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님은 지금도 성령으로 우리에게 임하신다. 부활의 주님이 임하시면 어떤 복을 주시는가? 평강의 복을 주신다. 주님은 나타나실 때마다 평강을 축복하셨다. 확신이 생긴다. 제자들에게도 도마에게도 못자국과 창자국을 보여주셨다. 영의 문제가 해결된다. 말씀과 성령의 충만을 주시고 죄를 사하시며 삶을 온전케 하신다. 사명을 주신다. 주님은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셨다. 당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성도들과 같이 주님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더욱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사모하자.
(설교)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40일 동안 자기를 믿고 사랑하는 자들에게 수없이 나타나셨습니다. 동산에서, 길에서, 집에서, 바다에서, 심지어 아무도 모르게 숨어서 문을 잠갔어도 주님은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귀한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그 때로 끝나지 않고 지금도 성령으로 계속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시간에도 부활의 주님이 임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부활의 주님이 임하시면 어떤 복을 주실까요?
1. 평강의 복을 주십니다.
마귀가 임하면 불안이어도 주님이 임하시면 평안이에요. 우리는 체험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도 정확히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 부활하신 후에도 계속하여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언제 원수들이 잡으러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밖에 나가지 못하고 한 집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들어오셔서 두 번이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리고 도마와 함께 있었을 때도 그렇게 축복하셨습니다. 말씀으로만 평강이 아니라 진정한 평안을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부활의 주님이 임하시면 평강이 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평강의 왕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만 마음에 나타나면 이유 없이 평화가 임합니다. 이 평안이 오면 세상에서 기쁨을 얻지 못해도 주 안에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같지 않아 세상의 그 어떤 안정제보다 더 평안한 것이 주님의 평안입니다.
뇌성마비 시인 송명희 씨가 지은 노래 증에 “나”라는 찬양시가 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못하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보는 것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이 찬양에는 감사라는 단어는 없지만 감사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송명희는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로 몸이 비비 꼬여 말조차 잘할 수 없습니다. 일급 장애인인 그녀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기쁨에 넘쳐 얼마나 많은 성시를 썼는지 모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무료로 치료하겠다고 했어도 이대로가 좋아요 했다는 송명희씨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어찌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성도들도 성령으로 더욱 주님을 깊이 만나 평강 얻으시기 바랍니다.
2. 부활의 주님이 임하시면 확신이 생깁니다.
그래서 도마도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28절에 예수님 만나 의심 많은 도마의 확신에 넘치는 신앙고백이 나타납니다.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우리가 살아나신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는 내가 주님의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보고 또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여드레를 지나서 예수께서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27절) 하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도마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도마에게만 아니라 이미 주님이 제자들에게 오셨을 때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고 모두 기뻐했습니다.
지금도 주님을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나타나사 확신 주시기 원하십니다. 주님만 만나면 믿음이 생깁니다. 사울도 주님을 불신하여 믿는 자들을 박해했지만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완전히 바꾸어졌습니다. 어떻게 신앙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만나고 체험하는 길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믿음에는 믿는 것과 믿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믿는 것은 내가 믿는 것이지만 믿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은사입니다.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합니다. 그런데 부활의 주님이 우리에게 임하실 때 눈에 보이지 않아도 믿어지게 됩니다.
보혈의 공로도 100% 믿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장자를 치실 때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좌우 인방에 바른 가정은 죽음의 사자가 그 집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약 세 가지 유형의 믿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한 집은 양의 피를 바르면 죽지 않는다는 말을 믿지 못해서 그냥 잤고, 다른 한 집은 그 말을 듣고 피를 발랐지만 불안해서 밤새도록 한숨도 못 자고 뜬 눈으로 지세웠고, 다른 한 집은 그 말을 그대로 믿고 문에 양의 피를 발랐을 뿐 아니라 그 피를 온전히 믿고 평안하게 잤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몇 번째에 해당합니까? 어떤 상황에서든지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 안에서 진정한 평안을 누리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부활의 주님이 임하시면 영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22-23절에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시면 영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습니다. 죄도 사라집니다. 슬픔도 괴로움도 다 사라집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다 해결이 됩니다. 그 전에는 어떤 누가 와도 소용이 없습니다.
