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부활이 없다면?

만일 부활이 없다면 (고전15:12~22)

예수님의 부활은 너무나도 확실했기에 심지어 예수님을 박해하던 사람들조차 180도 변화되어 오히려 목숨 바쳐 순교하기까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래서 AD 1세기에는 ‘증인’이란 말이 ‘순교자’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부활은 확실한 사실이요, 초대교회의 전파의 제목이며,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었고, 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했던 기독교 영성의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2,000년 기독교 역사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단의 꾐에 빠져 부활을 부인하거나 부활의 사실을 뒤집어보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 예를 들어보면 무덤오인설(무덤을 잘못 알고 부활했다고 전파했다는 주장), 기절설(예수가 완전히 죽지 않고 기절했다가 탈출했다는 주장), 도난설(예수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다 숨겨 놓고 부활을 전파했다는 주장), 환각설(예수를 너무 그리워한 나머지 허깨비를 보았다는 주장), 신화설(예수는 실재 인물이 아니라 신화라는 주장)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억측일 뿐 만일 이런 주장들이 옳았다면 기독교는 벌써 끝나고 말았을 겁니다. 본문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 의심하는 사람들을 보고 “부활이 없다면”이라는 역설적인 논리로서 부활의 확실성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우리 신앙도 생명의 부활 신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왜냐하면 만일 부활 신앙이 아니면 그 신앙은 가짜가 됩니다.

14절에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했습니다.
여기 부활이 없다고 가정한다면 여기 헛것이라 한 것처럼 우리 신앙 역시 마찬 가지입니다. 기독교 교리의 두 기둥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인데 부활이 없다면 그것은 완전히 죽은 종교일 뿐이 됩니다. 이처럼 생명으로 충만함을 받지 못하는 심령이라면 그 신앙은 아무리 교리에 해박한 지식이 있어도 그것은 신앙의 참 맛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직 허상을 따르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부활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2. 만일 부활 신앙이 아니라면 그것은 거짓일 뿐입니다.

15절에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약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만큼 사기집단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신앙도 생명으로 충만한 부활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지식이 뛰어나도 그것은 거짓일 뿐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의 능력 받지 않으면 다 거짓이라는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말씀대로부터 살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 교리도 사수해야 하지만 부활 신앙도 확립해야 합니다.

3. 만일 부활 신앙이 없다면 여전히 죄 가운데 살게 됩니다.

17절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비슷한 성구가 롬4:25인데 “예수는 우리의 범죄함을 위해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과를 담당하셨고 다시 살아나시므로 죄성에서 해방 받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부활의 능력을 받지 못하면 보혈로서 용서는 받아도 죄성에서는 해방 받지 못합니다. 부활 신앙이 이렇게 중요해요.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는 것은 생명의 성령의 법 즉 부활의 능력 외에는 없습니다. 이 시간 죄악에 매여서 자유롭지 못한 성도들은 성령의 부활 생명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4. 만일 부활 신앙이 없다면 내세의 소망도 없습니다.

18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여기 잠자는 자들은 예수 믿다가 죽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만약 영혼이 영적으로 부활하지 않았다면 그 영혼은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중생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90세 정도 되시는 고령이신데 이런 말을 했답니다. “여러분, 빌리 그래함이 죽었다는 소식이 신문에 나거든 그 기사를 믿지 마시오. 죽은 것이 아니라 주소를 옮기는 것뿐이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 영혼이 거듭난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의 관원 니고데모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3-5) 하셨습니다.

어느 매일 가정예배하는 가정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매일 성경을 들려 준 뒤 천국이 어떤 곳인지 생각하는 대로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일곱 살짜리 막내가 “제 생각에는 우리가 그곳에 도착하면 천사들은 우리들의 이름이 적힌 커다란 책을 보며 이름을 부를 거예요. 먼저 아빠 엄마를 부르겠죠. 그리고 누나와 형을 부를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사가 나를 부를 거예요. 그런데 키가 작아서 천사가 못 볼까 걱정이 되요. 그래서 나는 내 이름을 부르면 위로 점프를 하면서 큰 소리로 대답할 거예요. ‘여기요’ 하고 말이죠.” 그런데 공교롭게도 며칠 후 교통사고가 나서 이 막내가 중퇴에 빠졌습니다. 새벽녘에 막내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 막내가 가족들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가족들이 막내에게 들은 마지막 한 마디가 있었습니다. “여기요\" 하는 소리였습니다. 비록 그 아이는 죽었지만 가족들은 그 소리를 듣고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예수 믿어 영혼이 거듭난 성도는 죽어도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5. 만일 부활 신앙이 없다면 성도들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될 겁니다.

19절에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부활도 내세도 천국도 없다면 무엇 때문에 이토록 힘을 다해 신앙생활을 하겠습니까? 세상 것 취하고 싶은 대로 다 취하다가 죽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신앙 생활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유혹도 물리쳐야 되고 절제도 해야 되고 고난과 역경도 이겨내야 되고 때로는 희생과 봉사도 해야 됩니다. 만일 이 생으로 끝이라면 완전히 헛수고하는 겁니다.

그런데 부활신앙이 없어도 그렇습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죄 사함의 확신과 생명의 성령의 법을 모르면 율법이 주는 온갖 시련과 시험을 다 당하고 죄악이 끄는 대로 끌려 다니는 만신창이가 되고 맙니다. 죄가 무엇인지 율법의 눈은 뜨였는데 그것을 이길 용서와 생명의 성령의 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시련과 고통은 당해 보지 않는 사람은 모릅니다. 그러므로 부활도 믿지만 성령 충만의 부활의 능력까지 받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수고는 결코 헛수고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느냐?” 하셨습니다(요11:25-26). 우리 모두 부활 신앙을 가집시다. 부활의 교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온전한 부활 생명으로 충만하십시다. 그래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복되고 가장 현명하고 가장 진실하고 가장 소망이 넘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