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께서 어떻게 도우시는가? 먼저 믿음 주심으로 도우신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도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다 성령의 역사하심이다. 성령께서 은사를 통해 도우신다. 은사는 여러 가지인데 각 사람에게 유익하게 하시려고 나타나신다. 성령께서 직임을 통해서 도우신다. 그래서 다방면의 전문 사역자들을 일으켜 세우시니 그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성령께서 탄식으로 우리 심령 안에서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시며 도우신다. 그런데 안일한 자를 도우시지 않고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는 자를 도우심을 기억하자.
(설교)
이 시간에 도우시는 보혜사 성령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셰익스피어는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니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자만이 아니라 인간은 누구나 약합니다. 강한 자도 약하고 약한 자도 약합니다. 곰은 6개월을 먹지 않아도 넉넉히 살고, 뱀은 6백일을 먹지 않아도 살며, 어떤 동물은 얼음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삽니다. 원자탄으로 인종이 멸망해도 죽지 않고, 용광로 속에서도 살아남을 세균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을 질그릇과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로 비유합니다. 그만큼 깨지기 쉽고 상하고 약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를 도우셔서 험난한 인생길을 극복하게 하시고 또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십니다. 프랑스 파리의 루블 박물관에 있는 모나리자 그림이 수백 년이 지난 지금가지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이유는 이 그림을 보호하기 위해서 특수한 환경과 방탄유리까지 설치하고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모나리자보다 더 사랑하시고 더 귀하게 보호하시고 도우십니다. 성경은 우리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말씀 들으시고 성령을 통해 도우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성령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도우실까요?
1. 믿음으로 도우십니다.
본문 3절에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성령께서 믿음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믿음 주셔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기뻐하게 하실 뿐 아니라 믿음 주셔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예수님을 나의 주로 믿게 하십니다.
이렇게 믿음이 중요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지요?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렇다면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우리의 구원과 생사화복이 이 믿음에 달렸어요. 산더러 바다에 빠쳐지라 한다 해도 믿어진다면 무엇이든지 그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어만 진다면 안 될 것이 없어요. 마음이 평안하고 믿어지면 그대로 되는데 무엇이 불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금과 같이 귀한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응답이 어디에서 떨어지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먼저 내 마음의 믿음에 관심 갖길 바랍니다. 내 마음에서 믿어지면 내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념과는 다른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이기 때문에 더욱 기도할 뿐 아니라 회개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의 중심에 믿어지게 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이 있습니다. 이 시간에 성령께서 믿음 주셔서 구하는 것마다 생각하는 보다 더 아름답게 이루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2. 성령께서는 은사를 통해 도우십니다.
4절에 “은사는 여러 가지”라고 하면서 7절에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은 은사를 통해서 우리를 도우심을 말씀한 것입니다. 은사란 선물이란 뜻으로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리고 은사는 마치 도구와도 같아서 은사를 활용하면 쉬고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은사에는 만 가지도 넘겠지만 본문에는 하나님의 사역에 필요한 아홉 가지 은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를 돕기 위해서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주십니다. 이 지혜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효과적으로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주시는 요령입니다. 그렇다고 실수가 없다는 뜻도 아니고 항상 지혜롭다는 뜻도 아니며 필요할 때 깨달아지게 역사하시는 은혜입니다. 북한 동포들은 종교의 자유가 없지만 수많은 사람이 아닌 천사의 인도를 받아서 사람을 만나 전도를 받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한의 목사가 북한에 가면 아무 곳에나 서 있기만 해도 어떻게 알았는지 하나님이 만나라 해서 왔다면서 성경을 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주시는데 이것은 지식을 알게 하시는 은사입니다. 하나님께서 학자의 지식을 주셔서 알게 하십니다. 혹은 성령께서 믿음의 은사를 주십니다. 이 믿음의 은사는 불가능 일인데도 가능하게 믿어지는 은사입니다. 혹은 병 고치는 은사를 주시기도 하십니다. 기도하거나 손만 닿아도 병이 나아요. 주님은 각색 병은 물론 죽은 자까지도 살려주셨습니다. 이런 능력을 우리들에게도 허락하셨습니다. 혹은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하시고 보통 사람이 체험하지 못한 것을 체험하게 하시며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을 미리 알게도 하십니다. 그래서 남이 알지 못하는 기쁨을 가지기도 하고 혹은 남이 알지 못하는 부담과 고통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함께 사는 부부도 그것을 알지 못하여 오해합니다. 왜 다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는데 자신은 교회와 나라와 민족과 세계의 모든 문제를 안고 슬퍼하며 기도하면서 눈물 흘려야 합니까?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기도로 대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특별은총입니다. 마치 엘리사로 이스라엘의 방패삼으심과 같습니다.