양산 통도사에서 불교를 공부하며 중이 되려다 나중에야 깨닫고 예수 믿게 된 분이 가르쳐 준 재미있는 불경의 한 귀절이 있습니다. 불경 나마다경 38장 8절을 보면 석가모니 가라사대 ‘하시야소래 오도유무지등야’ (荷蒔爺蘇來 吾道油無之燈也)라는 말이 있는데 그 의미는 “언젠가 예수 오시면 나의 깨달은 도는 기름 없는 등과 같다” 혹은 자기 등불이 예수 등불에 비하면 꺼져가는 작은 불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등불은 등불입니다. 구태여 따진다면 어떤 등불이겠습니까?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니다. 사람의 힘으로도 불가능하다는 깨달음입니다. 그러니까 지금도 불교는 그런 허망한 소리를 해야 큰 깨달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안 된다는 것은 어린아이도 아는 것, 거기에 머문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님이 아니고는 안 되는 것까지 알아야 합니다. 그 나마다경에 의하면 예수님이 나타나기 전에는 석가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석가는 그것을 분명히 가르쳤다고 합니다. “장차 예수가 나타난다.” 그리고 석가는 임종 시에 \"나를 믿지 말라 나를 믿는 자는 제자가 아니다. 다만 내 가르침을 지켜 행하라. 나는 결코 신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후세 사람들은 나마다경을 이설로 쳐버리고 그를 수련의 모델로 삼거나 석가의 공로로 좋은 곳에 간다고 그를 구세주로 삼는 잘못된 길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석가의 말에 의하면 석가를 믿어서는 석가의 제자가 아닌 것이죠. 사람들이 진정 불교를 안다면 회개하고 예수 앞에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구약 선지자도 율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필요성을 지시할 뿐 아무 힘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학을 많이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실체이신 예수님을 우리 영혼에서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수님에 관해서 아는 것과 예수님을 아는 것과는 다릅니다. 아볼로가 예수님에 관해서는 유능하게 가르쳤지만 예수님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 의해 예수님을 바로 알고 성령을 받은 후에야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영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염려입니까? 의심입니까? 죄에서 방황입니까? 갈등입니까? 아니면 절망입니까? 아니면 고독입니까? 아니면 악령의 위험 속에 있습니까? 만족하지 못합니까? 성령으로 임하시는 부활하신 우리 주님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그 어떤 영의 문제라도 다 해결해 됩니다. 승리합니다. 채워집니다. 행복해집니다.
4. 부활의 주님이 임하시면 사명을 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1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시는 모습입니다.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맨 먼저 했던 기도 역시 사명의 기도였습니다. 행22:10에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예수님을 만나면 이런 기도가 나옵니다. 아직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깊이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충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임하시면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나의 한이 되고 내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드리려고 합니다.
그 예로 성전에서 기도하던 이사야가 하나님을 만나고 사명자가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이 임하시면 주님의 마음을 갖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누가 나를 위해서 갈꼬?”하시는 주님의 마음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어떤 영이 임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마음은 천사에서 악마 사이를 오갑니다. 주님이 임하시면 주님의 가슴 속에 있는 그 사랑과 사명감이 가슴 속에 타오릅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저서로 유명한 미국 새들벡 교회의 릭 워렌 목사의 간증입니다. 릭 워렌의 아버지는 일생 시골과 중소 도시에서 목회했지만 주를 향한 열정이 대단하여 자원 봉사자들과 함께 전 세계에 150개 이상의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나이 많아 임종하면서 의식이 거의 없었지만 계속하여 “예수님을 위해 한 명을 더 구해야 해!”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한 명을 더 구해야 해!” 그러면서 아버지는 워렌에게 명령하듯 손을 뻗어 머리에 얹고 “예수님을 위해 한 명을 더 구해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 그 마음을 계승 받아 큰일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복음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바로 복음 그 자체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시면 평안해집니다. 확신이 옵니다. 두려움도 사라집니다. 영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사명자가 됩니다. 당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성도들과 같이 이 시간 주님이 성령으로 우리에게도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참된 믿음으로 변화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