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로 받는 축복

용서로 받는 축복 (막 11:25)

(요약) 

용서하는 자가 받는 복은 어떤 복일까요? 먼저 영혼이 잘되는 복이다.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우리 허물을 사하여 주신다. 그러므로 용서하지 않고 내 영혼이 잘 될 수 없다. 다음 용서한 자가 받는 복은 강건의 복이다. 주님은 죄를 사해주신 후에 병을 고쳐 주셨다. 이처럼 용서함으로 내 병도 고쳐지는 것이다. 그리고 용서한 자가 받는 복은 범사가 잘 되는 복이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 이 푸는 것이 용서이다. 하나님의 큰 용서를 받은 우리가 서로를 용서한다는 것은 마땅한 것이다.

 

(설교)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용어가 있다면 용서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용서는 마땅히 죽을 죄인까지도 용납하시는 아가페적인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용서로 하나님 자녀라는 상상할 수 없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끊임없이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우리들이 꼭 기억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도 서로의 잘못을 용서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엡4:32에서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억만 가지 죄악에서 나를 용서하셨는데 우리가 보잘 것 없는 서로의 죄를 용서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또 한 가지 용서하면 하나님이 덤으로 주시는 큰 복이 있습니다.

그럼 용서한 자가 받는 복은 어떤 복일까요?

1. 용서한 자가 받는 복은 영혼이 잘되는 복입니다.


막11:25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습니다. 달리 말하면 영혼이 잘 되는 복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기도하는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서도 “우리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소서”라고 했는데 이 기도에서도 용서 받은 우리 성도들이 반드시 용서를 실천해야 함을 교훈해 줍니다.

만일 용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마5:7에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했습니다. 약2:13에도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하였습니다. 긍휼을 베푼 자만이 긍휼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 성경의 교훈입니다.

그 비유로 일만 달란트 빚 진자가 빚을 갚을 길이 없어 주인에게 사정 했더니 주인이 긍휼히 여겨 탕감해 주었습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증언에 따르며 유대 전역에서 각출된 1년 세금이 고작 800달란트에 불과했다고 하니까 일만 달란트라는 액수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길을 가다가 그에게 100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만나자 그의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조금만 참아 달라 하는데도 그는 거절하고 그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참고로 100데나리온은 100일 품삯에 해당하지만 일만 달란트 의 60만분의 1에 불과한 작은 액수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임금이 그를 잡아다가 내가 너를 불쌍히 여겨 네 빚을 다 탕감해 주었으니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 하고 그 빚을 다 갚도록 옥졸들에게 넘겼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받고도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영적인 관계에 문제가 생긴다는 뜻입니다. 100일 품삯 우리 보기에는 큰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용서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입니다.

혹시 영적인 문제가 풀리지 않아서 고민하시는 분 계십니까? 아직도 용서하지 못한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맨 먼저 자기부터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율법 아래 정죄 받아 가책상태에 있는 한 그 심령은 차갑게 얼어붙어 동결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용서를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고는 영혼이 잘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말을 기억하세요.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습니다.\"(창45:5). 요셉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 속에서 이해하면 다 그들도 은인이요 나의 잘못임을 깨닫게 되어 용서할 수 있습니다. 더 풍성한 영적 삶을 원하신 분들은 용서의 사랑인 아가페 사랑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용서한 자가 받는 복은 강건의 복입니다.

시39:13에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이 구절은 용서가 주는 치료를 보여줍니다. 마9:2에 보면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의 죄를 사해 주시고 병을 고쳐 주신 기록이 나옵니다. 주님의 용서가 병을 치료했듯 우리가 서로 용서할 때 치료를 경험하게 됩니다. 혹시 영육 간의 질고 속에 있습니까? 용서 하지 못한 마음에 상처가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요즘 반신욕이 유행인데 반신욕이나 족욕을 하면 몸 안의 냉기가 물러가고 혈액순환이 잘 되기 때문에 건강회복에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반신욕하면서 뜨거운 곳에 앉아 있지만 일시적으로는 땀구멍이 오므라들면서 추운 듯한 느낌이 옵니다. 그러나 이것이 냉이 빠져 나가는 현상입니다.

제가 이 말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혹자에게는 이와 비슷한 현상이 오기 때문입니다. 대개 심신이 연약한 자에게 있는 현상이지만 혹자에 따라서는 일시적으로 기침도 나오고 춥기도 하고 떨림도 있고 눈물 콧물도 나오면서 몸에서 냉이나 사귀가 빠져나갑니다. 그 후에 오는 혈액순환과 컨디션은 그 전과는 비할 수 없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주는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할 때는 피곤이 없고 몸이 날아가는 것 같이 가볍습니다. 그래서 내적치유사역에서 용서를 통하여 불치의 병을 치료 받은 사례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데 용서는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를 불러옵니다. 그러기에 혹시 귀신에 눌려 있다 할지라도 물러가 건강해집니다.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가 있다면 원인이 어떻든 대부분 호전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죄를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모회사에 입사해 규모가 작은 회사를 30년간 회사와 가정 밖에는 모른 채 혼신을 다해 중소기업으로 키웠습니다. 그런데 구조조정이라며 명예퇴직을 당한 그는 절망 분노 배신 허탈 허무 등 나쁜 감정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매일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는 불면증 환자가 되었고, 한 공기 밥도 소화를 시키지 못하는 위 무력증 환자가 되었고, 온종일 머리가 쓰셔서 견딜 수 없는 편두통 환자가 되었고, 뼈마디가 다 저리고 아픈 관절염 환자가 되었습니다.

