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확실한 증거
부활의 확실한 증거 (고전15:1-8)
이 시간에 부활의 확실한 증거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사건은 인간의 이론으로는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까? 그리고 우리도 부활하게 될까? 죽어 오래 되어 형체조차 없는데 어떻게 다시 산단 말인가? 이렇게 의심하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부터서 그랬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앞에 서 있으면서도 의심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주님으로부터 심한 책망을 받았습니다. 혹시 부활에 대해서 의심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 시간에 성령의 은혜로 확신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부활은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부활의 증거는 무엇일까요?
1. 무엇보다 성경이 그 증거입니다.
고전15:3-4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그랬습니다.
이 증거는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도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증거입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사심은 온전히 성경대로 된 것입니다. 이 성경 말씀을 보면서도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한다면 그 사람은 거짓선지자요 적그리스도이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닐 것입니다. 성경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부활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성경 곳곳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죽으심에 대해서 창 22장, 출 12장, 시 22편, 사 53장, 단9:26, 슥12:10 등을 들 수 있고, 부활에 관해서는 시16:10, 11, 사53:10, 호6:2, 욘2:10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릴 때 부활을 믿은 사실이나, 구약에서 열조와 함께 잔다(창47:30, 신31:16)는 표현이나, 여호와를 산자의 하나님으로 표현한 사실이나, 엘리야와 엘리사가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을 통해서 부활을 예시해 주었고, 욥이 구속자에 의해 자신이 부활할 것을 믿었고, 시편 기자들이 음부의 권세에서 구원 받음을 노래했고, 이사야가 예언했고(사26:19), 에스골 골짜기의 해골 떼가 살아난 환상도 그 예언이고, 다니엘도 마지막 때 죽은 자의 부활이 있을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 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눅24:7) 하셨습니다. 여기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는 말씀은 그래야 성경을 이루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부활은 기독교 교리의 기둥이요 성경적인 것입니다.
2. 부활의 증거로 빈 무덤이 그 증거입니다.
빈 무덤을 본 사람이 있습니다. 눅24:12에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푸려 들여다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에는 시체가 없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지키던 군병들까지도 무덤에서 예수님의 시체를 목격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인류 역사 어느 누구도 현대과학도 그것을 입증해 내지 못합니다.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것이 타종교와 다른 점입니다. 타종교에서는 우리 기독교의 온갖 것을 모방하고 있지만 부활절은 모방치 못하는 것은 그들의 교주는 사망에 처해 다시 살아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중동의 건설현장에 독실한 성도가 가게 되어 같은 직장에서 일하던 그 나라 이슬람교도를 사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 모슬렘은 자기가 믿는 이슬람교에 대해 자랑을 했습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하며 엄한 규율대로 살고 메카를 순례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이슬람교의 큰 자랑은 메카에 있는 모하메트의 무덤입니다. 우리 교주의 무덤은 굉장히 웅장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크리스챤은 말하기를 “그것이 바로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차이입니다. 모하메트나 다른 종교의 교주들은 모두 죽어 무덤에 묻혀 썩어버렸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지 사흘 만에 무덤을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빈 무덤입니다.” 라고 전도했다고 합니다. 참 잘한 전도입니다. 지금 성지 순례를 가도 예수님의 무덤은 여전히 비어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물리적 증거입니다.
3. 사실을 목도한 모든 역사가 예수 부활의 증거입니다.
고전15:4-8에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여자들과 오백여 형제들이 예수님을 만났고 핍박자 바울도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토록 박해하던 사울이 회개하여 바울 되어 예수를 위해 목숨 바쳤다면 확실한 것 아닙니까? 당시 불신자였던 예수님 시대에 활동하던 유대 저술가인 요세푸스도 기록하기를 \"빌라도가 그를 십자가에 처형하여 죽이라는 선고를 내렸다. 제자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죽은 지 사흘 만에 그들에게 나타났으며, 그는 지금도 살아있다고 전했다\" 고 했습니다.
교회 역사가 유세비우스의 교회사를 보면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 일과 관련된 자세한 상황을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보고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빌라도는 이 보고서에서 예수에 관하여 여러 가지 기적들을 자신이 직접 조사하여 확인하였는데, 예수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였고, 이로 인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를 하나님으로 믿고 있다고 보고하였습니다.
4. 따르는 표적이 바로 예수 부활의 증거입니다.
막16:19-20에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사역에 함께 하셔서 능력으로 역사해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자신의 살아나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서 보여주고 계십니다. 지금도 예수님 살아계신 증거가 얼마나 나타나고 있습니까? 많은 기적과 이사가 다 부활의 증거입니다. 예루살렘 성전 미문에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고친 후에 베드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행3:13) 하여 이 사건이 예수 부활의 증거라고 말씀했습니다.
5.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들이 부활의 증인입니다.
갈2:20에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 이것이 바로 가장 강력한 부활의 증거입니다. 예수님이 사시지 못하셨다면 어찌 우리 안에 살아계실 수 있겠습니까? 고전15:17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룩함과 자유와 생명과 평안과 기쁨을 얻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다시 사신 예수님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마을에 꽃을 파시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생활도 어렵고 일을 많이 해 손마디도 굵고 늙으셨지만 할머니의 얼굴만큼은 늘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할머니를 \"행복한 할머니\"라고 불렀습니다. 하루는 할머니에게 어떤 사람이 \"할머니, 무슨 좋은 일이 그렇게 많으시기에 늘 싱글벙글하십니까?\" 묻자 할머니는 \"예, 이 나이에 어찌 늘 좋은 일만 생기겠습니까? 그러나 내게는 행복을 지키는 한 가지 비결이 있답니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늘 마음속으로 이렇게 속삭인답니다. \'사흘만 기다리자! 믿음으로 삼일만 참고 견디자!\' 그러면 내 마음이 주님의 은혜로 한결 평안해 진답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살아계신 주님을 체험하며 사랑가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은 사실입니다. 다시 눈을 뜨시고 자신을 꼬집어보시고 내 안팎의 증거를 보시고 주님의 부활이 사실임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 부활하신 주님께서 여러분에게도 나타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모두 예수와 함께 부활하여 부활의 산 증거자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