, 복음의 씨, 물질의 씨, 좋은 말의 씨, 선행의 씨를 잘 뿌려 100배로 거두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