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현재, 미래의 부활
과거 현재 미래의 부활 (고전15:3-4)
이 시간에 “과거 현재 미래의 부활”이라는 제목입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입니다. 겨우내 가지만 앙상했던 나무들은 봄이 되니 새 생명으로 돋아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연을 통해서도 부활을 이해하게 됩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그런데 부활이란 우리에게 막연한 그런 사건은 아닙니다.
부활에는 과거 현재 미래의 부활이 있습니다.
1. 과거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고전15:3-4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만이 온 세상의 구주가 되심을 증명하는 것이요 그 어떤 종교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기적입니다. 그래서 어느 종교도 창시자가 부활했다는 이야기도 없고 부활절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무덤은 빈 무덤이었습니다. 막아 놓았던 큰 돌은 옮겨져 있었고, 예수님의 시체는 사라지고 세마포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 세마포는 지금 로마의 바티칸 성당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하나님 보좌우편에 앉아 택한 자를 구원하시며 또 이 땅에 죽은 자와 산 자를 심판하러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것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분명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고전15장을 보면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인들이 보았고, 베드로가 보았고, 후에 열두제자가 보았습니다. 오백 명의 제자들이 함께 목격했습니다.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 사도도 보았습니다. 12제자 이외의 바나바와 같은 사도들도 보았습니다. 지극히 부족한 바울 자신도 다메섹 도상에서 보았다고 했습니다. 우리들도 보고 있습니다.
영국의 에드워드 크라크 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변호사인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거들을 오랫동안 연구해 왔습니다. 결론은 부활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었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증거들은 명확하였습니다. 성경과 역사가 증명하는 객관적 증거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충분하게 지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는 먼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롬1:4). 그리고 그를 통하여 완전한 죄사함의 길이 열린 것을 보여줍니다(고전15:17). 그리고 마귀와 사망에 대한 승리를 의미합니다(고전15:25,26).
2. 현재의 부활은 믿는 자의 영적 부활입니다.
엡2:4에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부활의 사건은 과거에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부활의 기적은 오늘 우리 가운데서도 영적으로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경험하게 되는 영혼의 부활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거듭남, 중생이라고 합니다. 새 생명으로 탄생함입니다.
이것은 믿는 자가 받을 복입니다. 롬6:4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여기 세례는 믿음의 다른 표현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다시 살게 됨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간증이 있죠? 갈2:20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래서 성도는 의에 대해서는 산 자요, 죄에 대해서 죽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롬6:10,11처럼 우리의 의지도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겨야 합니다.
누군가 목사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자라는 뜻이 무슨 의미입니까? 목사님은 그 사람에게 가까운 공동묘지에 가서 무덤을 향해서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고 험한 말을 하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순종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당신이 무덤에 누워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뭐라고 말했을 때 그 사람들이 대꾸했느냐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의미는 바로 그것이라고 했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었기 때문에 죄에 대하여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하나님과 의에 대해 산자란 무엇일까요? 죄에서 죽은 자의 정반대입니다. 전자가 무관심이라면 후자는 관심입니다. 즉 모든 말씀을 자기에게 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섬기고 의로움을 위해 태어난 자 같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마음의 자세입니다.
3. 미래의 부활은 몸의 부활입니다.
고전15:52-53에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 미래에 우리가 경험하게 될 부활의 사건은 육신의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경험하신 과거의 사건이자, 오늘 내게도 일어나는 현재의 사건이며, 동시에 미래에 경험하게 될 사건입니다. 그 증거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봅니다(고전15:20). 우리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로서 우리도 육체의 부활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체처럼 부활한 후에는 영원히 썩지 아니할 육체를 입게 됩니다. 다시는 질병도 없고, 노화도 없고, 죽음도 없는 가장 건강하고 아름답고 온전한 육체를 입고 살아가는 영광스러운 몸을 입게 됩니다.
미래의 부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요5:28, 29에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믿는 자들의 부활이 있습니다. 천국에서 영생을 위한 부활입니다. 또 불신자들의 부활이 있습니다. 불신자들의 육체도 부활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부활은 심판을 받기 위한 부활입니다. 불신자도 영원히 삽니다. 그러나 그 죽지 않음이란 지옥의 연속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은 과거 현재 미래의 부활의 기쁨과 감격과 능력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능력을 소유한 부활의 증인입니다. 이런 능력을 가진 초대교인들은 모두 부활의 증인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과거의 예수님의 부활을 믿음으로 현재의 부활을 누리고 또 영원한 육체의 부활을 받는 성도들이 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