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새술로 축제를

성령의 새 술로 축제를! (요 2:1-11) 

(요약) 성령의 새 술로 기쁨의 축제의 삶이 되려면 꼭 초청해야 할 분이 계신다. 먼저 예수님으로서 이처럼 예수 믿어 구원 받음은 필수요, 또 제자들로서 그들이 지체와 주의 종들이라는 점에서 이처럼 충실한 교회생활이 필수적이다. 다음에 꼭 지시 받아야 할 분이 계시니 성령님이시다. 즉 포도주 없음을 말한 마리아처럼 항상 성령 충만을 사모해야 한다. 다음에 장애를 제거해야 하는데 그 장애는 교만이다. 즉 예수님을 주로 높여 드리고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말씀에 순종할 때 거기서 큰 은혜의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설교)

뉴스를 볼 때마다 간혹 안타까운 일은 생을 비관하여 강에 투신한다든가 자기 생명을 끊는 사람들 소식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에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한 편으로는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우면 이럴까 연민의 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고난과 슬픔 많은 세상에 살면서 잔치집처럼 항상 즐겁게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하나님이 더욱 기뻐하시는 잔치는 육신의 잔치가 아니라 마음의 잔치입니다. 그래서 롬14:17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했습니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마음의 즐거움을 위해서 포도주를 써왔습니다. 참고적으로 외경 집회서 31:27-28에 보면 “포도주는 인간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육신의 포도주가 아니라 성령의 포도주입니다. 성경은 술 취하지 말라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 성령의 포도주로 취하면 인생의 비관은 다 사라집니다. 이 새 술에 변화 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잠15:15에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성령의 포도주로 기쁨의 축제가 되는 영적 진리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럼 성령의 포도주로 기쁨의 축제의 삶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꼭 초청해야 할 분들이 있습니다.

2절에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그랬습니다. 성경학자들 가운데는 이 초청을 요21:2의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이라는 구절에 근거하여 나다나엘이 초청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또 다른 학자들은 이 집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가까운 친척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2절에서 밝히는 대로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라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무엇보다 먼저 예수님을 초청해야 합니다. 세상 것에서 기쁨을 찾으려고 한다면 크게 실망할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기쁨은 주 안에서의 기쁨이요 구원의 기쁨이요 예수 없는 기쁨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보지 못했으나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것은 영혼이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벧전1:8-9). 그러므로 예수님을 초청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초청하는 법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요1:12).

그런데 가나의 혼인집에서는 예수님만 초청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도 초청했습니다. 제자들은 교회의 지체인 성도요 하나님의 일군입니다. 즉 교회 떠나서는 즐거움의 축제가 되지 못한다는 교훈입니다. 엡4:11-12에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지만 지체를 통하여 받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교리사를 보면 어떤 진리를 확정하기 위해 수백 년씩 걸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 경우 말씀을 깨닫기 위해 어떤 문제는 10년 혹은 30년 동안 기도하며 연구하여 알게 된 말씀도 있습니다. 그런 여러분은 불과 몇 분 안에 그 말씀을 고민조차 하지 않고 지체를 통해 전달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을 뿐 아니라 교회생활 잘해야 성령의 포도주로 기쁨의 축제가 가능합니다.

2. 성령으로 기쁨의 축제의 삶이 되려면 우리가 꼭 지시 받아야 할 분이 있습니다.

여기 마리아가 나오는데 마리아의 역할이 아주 중요합니다. 1절에 초청 인사를 말하기 전에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한 것을 보아 이 잔치에 미리가 있는 것을 보니 상당히 중요한 위치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이 마리아의 가까운 친척일 것이라 추측한 거죠. 그리고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지시한 것으로 보아 보통 위치가 아닙니다. 이처럼 가장 높으실 뿐 아니라 미리 앞서 오셔서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또 권세와 능력을 가지시고 우리 곁에서 가르치시고 돕는 분이 계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이십니다. 이 분의 도우심이 없으면 결코 기쁨의 축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3절에 마리아가 예수님께 한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잔치집에 술이나 음료가 떨어지면 무슨 재미가 있습니까? 이처럼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경계하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은혜 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거나 성령의 열매, 성령의 은사, 성령의 기쁨, 기타 모든 약속의 말씀들이 현실화 되려면 성령 충만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은혜 떨어져서는 결코 기쁨의 축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 받으면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지금도 포도주가 없다, 즉 현재진행형으로 계속하여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은혜 떨어지면 안 됩니다.

3. 성령으로 기쁨의 축제가 되려면 장애를 제거해야 합니다.

장애가 무엇일까요? 본문으로 돌아서 봅시다. “포도주가 없다”는 말은 ‘포도주를 만들어 달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마리아의 요청에 예수님의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4절을 보면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여기 “여자”(gunai=구나이)라는 말은 본래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를 만났을 때 사용한 최상의 존칭이었다고 하니까 문제될 용어는 아닙니다.

문제는 주님께서 잔치집의 포도주 떨어진 사건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이 기쁨의 축제가 되는데 장애라면 가장 큰 장애가 되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마음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손님의 입장으로는 그 집의 일에 관여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손님으로서 주인이나 하인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이처럼 구원 받거나 영적 삶에 있어서 최고의 장애가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주로 믿지 않거나 예수님을 주라 부르면서도 주인이나 왕으로 섬기지 않고 내 주장 내 생각으로 교만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하면 듣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할 때만 은혜를 주셔요. 진실로 회개하며 낮추며 기도할 때만 구원의 즐거움이 옵니다. 교만하면 결코 그 안에 행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겸손히 예수님을 온전히 주로 임금으로 대접해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한 증거가 바로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일입니다.

4. 그래서 우리 삶이 성령의 축제가 되려면 순종해야 합니다.

7-8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하인들이 순종하는 장면입니다. 본문이 소개하는 기적의 결정적인 열쇠는 순종입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포도주이지 물이 아니라”고 대항했을 것입니다. 혹은 “물을 떠다가 갖다 주라니 당신이 우리를 망신시킬 작정이냐?”고 항의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말없이 순종했습니다. 더구나 6절에 나오듯이 유대인들의 결례에 쓰던 항아리물입니다. 결례란 손과 발을 씻는 일로서 유대인들은 이를 종교적 의식처럼 지켰습니다. 그러니까 새 물을 채운 것이지만 항아리가 그런 것이기에 허드레 물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듣고 말없이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물이 최상품 포도주로 변화되었습니다. 한 항아리도 아니고 여섯 항아리 모두 떠다 줄 때마다 포도주로 변했습니다.

비유적으로 보면 물은 말씀입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되어 돌아옵니다. 한 항아리만 순종하면 한 항아리만, 다 순종하면 다 순종한대로 기적이 나타납니다. 성경 지식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 아닙니다. 말씀에 순종이 우리를 변화시켜요. 천성의 열 두문처럼 우리가 은혜에 참예함은 한 가지로도 가능하지만 다양한 말씀을 순종함으로 더욱 풍성한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들은 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 때 은혜를 통해 주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11절 말씀처럼 그들은 순종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도록 충성하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열심히 전도하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깊이 기도하다가, 말씀을 묵상하다가, 봉사하다가, 사랑하다가, 회개하다가, 핍박 받다가, 인내하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은혜의 방편인 말씀 실행을 통해서 예수님을 체험한다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령 충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과 슬픔 가운데 계시거나 삶의 만족이 없습니까? 예수님은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마13:43)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성령으로 기뻐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삶이 성령의 새 술로 기쁨의 축제가 되길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교회생활 잘하고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한 말씀이라도 진실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 안에서 이 기쁨을 풍성히 누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