미국 미시간 주에 있는 호프대학에서 71명에게 과거의 상처나 원한을 기억하도록 했더니 혈압이 오르고 맥박이 빨라지고 근육이 긴장하는 현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 대학에서 또 비슷한 실험을 했습니다. 1,32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누군가를 용서한 사람이 한을 품고 있는 사람보다 훨씬 건강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 피츠버그에 있는 카네기 멜른 대학교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276명을 대상으로 276명 코 안에 감기 바이러스를 떨어트린 후 5일 동안 격리한 후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이 감기에 걸릴 확률이 그렇지 않는 사람과 비교해 4분의 1이라고 나왔습니다. 그 뿐 아니라 어떤 병이라도 이길 더 강한 탄력적인 면역체계를 갖게 되고 정신건강의 향상이 있었습니다. 국민일보에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절반정도는 용서하거나 용서받으면 다 나을 환자라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폴 뚜르니에라는 사람은 회개한 사람이 병이 속히 낫는 것을 보고 “병과 도덕성은 매우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직 용서만이 내 영혼이 살고 내 육체가 살고 내 이웃이 사는 길입니다. 용서하지 않음이 수많은 질병의 원인이 됩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질병도 낫기 힘들고, 영적으로도 막혀 신앙도 좋아질 수 없고, 하늘 문이 막혀 축복도 받을 수 없고, 기도 응답도 받을 수 없습니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을 때 사화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물을 받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건강을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먼저 용서가 필요하다. 그래야 네게 치료의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3. 용서한 자가 받는 복은 범사가 잘 되는 복입니다.

마18:18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셨습니다. 매면 안 됩니다. 매면 죽습니다. 그러나 풀면 삽니다. 하늘에서 매이면 만사불통입니다. 그러나 풀면 하나님께서 만사형통하게 풀어주십니다. 이 푸는 것이 용서입니다.

마치 부메랑의 원리와 같아요. 부메랑(Boomerang)은 던지면 팔랑개비처럼 날아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는 기구입니다. 부메랑은 본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이 사용한 수렵 기구였는데 새나 작은 동물을 잡는 데 이용하였는데 목표물을 향해 던지면 명중하지 않은 경우에는 던진 사람에게로 정확히 되돌아오는 도구입니다.

이처럼 내가 한 축복과 저주가 내게로 되돌아옵니다. 그래서 시109:17에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 아니하더니 복이 저를 멀리 떠났으며”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곳을 가나 주님의 분부대로 그 집이 평안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이 집은 당시 배경으로 볼 때 가정집이면서 교회입니다. 바울은 나라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하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넓게는 나라요 세계입니다. 평안하기를 힘쓸 때 그 평안이 결국은 다 내게 복이 됩니다. 남이 앞 길 막아놓고 자기 앞길 막힌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처럼 용서하지 못한 죄가 우리의 형통을 막습니다.

오늘 세계에서 가장 고통을 당하는 나라는 불화하는 나라들입니다. 지금 가장 가난한 지역이 아프리카인데 아프리카가 정말 먹을 것이 없어서 가난한 것이 아닙니다. 세계 최고의 관광지가 거의 아프리카에 다 있고 지하자원도 많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재난은 동족 간에 싸우는 겁니다. 몇 천 년 간 어느 지역보다 더 많이 싸우는 민족이 아프리카입니다.

옛말에 좋은 사람은 은혜를 돌에다 기록하고, 나쁜 사람은 은혜를 물에다 기록한다고 했어요.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두 친구가 사막을 지나가다가 말다툼 끝에 다른 친구의 뺨을 때렸습니다. 뺨을 맞은 친구는 모래 위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오늘 나의 친구가 내 뺨을 때리다.’ 그런데 오아시스에 도착하여 뺨 맞았던 친구가 수렁에 빠져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때린 친구는 그를 서둘러 구해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돌에다 ‘오늘 나의 친구가 내 생명을 구하다.’ 썼습니다. 그래서 친구가 물었습니다. “아까는 모래에 쓰더니 지금은 왜 돌에 쓰는가?” 그러자 “내가 모래에 썼던 것은 용서의 바람이 불어와 지워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지만 내가 돌에 새긴 것은 그 선행을 절대로 바람이 지울 수 없도록 한 거야” 이것이 우리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끝까지 용서하라는 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한 기도를 원문에 보면 한 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되어있습니다. 계속 되는 고통의 순간에도 계속하여 용서하시는 본을 보이셨습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을 본받은 스데반 집사의 기도에서도 계속되었는데 이 기도가 계속하여 우리에게도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요셉처럼 용서로 받는 축복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한 용서의 기도처럼 우리들도 주님을 본받아 용서의 사람이 되십시다. 용서 없이 용서가 없고, 용서 없이 건강이 없고, 용서 없이 형통이 없고, 용서 없이 영적 해결이 없습니다. 용서하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한 복을 받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받은 큰 용서를 기억하여 어떤 죄도 예수 이름으로 용서하고 예수의 마음으로 사랑하여 용서로 복을 받는 영육 간의 아름다운 복과 은혜를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문선명집단 주의

--> 통일교 교주 문선명은 자신을 자칭 재림주라 하면서 미혹하는 적그리스도이기에 절대 주의를 요합니다. 문선명은 그 동안 범죄로 말미암은 전과를 가지고 있으며, 피스컵축구대회를 통해 이미지를 홍보해 가고 있고, 합동결혼식과 평화운동 참가정운동 등을 통해 교세를 넓혀가고, 기업체와 학교 사설기관 및 북한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습니다. 최근 경기도 청평에 수천억을 들여 문선명 왕국을 건설하고 자칭 평화군을 창설하여 정치인과 관료들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집회나 행사 기업체 학교 기관 등에 참여하지 말고 하나님의 보시기에 합당한 참 믿음을 견지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