3. 성령께서는 직임을 통해서 도우십니다.
5절에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의 직분도 주시고 필요에 따라서 성령께서는 이 직임을 교회에도 나타내 주십니다. 바울도 본래는 핍박자였으나 회개하고 성령의 은사 따라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직접도 도우시지만 세우신 사자들을 통해서 도우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요즘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다 보니 간간히 무지의 극치를 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목사만 강단에 서고 축도할 수 있느냐? 교인들도 만인제사장 시대이니 다 설교할 수 있고 다 축도할 수 있다면서 너도나도 강단으로 쳐들어가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선 대혼란이 연출될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루터의 만인제사장설은 우리 신약 성도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나 사이에 구약 제사장과 같은 그런 것이 필요 없이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예수 피 공로를 믿음으로 나아가 얼마든지 스스로 기도하고 섬길 수 있다는 뜻이지 결코 교회에 지도자가 따로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특별히 세운 지도자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고전12:28에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했고, 엡4:11-12에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다” 고 하면서 세우신 목적을 말씀하기를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잠14:4에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했습니다. 여기 소는 주의 종들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필요하셔서 세우셨습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모두 다 주의 종이지만 좁은 의미에서 따로 세운 자가 있다는 말입니다.
분명히 성경은 아무에게나 그런 일을 시키지 않고 예를 들면 교회를 통해 합당한 자를 추천하여 맛디아를 뽑아 사도의 수에 가입하고, 역시 합당한 자를 뽑아 일곱 집사에게 재정을 맡김과 같이 그 후에도 계속하여 교회를 통해 합당한 일군들을 길러내고 세워서 그들을 통해서 성도를 양육하고 치리하게 하셨습니다. 이 일을 교회를 통해 세우시고 권한 주셔서 돌보게 하셨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내셨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행20:28에서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했습니다. 분명히 성령께서 저들 가운데 삼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성령께서 직임을 통해서 우리를 도우시는 섭리를 모르고 세우신 자들을 부정한다면 교회의 혼란은 말할 것도 없고 모두 목자 없는 양같이 제각각 뿔뿔이 흩어지고 말 것입니다.
4. 성령께서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시며 도우십니다.
롬8:26-27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우편에서 자기 공로로 우리를 변호하시며 기도하신다면, 성령께서는 지금 우리 속에 찾아오셔서 내주하시면서 무엇을 간구할지 친히 감동시켜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무엇을 구해야 할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할지 모르지만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주장하셔서 아버지의 마음으로 기도하게 하십니다.
과거 아들을 월남에 보낸 한 성도는 아들을 염려하여 잠 못 이루며 저는 어떻게 기도할지 모르니 성령님께서 대신 기도해 달라면서 날마다 기도했습니다. 하루는 아군이 베트콩과 전투하는데 포탄을 피하기 위해 3미터 앞으로 뛰어가려고 하는데 누군가 무서운 힘으로 어깨를 누르면서 “그 자리에 엎드려라” 명령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잽싸게 그 자리에 엎드렸는데 바로 그 순간 자기가 뛰어가려던 바로 그 지점에 포탄이 떨어졌습니다. 그 순간 주위를 살펴보며 자기의 어깨를 누르면서 엎드리라고 소리친 사람을 살펴보았으나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돕기 위해서 보혜사로 찾아오신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은 가만히 있는 자를 돕지 않습니다. 속담에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신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믿고 신앙으로 살려하고 기도하고 사모하고 몸 바쳐 일하려는 자에게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늘 기도하십시다. 사모하십시다. 그래서 우리 일생 성령님의 도움 받아 승리하며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